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리 대단한 일이 일어날까 싶었다. 평범한 중년의 요리사 인생에서 말이다. 내 인생은 언제나 잔잔하게 흘러가는 강물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평온했던 나의 시간 속에서 번쩍하고 스파크가 일어났다. 이유도 원인도 알 수 없는 합선. 2016년 1월 24일. 아마도 나는 이 날짜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쓴 글이 「파불루머 유재덕의 칼과 책」이라는 코너명을 달고 일간지 <스포츠경향>에 처음 실린 날이다. 책을 읽은 감상을 적은 서평 칼럼이었다. 『마크 쿨란스키의 더 레시피』라는 책을 읽고 연재 첫 회의 지면을 채웠다. 이 칼럼은 2020년 12월 31일 『성스러운 한 끼』라는 책을 소개한 60회 연재까지 무려 5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요리사가 읽은 책’이라는 주제가 독자들에겐 호기심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싶다. 칼럼을 연재하던 중에 출판사로부터 출판 계약을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2019년 9월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다. 『독서주방』이라는 제목은 나에게 처음 글을 써보라고 권했던 친구 김성신 출판평론가의 제안이었다.
“훌륭한 글은 아름다운 표현이 아니야. 훌륭한 생각이지!
너는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니까, 좋은 글을 쓸 수 있어!”
난데없이 문예의 세계로 나를 유혹하며 김성신 평론가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이건 마치 마법의 주문 같았다. 그 말을 듣자 평생 요리만 하던 내가, 글쓰기에 엄두를 내기 시작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친구의 평가와 요청에 따라 수도 없이 다시 써야 했다. 첫 칼럼은 스무 번도 넘게 고치고 또 고쳤을 것이다. 힘이 들었지만 오기가 났다. 아무리 어려워 봐야 요리만큼 어려울까 생각했다. 처음 요리를 배우던 20대 젊은 시절의 열정을 다시 끄집어내야 했다. 그러자 힘이 났다. 나를 춤추게 한 친구의 칭찬 그대로 ‘나는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니까, 좋은 글을 쓸 수 있어!’라고, 나는 칼럼 한편씩을 써갈 때마다 수백 번씩 곱씹었다.
솔직하게 썼다. 독서 후의 생각들을 요리사의 시선으로 풀어가면서, 호텔 요리사로서 겪었던 평생의 에피소드와 내 생각들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때론 크게 부끄럽기도 했다. 30여 년 전 초보 요리사 시절, 가장 기초적인 주방 용어조차 알아듣질 못해 생긴 에피소드는 친구와의 수다 중에 튀어나왔다. 크게 화가 난 당시 총주방장께서는 나에게 주방 벽을 보고 서 있으라는 벌을 주었다. 평론가 친구는 이 옛날이야기를 칼럼에 꼭 담아야 한다고 우겼다. 나는 그 칼럼을 쓰며 정말 부끄러웠다. 하지만 막상 칼럼에 실려 온 세상에 퍼지자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열광적으로 좋아했다. 지금은 근엄한 표정으로 주방에서 온갖 폼을 다 잡지만, 그런 요리사에게도 작고 초라한 시작이 있었다는 것! 그 점이 사람들에게 친근함과 공감을 자아냈던 모양이다.
