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9일, OpenAI의 CEO 샘 알트만이 내한해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샘 알트만은 6월부터 7월까지 전 세계 17개국을 순회하며 인공지능 분야 기업 및 정책 입안자들과 만나 대담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서울에도 방문한 것이죠. 이날 행사는 간단한 담화(Fireside Chat)와 함께, 소수의 AI 기업과의 대담(Round Table Talks)으로 구성되었는데요. 소셜 미디어나 인터넷상의 많은 후기들을 통하여 어떤 내용들이 언급되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중 제 눈길을 끈 부분은 샘 알트만이 ‘메타 스킬(Meta Skill)’의 중요성과 함께 ‘PMF(Product Market Fit, 제품 시장 적합성)’를 언급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메타 스킬은 AI의 1차적인 활용 방법이 아니라 AI로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 영향은 무엇인지 등을 이해하는 고차원적인 능력입니다. 또한 PMF를 언급한 것은 AI 기술이 창출해 내는 가치, 즉 사람들의 요구와 필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죠.
샘 알트만이 와이컴비네이터(Y Combinator)* 대표라는 점에서 이런 개념을 강조했을 수도 있지만, 실로 이런 관점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칼럼들에서 Chat GPT(이하 챗GPT) 자체를 파헤치기보다는 챗GPT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고, 그로 인해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지를 설명하고자 했었던 것도 그 때문이고요. 챗GPT가 등장하자마자 온라인상에 챗GPT 활용 팁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이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이후의 변화를 맞이할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번 칼럼에서는 생성 AI가 이커머스에 미칠 영향에 대한 관점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와이컴비네이터(Y Combinator):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글로벌 벤처기업 투자사.
AI가 말하는, 생성 AI가 이커머스에 미칠 영향
AI는 ‘생성 AI가 이커머스에 미칠 영향’에 대해 어떻게 답변할까요? 먼저 챗GPT에게 물었습니다.
챗GPT는 가장 먼저 ‘개인화된 콘텐츠 생성’을 예로 들었습니다. 제품설명 및 리뷰작성, 자동화된 마케팅, 챗봇 기반 고객 서비스 등을 함께 언급했고요. Bard에게도 물어볼까요?
Bard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Bard 역시 ‘개인화된 쇼핑 경험’을 생성 AI가 미칠 주요 영향으로 꼽았습니다. 챗GPT나 Bard에게 여러 번 질문해도 답변은 거의 동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을 ‘생성 AI가 이커머스에 미치는 영향’으로 꼽기에는 의문이 남습니다. 생성 AI가 대두되기 전부터 많은 이커머스 기업이 개인화된 쇼핑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이커머스 기업뿐 아니라 콘텐츠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도 공통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개인화된 콘텐츠 생성은 생성 AI보다는 개인화에 더 적합한 기술들을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기도 하고요.
그 외 제품 설명 및 리뷰작성, 자동화 광고 및 마케팅 캠페인 생성, 번역, 챗봇 기반 고객 서비스 등의 다양한 가능성은 어떨까요? 생성 AI를 잘 활용한다면 생산성을 높이거나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데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이는 산업 전반적인 변화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이커머스 분야에 미칠 결정적이고, 주목해야 할 영향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커뮤니케이션 자동화
생성 AI가 이커머스에 미칠 진짜 영향을 고려해 보기 전에, 생성 AI 중에서도 LLM(Large Language Model, 초거대 언어모델)이 왜 파급력이 큰 기술로 평가받는지 먼저 생각해 봅시다.
1차적인 이유로는 챗GPT의 사례처럼 LLM은 특정 도메인에 대해서만 훈련된 것이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매우 유연하면서도 전문성 있는 답변을 생성해 낼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대화를 거듭하며 요구하는 까다로운 요청들을 잘 이해할 뿐 아니라, 그에 맞게 답변을 업데이트할 수 있다는 점도 이전까지의 기술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능력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1차적인 활용보다 더 중요한 점은, 바로 ‘커뮤니케이션 자동화’입니다. 무언가를 자동화한다는 것은 이전까지 사람에게 의존하던 프로세스를 표준화하고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여 자동으로 동작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동작 방식을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표준화할 수 없다면 자동화가 불가능하겠죠. 그렇기에 기존의 자동화는 제조 공정, 단순하고 반복적인 과업, 혹은 조금은 복잡하더라도 프로그래밍으로 제어 가능한 수준의 프로세스가 대상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영역이나, 여러 요건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잦은 변경으로 인해 사람이 직접 검토하여 개별 건으로 처리해야 하는 업무 영역 등은 여전히 사람의 업무 범위로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LLM의 등장으로 그러한 인식조차 변화가 필요한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자동화’가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커뮤니케이션은 사람과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예: 이메일 작성)은 물론, 사람과 기계 간의 커뮤니케이션(예: 스프레드시트 자동입력), 기계와 기계 간의 커뮤니케이션(예: API 호출)을 모두 포함합니다. 심지어는 개발자의 도움 없이도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자동화하고 제어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죠.
