[나의 이마트 30년 연대기②] 이마트가 30주년을 맞았다. ‘이마트 창동점’으로 1993년 국내 첫 대형마트 시대의 문을 연 이마트는 최초와 최고의 역사를 쓰며 유통업계의 혁신을 이끌었다. 1호점 개점부터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 마트’로 자리매김하기까지, 30년의 시간을 직접 쌓고 채워온 이마트人을 조명해 본다. 두 번째 주인공은 이마트 여주물류센터에서 신선식품 검품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강주원 파트너다. |
이마트 물류의 역사, 그 중에서도 ‘검품’의 역사와 함께한 물류의 산증인이 있다. 경기 광주부터, 용인, 여주에 이르기까지 이마트의 다양한 물류센터에서 ‘검품’ 외길을 걸어온 여주센터WET팀 강주원 파트너다.
“30년이 지났지만 입사 첫날처럼 그저 매일 묵묵히 일할 뿐입니다” 30주년을 맞은 소감과 비법을 묻는 말에 강주원 파트너의 대답은 간단했다. 2개월 뒤 정년을 앞둔 강주원 파트너는 지금도 매일 출근해 하루 2,000봉 이상의 신선식품을 검수한다. 그는 스스로가 “30주년 인터뷰 대상자가 되기에는 특별한 장기가 없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본인의 장점을 묻는 질문엔 “근면함과 성실함은 타고났다”고 단언했다.
“물류의 큰 형님입니다. 저 역시 일한 지 꽤 됐는데도 여전히 강주원 파트너님에게 많이 물어보고 배웁니다. 검품에 있어서는 전문가시죠.” 본인은 특별하지 않다며 겸손하게 웃는 강주원 파트너를 보며 그의 동료 오성남 AM이 말했다.
강주원 파트너는 자타공인 ‘성실맨’이다. 30년간 묵묵히 그리고 정직하게 일했다. 이마트 상품의 ‘질’을 책임져야 하는 물류센터에서는 사실상 가장 중요한 재능이다. 성실함을 무기로, 정직함을 재능으로 30년 이마트 역사와 궤를 함께한 강주원 파트너의 이야기를 들었다.
30년간 조용히 묵묵히 성실히
그래서 더 강한 이마트 물류의 산증인
Q. 이마트와 함께 30주년을 맞으셨습니다!
입사가 엊그제 같은데 이마트에 근무한 지 30년이나 되었다니 정말 실감이 나지 않네요. 아직도 많이 배우고 있고, 언제나 입사 첫해처럼 부지런히 일하고 있습니다.
Q. 처음 입사할 당시가 궁금합니다.
30살에 신세계백화점 천호점(현 이마트 천호점)에 처음 입사하였어요. 지금은 서른이 그렇게 늦지 않은 나이지만 그때는 꽤 늦은 나이었답니다. 그때부터 매입, 검품, 검수, 상품보관, 배송 등 백화점 안에서 매장 내 업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다소 늦게 시작했지만 그만큼 더 성실하게 일하며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았습니다.
Q. 어떻게 보자면 검품은 ‘마트’라는 무대 뒤의 업무입니다.
매장의 힘은 좋은 상품을 얼마나 빠르고 신선하게 공급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고객에게 전달하는 상품 신선도를 최전방에서 관리하는 부서지요. ‘물류’는 곧 유통의 힘이자 경쟁력이라고 생각하고 업무에 30년간 성실히 임했습니다. 그 누구보다 검품 업무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Q. 1998년에는 광주센터, 현재의 미트센터로 근무지가 변경되셨네요.
네, 백화점에서 이마트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이마트를 처음 만난 건 1998년이었어요. 첫 근무지는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미트센터(구 광주센터)였습니다. 용인센터에 이어서 신설된 신선식품 전용 센터였는데요. 1990년대 후반에는 이마트가 한 달에 한두 개 이상 빠르게 매장을 늘릴 때였어요. 게다가 고객들도 정말 많이 찾아 주셨죠. 창동점, 분당점 가면 사람이 정말 꽉 차 있었어요. 거기에 발맞춰서 품질 좋은 상품을 빠르게 공급해야 했었죠. 게다가 이때는 광주센터가 전국 이마트의 신선상품을 모두 담당했거든요. 물량이 엄청나서 물류센터에 들어오는 차량 행렬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어요.
Q. 1998년이면 같은 업무량이어도 지금보다는 효율화가 덜 되었을 것 같은데 정말 바쁘셨겠어요.
아주 바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명절에는 물량이 폭주했어요. 물건을 둘 장소가 부족하면 직접 노지에 나무로 버팀목을 세우고 천막을 쳐서 간이 물류창고도 만들었고요. 비가 오면 천막에 고인 물로 상품이 훼손될까 맘을 졸였던 기억도 있습니다.
출하 시 지게차도 부족해서 원래는 1.5톤짜리 지게차를 쓰는데 공업용 3.5톤 지게차를 급한 대로 공수해 와서 업무를 진행한 날도 있었어요. 공업용 지게차가 내는 엄청난 굉음에 그날은 모두 정신이 없었답니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 같은 콜드체인 시스템이 모두 도입되지는 않은 상태라 일반적인 용달 트럭으로 물건이 배송될 때가 많았죠. 그러면 저희가 직접 트럭에 천막을 씌워서 신선상품을 보호함과 동시에 최대한 빠르게 점포로 배송했어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돌이켜보니 이마트 물류센터에도 정말 많은 발전이 있었네요.