내가 쓴 글과 내 얼굴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신문 지면에 실리고, 나의 이름이 포털사이트의 뉴스에서 검색되자 나를 조금씩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러다 『독서주방』을 출간한 것을 기점으로 내 삶은 정말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내 삶의 도화지에 화려한 물감이 확 뿌려진 느낌이랄까? 모든 게 순식간에 변모했다. 책이 출간되자 TV, 라디오, 신문, 서점 등에서는 ‘책 읽는 요리사’, ‘글 쓰는 셰프’라며 나에게 큰 관심을 보였고, 줄줄이 방송 출연과 인터뷰 일정이 잡혔다. TBS <TV 책방 북소리>, CBS <주말엔 이봉규와>, EBS <윤고은의 북카페>, SERICEO <북터뷰> 등등 여러 방송에 출연해야 했고, 언론과 잡지, 웹진 등 매체와의 인터뷰도 계속 이어졌다. 그런 일이 벌어질 줄 미리 알았다면, 책 출간을 아예 엄두도 못 내지 않았을까 싶었다. 2019년 그해 연말은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신나고, 신기했던 시간이었다. 첫 TV 출연을 하는 날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추운 겨울날임에도 땀을 줄줄 흘리며 촬영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TV 녹화는 NG를 내어도 편집하면 되지만, 라디오 생방송은 정말이지 무서웠다. 내가 실수라도 한다면 어쩌나 싶어 계속 긴장하고 있었는데, 막상 진행자가 대본에 없는 질문을 하자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그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방송을 마쳤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책을 내고 몇 달 후 <조선일보> 문화부에서 연락이 왔다. ‘일사일언(一事一言)’ 코너에 새 필진으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도 읽었던 코너가 아직도 연재를 이어가고 있었다. 청탁을 수락하고 ‘일사일언’이라는 코너의 역사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세상에! 이 연재물이 처음 지면에 등장한 것은 1933년이었다. 그러니까 올해로 무려 90년의 역사를 가진 것이다. 게다가 소설가 이광수, 국어학자 이희승을 비롯한 한국 현대 문화사의 신화적인 인물들이 필진으로 참여했었다. 이런 지면에 내가 글을 쓴다고? 가문의 영광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일사일언’은 200자 원고지 4~5장 분량으로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필진들이 참여해 일상 속 살아가는 이야기와 삶의 지혜를 잔잔하게 펼쳐내는 칼럼이다. 지금도 각계의 지식인과 전문가들이 ‘문화계 논객’으로 진입하는 관문으로 여겨진다. 보통은 일주일에 한 번 간격으로 한 달, 그러니까 4~5주 정도 쓰면 필진이 바뀐다. 그런데 가끔 독자 반응이 좋으면 연재 횟수가 연장되기도 했다. 나는 4달 반 동안 총 18번을 썼다. 이 코너에서 한 사람이 이렇게 오래 연재를 이어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호텔 주방 뒤편의 이야기가 제법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일사일언’이 연재되고 있을 때였다. 당시 근무하던 소공동의 웨스틴 조선 서울 내 이탈리안 레스토랑 ‘루브리카’에서 식사 중이던 한 고객이 나를 찾는다며 급히 와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음식에 대한 불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우선 들었지만, 그냥 주방장이나 책임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이름을 부르며 찾는다니 그게 조금 이상했다. 테이블엔 점잖은 노신사 한 분이 앉아계셨다. 긴장한 얼굴로 테이블로 다가가 인사를 하고 찾은 이유를 묻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우선 노신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곤 자신과 아내가 모두 ‘일사일언’의 글을 보고 나의 팬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 호텔에 온 김에 나와 함께 인증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손님과 함께 레스토랑 한복판에 나란히 서서 어색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 광경을 옆 테이블의 손님들도 지켜보고, 레스토랑의 직원들까지 모두 미소를 지으며 보고 있었다. 일단은 부끄러웠고, 한편으론 별일이 다 있다 싶어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요리로서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싶은 마음이야 늘 있었다. 하지만 내 요리보다 글이 먼저 인기를 얻다니, 이런 아이러니도 웃겼다. 모두가 글을 쓴 이후에 생긴 명랑 해프닝이다.
요즘 나는 새로 입사한 후배 요리사들과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 호텔로 찾아오는 명사분들께 명함과 함께 종종 나의 책 『독서주방』을 선물한다. 특히 젊은 후배 요리사들에게 책을 줄 땐, 요리사로서 자신만의 요리 철학을 가져보라는 나의 권유를 함께 담는다. 요리사는 기술자이자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자각하고 마음먹는다면 문화인이자 지성인으로서의 사회적 위상도 가질 수도 있다는, 그런 새로운 가능성을 나는 젊은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사뭇 의미심장한 메시지지만 책 한 권이면 여기에 긴말이 필요하지도 않아 무척 편하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그 생각들을 정리하고 다시 꺼내 글로 표현해 보는 행위. 대단한 행위 같지만, 사실 나는 ‘독후감’을 쓴 것뿐이다. 그러니까 책을 읽으면 세상 누구라도 쓸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는 그 쉽고도 간단한 행위 말이다. 그런데 고작 이런 것을 쓰면서도 나의 인생은 도약적으로 변했다. 독서와 글쓰기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나는 그야말로 온몸으로 경험했던 거다. 글을 쓰기로 한 것은, 내 인생에 가장 잘 선택한 모험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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