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선물로 와인을 전하는 일이 크게 늘었습니다. 예전엔 유명한 ‘와인 한 병’ 선물이 보편적이었지만, 요즘엔 여러 종류의 와인을 담은 ‘와인 세트’가 인기입니다. 저도 종종 주고받고요.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추석 선물로 제격인 ‘와인 세트 만들기’ 가이드를 전하려고 합니다.
우선 ‘명절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을 주제로 명절 음식을 선정해 보았습니다. 집집마다 명절 음식은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지만, 많은 분의 의견을 조합하여 ‘전, 갈비, 나물, 송편’을 선택했습니다. 여기에 예전부터 와인과 함께 매칭해 보고 싶었던 ‘약밥’까지 추가하여 총 5가지 음식을 골랐습니다.
이번 블라인드 테이스팅에는 4가지 카테고리(스파클링, 레드, 화이트, 내추럴)에서 2종씩, 총 8가지 와인을 선정했습니다. 스파클링 와인으로는 스페인의 까바인 ‘라 페아 까바’와 프랑스 정통 샴페인인 ‘앙드레 끌루에 상파뉴 실버 브뤼’를 준비했습니다. 화이트 와인은 미국 나파밸리의 ‘로버트 몬다비 프라이빗 셀렉션 샤도네이’와 뉴질랜드 ‘쌩 클레어 파이오니어 블록 게브르츠트라미너’를 선정했습니다.
레드 와인으로는 이탈리아의 ‘지아코모 페노키오 돌체토 달바’와 호주의 ‘울프 블라스 그레이 라벨 쉬라즈’를 선택했습니다. 마지막 내추럴 와인은 이탈리아 ‘라미디아 비앙케토’와 슬로베니아의 ‘카바이 루이자’를 준비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와인 업계 관계자, 셰프, 일반 직종 참가자 등 총 7명이 테이스팅에 참여했고요. 각 와인 카테고리마다 준비한 명절 음식을 매칭해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진행했습니다.
카테고리별로 어떤 음식을 페어링할지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만, 와인을 잘 모르는 분들도 자연스럽게 떠올릴 만한 매칭을 선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류의 느끼함을 잡아줄 스파클링 와인, 나물에는 화이트 와인, 갈비에는 레드 와인, 한국식 디저트인 송편이나 약밥과는 음용성이 좋은 내추럴 와인과 매칭했습니다.
또 이번 테이스팅에서는 명절에 와인을 브리딩하거나 핸들링하기가 어려운 점을 감안하여, 별도로 브리딩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와인 카테고리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모듬전을 곁들였습니다. 준비한 모듬전은 명태전, 동그랑땡, 산적으로 총 세 가지입니다. ‘라 페아 까바’와 ‘앙드레 끌루에 상파뉴 실버 브뤼(이하 앙드레 끌루에)’는 모두 단맛이 거의 없는 스파클링입니다. 특히 후자는 설탕을 전혀 첨가하지 않아 제로 도사쥬(Zero Dosage)로 분류됩니다.
기름진 전과 달지 않은 스파클링 와인, 상상만 해도 꽤 잘 어울릴 것 같죠? 예상처럼 두 와인 모두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자리에서도 음식과의 조화는 두 와인 모두 훌륭하다 보니, 와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참가자들의 코멘트를 빌리자면 라 페아 까바는 ‘5, 6월의 화사함을 지닌 과일 향과 산미가 느껴지는 스파클링 와인’, 앙드레 끌루에는 ‘효모와 숙성의 복합미, 그리고 차분함이 느껴지는 스파클링’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누군가는 재미있게도 명절에 고스톱을 칠 때 라 페아 까바로 시작해서 두 바퀴쯤 돌 때 앙드레 끌루에를 마시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제시했습니다.
두 와인 모두 좋은 반응이었지만 앙드레 끌루에 쪽으로 손을 들어주신 분들이 근소하게 많았습니다. 테이스팅과는 달리 실제 명절에는 더욱 다양한 전을 먹고, 양도 훨씬 많다는 점에서 앙드레 끌루에가 이를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두 번째 와인 카테고리는 화이트 와인입니다. 준비한 와인은 나파밸리의 인기 와인 ‘로버트 몬다비 프라이빗 셀렉션 샤도네이(이하 로버트 몬다비)’, 그리고 뉴질랜드의 드라이 와인 ‘생클레어 파이오니블럭 게브르츠트라미너(이하 게브르츠트라미너)’입니다. 게브르츠트라미너는 한식과의 궁합이 좋은 품종으로 알려져 있죠. 개인적으로 이번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가장 결과가 궁금한 테스트였습니다. 참가자들은 드라이한 게브르츠트라미너와 한식의 어울림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두 화이트 와인에는 ‘고사리, 숙주, 고구마 줄기’ 세 가지 나물을 곁들였습니다. 역시나 참가자들은 ‘게브르츠트라미너’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특히 숙주나물과의 조화를 좋게 평가한 참가자가 많았고, 동양의 음식과 잘 어울리겠다는 평이 지배적었습니다. 한 참가자는 비빔밥과의 페어링 아이디어도 제시했고, 모두 동의했습니다.