Q. 지금은 상당히 많이 편리해진 거군요.
그럼요. 30년을 되돌아보면 디지털화가 정말 많이 되었단 걸 느낍니다. 예전엔 상품을 검수하는 데 발주서를 들고 일일이 하나씩 세어가며 수기로 검수하였어요. 지금은 단말기를 사용해서 편리하게 검수하죠. 디지털 혁명이 불러온 자동화에 근무하기가 많이 편해졌고 더욱 정확해 졌습니다.
Q. 디지털 혁신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변했을 것 같아요.
검품의 종류가 더욱 세분화 되었습니다. 과일 당도 측정, 농산물 잔류농약 검출 실험, 수산물 방사능 측정, 냉동식품 온도 측정, 상품별 중량 측정, 표기 사항 위반 여부 등 검품의 기준 자체가 더욱 체계화되고 철저해졌어요.
이마트와 함께한 30년
자랑스러운 아버지, 때로는 동호회 회장님으로
Q. 30년간 근무하시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제가 눈과 인연이 좀 있습니다. 성남에서 광주로 출근하는데 하루는 폭설이 내렸어요. 경사가 심한 상대원 고개를 넘지 못해서 차를 길옆에 주차했죠. 그리고 3~4시간 동안 걸어서 터널을 넘어 출근했던 기억이 있네요. 또 대구센터에서 열린 워크숍에 참석한 후 돌아가는 길에 폭설로 고속도로에 묶여 하루 반나절을 보낸 적도 있어요. 그때는 그랬습니다.
Q. 등산동호회의 회장님이시라고.
이마트에 근무하며 많은 동료를 만났습니다. 서로 믿음과 친목을 유지하고 친밀함을 이어갈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생각하다 등산동호회 ‘거북산악회’를 창립했습니다. 제가 광주센터에 있었던 2000년쯤부터 시작해서 용인센터, 지금 여주센터까지 20년 가까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산에서는 거북이를 본 적이 없는데, 동호회 이름이 ‘거북산악회’인 이유가 있을까요?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천천히 올라도 괜찮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괜히 전문 산악회처럼 보이면 부담스러울까 봐요. 협력사, 배송 기사, 환경, 기술, 신세계푸드 등 이마트 직원이 아니더라도, 이마트에서 근무하신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했어요. 직장은 물론 나이대도 다양해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회원들이 활동 중입니다. 참여하는 사람이 많을 땐 버스 두 대를 대절해서 산에 간 적도 있죠. 저 역시도 지친 몸과 마음을 풀고 건강한 직장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Q. 파트너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느린 것을 두려워 말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오랜 말이 절로 생각납니다. 멈추지 않고,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시는 파트너님의 성품이 느껴지는데요. 자녀분들에게도 언제나 자랑스러운 아버지시겠어요.
네, 30년간 성실하게 일한 아버지로 자랑스러워해서 저도 뿌듯하죠. 이마트에서 일하는 30년간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대학을 졸업했답니다. 30년 동안 근무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이마트에 고맙고,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Q. 이마트 매장에서 가족들과 장도 자주 보시겠어요.
제가 검품한 상품이잖아요. 신선한 상품이라는 걸 스스로 자부하니까 가족들이 먹을 것도 믿고 구매할 수 있죠. 이마트 용인점을 자주 들르는데 재미있는 게 장을 보면서도 눈으로는 추가 검품을 하곤 해요. 딸기처럼 무르기 쉬운 것들은 검품할 땐 싱싱해도 매장에 가는 동안 풀이 죽을 수도 있잖아요. 매장에서도 여전히 싱싱하게 잘 진열되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곤 합니다. 일종의 직업병이죠.
이마트, 앞으로의30년은?
Q. 30년 뒤의 이마트는 어떤 모습일까요?
30년 뒤에도 믿음직스러운 오랜 친구 같은 모습이 아닐까요. 믿고 먹을 수 있는 정직한 먹거리, 안전하고 실용적인 공산품으로 고객의 신뢰와 믿음을 받는 이마트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한 기본을 탄탄히 지키며 지금처럼 끊임없이 혁신한다면 30년이 지난 뒤에도 국민의 사랑을 받는 1등 기업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2개월 뒤 정년퇴직입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을 때 본인 스스로 어떤 파트너이셨던 것 같나요?
산지에서 바로 들어오는 상품의 특성상 물류센터는 밤낮이 없습니다. 오후 6시에 출근해서 새벽 2시에 퇴근하기도 하고요. 대중이 없지요. 규칙적인 생활이 어려운 편이죠. 다행히 저는 타고난 근면함, 인내심으로 흐트러짐 없이 직장 생활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30년 동안 제가 만나고 같이 일한 이마트 직원들의 역량은 모두 훌륭했습니다. 묵묵히 일하는 저에게 많은 후배와 동료들이 믿고 따라와 주어서 감사할 따름이죠.
Q. 강주원 파트너에게 있어 ‘이마트’는 어떤 존재인가요?
저에게 이마트는 ‘평생직장’이죠. 30살에 입사하여 지금 60살, 반평생을 함께했고 2개월 뒤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직 건재하기 때문에 이마트에서 습득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두 번째 인생도 성공적으로 설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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