어떤 가능성이 열려있는지 예제를 통해 살펴봅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자비스라는 프로젝트에서 언급한 예제를 보겠습니다. ‘이미지 좌하단에 있는 그림 속 남자아이의 자세와 동일한 자세로 독서 중인 여자아이를 이미지로 생성하고, 그 이미지를 음성으로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보여줍니다. 이 요청을 처리하려면 여러 모델을 조합해야 합니다. 먼저 포즈를 분석하는 모델이 필요하고, 이미지 생성 모델로 해당 자세와 유사한 이미지를 생성해야 합니다. 이후 이미지를 텍스트화하고,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화하는 모델을 활용해야겠죠. 기존에는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어떤 순서로 처리해야 할지 각각의 기계에게 일일이 알려주거나, 각 AI 모델 개발 담당자에게 요청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자비스는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자동화하여 어떤 모델을 사용해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처리해야 하는지를 자동으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습니다.
깃헙(GitHub)에서 14만 번 이상의 추천을 받은 AutoGPT는 한술 더 뜹니다. 목표 실행에 필요한 중간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프롬프트를 생성하며 결과물을 얻어냅니다. 예컨대, 명령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없다면 스스로 웹 크롤러*를 개발하여 정보를 획득하고 활용하기까지 한다는 뜻입니다.
*웹 크롤러: 수많은 웹 페이지를 자동으로 돌아다니며 여러 정보를 수집하는 프로그램
어떻게 이런 경험들이 가능한 걸까요? 개발에 사용되는 소스코드도 결국 사람과 기계가 커뮤니케이션하는 언어로 작성한 정보 덩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 커뮤니케이션을 자동화하는 장치를 더해주는 것만으로 마치 사람의 사고흐름마저 자동화한 것 같은, 기존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경험이 가능하게 된 것이죠.
이커머스에 미칠 진짜 변화
이제 ‘커뮤니케이션 자동화’가 이커머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생각해 봅시다. 이커머스의 중요한 두 가지 유입 채널은 ‘검색’과 ‘소셜 미디어 광고’입니다. 매일 특정 이커머스 서비스를 사용하는 충성 고객이 아닌 이상, 검색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검색 서비스는 이커머스 기업 간의 전쟁터가 된 지 오래죠.
또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소셜 미디어 광고를 통한 유입도 매우 중요한 유입 경로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셜 미디어 서비스들이 광고 시장의 중요한 채널로 자리잡은 것은 2010년쯤으로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사용자의 급속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고객 수가 결국은 수익을 창출해 내는 기반이 되었고, 지금에 이르렀죠.
생성 AI 관련 온갖 서비스들과 유관 스타트업들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서, ‘생성 AI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가 이커머스의 새로운 유입채널로 성장할 가능성’이야말로 이커머스가 진짜 대비해야 할, 혹은 포착해야 할 시장이 아닌가 합니다. 마치 소셜 미디어 서비스가 자리잡은 것처럼 생성 AI 기반 서비스들이 충분한 고객을 확보하게 된다면, 다음 수순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과거에는 날씨 정보나 물어보던 AI 스피커가 생성 AI 시대에는 더욱 확장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고, 생성 AI 발전으로 인해 메타버스 서비스도 지금보다 대중화된다면 이들이 이커머스의 중요 채널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게다가 과거와 크게 다른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기존의 이커머스 유입 채널 이용자는 당연하게도 ‘사람’이었지만, 생성 AI 시대에는 사람뿐 아니라 AI 자체도 이커머스 플랫폼의 고객이 될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커뮤니케이션 자동화가 확대된다면 AI 개인 비서가 나를 대신해 상품을 구매할 수도 있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속도의 상품 비교가 일어날 수 있고, 일반 고객은 체감하지 못하는 광고/마케팅 전쟁이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CB Insights의 조사에 따르면, 생성 AI 관련 투자시장에서 기술 자체에 대한 투자를 제외하면 미디어 커머스나 콘텐츠 플랫폼과 관련한 투자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투자는 사람들의 라이프 사이클에 변화를 촉진하여 결국은 직간접적으로 이커머스의 이용 행태에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커머스 관점에서는 ‘생성 AI를 이커머스에 어떻게 써먹을 것인지’보다 ‘생성 AI가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주목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번에는 다릅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자동화, 그로 인한 고객의 라이프사이클 변화와 AI의 이커머스 참여, 수많은 생성 AI 기반 서비스들로 인한 이커머스 유입채널 다변화까지. 이제는 생성 AI의 능력에 놀라기보다는, 생성 AI 기술이 갖는 의미를 파악하고 변화에 대비해야 할 시기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샘 알트만이 언급한 PMF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생성 AI로 인해 새롭게 열리게 된 가능성이 우리의 삶에서 어떤 Needs와 Wants를 해소할 수 있는지’에 그 실마리가 있습니다.
주식시장에서 ‘이번에는 다르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요. 생성 AI 시대에 맞게 될 ‘이커머스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야 말로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요? 이제 막 시작한 변화의 물결인 만큼 생성 AI가 언제 실질적으로 우리 삶에 깊숙하게 침투하게 될지, 어떤 생성 AI 기반 기업이나 서비스들이 살아남을지는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겠죠. 하지만 그 변화를 체감하고 나서야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그때는 이미 많이 늦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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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 지마켓 AI Product팀 팀장
AI기술과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