한편 로버트 몬다비는 와인 자체만 즐기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버터리함과 토스티한 맛이 강하게 느껴져서 나물과의 음식 매칭은 조금 과하다고 느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기름이나 들기름 같은 요소가 와인과의 조화를 과하게 만든 듯합니다.
고사리에는 게브르츠트라미너보다 아로마의 강도가 약하고, 나파밸리 샤도네이보다 오크향이 덜 느껴지는 와인을 매칭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예를 들면 부르고뉴급 샤도네이나 알리고테 품종과 곁들이면 어떨까 합니다.
세 번째 와인 카테고리는 레드 와인으로 LA갈비를 곁들였습니다. 와인은 이탈리아의 ‘지아코모 페노키오 돌체토 달바(이하 지아코모)’와 호주의 ‘울프블라스 그레이라벨 쉬라즈(이하 울프블라스)’를 선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와인 모두 갈비와 잘 어울렸답니다.
산뜻한 과실 향과 산도가 느껴지는 지아코모는 입안을 깔끔하게 잡아 줘서 좋았고, 울프블라스는 묵직한 쉬라즈의 느낌이 매력적이었는데요. 참가자들의 선택부터 말씀드리면 울프블라스에 손을 들어주신 분이 딱 한 분 더 많았습니다. 명절에는 갈비 외에 여러 가지 음식을 온 가족이 함께 먹으니 울프블라스가 더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여기에 새콤달콤한 지아코모는 갈비보다는 두부가 많이 들어간 동그랑땡이나 양념한 낙지호롱과 먹으면 더 맛있을 것 같다는 재미있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두 와인 다 갈비와 잘 어울렸지만 갈비 양념의 단맛이 너무 강하면 와인과의 조화가 어려울 수 있으니 이 점은 주의해 주세요.
마지막은 내추럴 와인입니다. 와인은 이탈리아의 ‘라미디아 비앙케도’와 슬로베니아의 ‘카바이 루이자’를 선택했습니다. 여기에는 송편과 약밥을 함께했습니다.
약밥은 오랫동안 와인과의 조화가 궁금했던 음식이었습니다. 견과류, 밤, 건포도, 계피가 들어가는 복합적인 풍미가 내추럴 와인과 잘 맞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참가자들은 약밥에는 카바이 루이자를 선호했습니다. 오렌지 와인의 풍미와 복합미가 약밥과 꽤 잘 어울린다는 평이었습니다.
다만, 송편과의 매칭은 어려웠습니다. 송편이 가진 소 특유의 무게감을 라미디아 와인의 파인애플 향과 상큼한 과실 향이 씻어내는 느낌이 매력적이었습니다만, 반복하다 보니 산도가 강하게 느껴진다는 반응도 있었죠. 송편을 주정강화 와인*과 매칭하면 어떨지 하는 호기심이 테이블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약과 외에도 한과, 약식, 정과 같은 한국 디저트와 와인 매칭에 대한 관심도 생기며 재밌을 것 같더군요.
*주정강화 와인 : 와인에 브랜디나 기타 주정을 첨가하여 도수를 높인 와인
여기까지 다 읽고 나시면 이런 궁금증이 드실 텐데요. 차례를 지낸 후 가족들과 여러 음식을 나누는 자리에서 ‘단 한 가지 와인만을 가져간다면 어떤 와인이 좋을까’라고요. 8개의 와인들 중 저의 원 픽은 ‘앙드레 끌루에’ 입니다. 샴페인은 축하 자리나 좋은 일이 있을 때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와인 중 하나이기에 가족들이 모인 명절날 제격이구요. 더군다나 이후에 마시게될 강한 전통주들을 생각 한다면… 스타터로서도 부담 없기 때문입니다. 음식과의 매치면에서도 보면 다음 한 입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깔끔하게 잡아주는 스파클링 와인이면서도, 여러 가지 음식과 좋은 매칭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오마카세나 한정식과 같이 다양한 식재료와 조리법을 접하는 식사 자리에 필요한 와인을 추천할 때에도, 단맛이 없는 드라이한 스파클링 위주로 소개해 드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다양하고 풍부한 한식을 와인과 매칭하는 건 도전임에 틀림없습니다. 아직은 양식과 와인의 매칭만큼 섬세하게 분류되지 않은 게 사실이니까요.
저는 이번 테이스팅을 통해 일반적인 사람들의 반응을 공유하고,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며 더 많은 통찰력을 얻었습니다. 한국식 디저트와 와인 매칭에도 호기심이 생겼고, 앞으로 더 많은 발견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각 카테고리에 재미있게 참여해 주신 분들에게 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도 다가오는 명절에는 가족들과 행복한 와인 한잔 하는 것 어떠실까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또 다른 즐거운 발견을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마침 추석 연휴가 끝나는 10월 4일까지 와인앤모어에서도 명절 선물을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모션이 진행됩니다. 와인앤모어와 더욱 풍성한 한가위가 되시길 바라며 EN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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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철 와인앤모어 서울숲점 점장
마시는 게 좋아 일하는
와인앤모어 점장이
쓰는 게 좋아져 시작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