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한국은 겨울, 베트남은 초여름이었다. 출장 차 갔던 1월 베트남의 태양은 순하게 빛을 발해 직접 마주해도 부담스럽지 않다. 습기가 적어 바삭바삭한 셔츠를 걷어올리고 길을 걷노라면 여행자인 것이 감사하다. 그리고 마주한 맑은 국물, 베트남 포를 한 그릇 먹으면 분명 탄성을 지를 것이다.
베트남의 아침, 쌀국수
“맛있다.”
베트남 호치민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것이 있다. 포호아의 쌀국수다. 국내에 들어온 미국 브랜드 포호아와는 다르다. 베트남 포호아는 파스퇴르 스트리트에만 있다. 이 집은 쌀국수를 팔아 5층 빌딩을 올리고 주인집 아들들은 포르쉐와 람보르기니를 샀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준재벌급이라고 한다. 한여름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한국의 냉면집과 비슷하다. 베트남 호치민에는 포호아 말고도 쌀국수 집이 골목마다 있다. 그 많은 쌀국수 집 중에 포호아의 위상은 단연 으뜸이다. 외국인에게도 내국인에게도 그렇다.
“포호아가 제일 맛있어요.”
통역을 맞아준 베트남 아가씨, ‘별(한국이름)’도 그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교환학생을 했다던 그녀는 알고보니 대학 후배이기도 했다. 뚜렷한 이목구비, 살짝 그을린 피부, 호치민 국립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했다는 그녀의 우리말 실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곱창이랑 닭갈비 좋아해요.” 라며 두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말하는 그녀는 영락없는 한국 여대생이었다.
그녀가 고른 호치민 제일의 쌀국수 맛집도 포호아였다.
“베트남 사람들은 아침으로 쌀국수 먹어요.”
쌀국수에 대해 그녀에게 물어보자 신이 나서 설명을 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해장을 위해, 오후만 있는 일요일 브런치로 쌀국수를 즐기지만 베트남에선 아침이다. 베트남의 아침은 시끌벅적하다. 차로 가득찬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의 위용에 맞먹는 스팩터클이다. 베트남에 발을 딛어본 분들이라면 아시리라, 오토바이가 그야말로 쏟아져 나오는 베트남의 아침을. 그 바쁜 아침, 베트남 사람들의 속을 채워주는 것이 쌀국수다. 쌀국수는 태생부터가 바쁜 사람을 위한 음식이었다.
쌀국수의 기원 그리고 한국의 쌀국수
그럼 이 쌀국수는 언제 생겨났을까? 베트남 전통 음식이니 몇 백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 사실 그렇지 않다. 쌀국수, 즉 포(pho)의 역사는 베트남이 열강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식민지배 전에도 베트남 북부, 하노이 부근에서 포를 먹었다는 말도 있지만, 포의 조리 방법이나 어원을 볼 때 프랑스 식민지배 시절 포의 원형이 생겨나고 조리법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언어학자도 아닌 마당에 음식 이름 어원 따지는 것은 내 취미가 아니지만 이건 꼭 집고 넘어가야 한다. 나는 왜 나이고 포(pho)는 왜 포(pho)인가? 여기 꽤 그럴 듯한 설이 있다. 프랑스 고기스튜, 포토푀(pot au feu)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우선 발음이 비슷하다. 포(pho)와 푀(feu),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또 하나의 단서는 조리법이다. 포의 가장 기본인 육수를 우릴 때 동양권에서는 드물게, 당근과 양파를 노릇하게 구워 넣는다. 전형적인 서양식, 정확하게는 프랑스 식 육수 내기법이다. 그럼 왜 당근과 양파를 구워서 넣을까? 삼겹살 먹을 때 양파 구워 본 사람은 알리라. 양파를 갈색빛으로 구우면 달달한 고기맛이 우러난다는 것을. 그 현상을 영어로 캐러멀리제이션(caramalization)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캐러멀화다. 양파의 당이 열과 반응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당근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채소를 구워서 육수에 넣으면 육향이 진해지고 입에 짝 달라붙는 감칠맛도 더해진다. 이것이 꼭 우월한 조리방법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동양 전통은 아니다.
한국 쌀국수와 비교해달라고 물어보니, 한국에서는 그 맛이 잘 안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얼까? 우선 면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100% 건면을 쓴다. 마트에 가면 파는 그 단단한 건면이다. 베트남에서는 100% 생면을 쓴다. 자체 제면을 하는 곳도 있고 면을 받아오는 곳도 있다. 포호아에서는 하루에 두 번, 생면을 받아서 쓴다. 그 하얗고 은은히 투명한 빛깔이 단단한 질감의 밀가루 면과 다르게 부드럽고 순해 보인다. 쌀국수에는 밀가루에 있는 글루텐(gluten)이 없어 건강에 좋고 소화가 잘 된다고 한다. 건강에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속이 부대끼지 않는다. 그래서 먹어도 먹어도 지치지 않는다.
차이를 따지자면야 면말고도 많다. 신선한 허브 구하기가 한국에서는 힘들고, 또 소고기의 육향도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생후 30개월 쯤에 도축하는 게 보통이다. 그때가 경제학적으로 사료값을 뽑기 딱 적정한 시점이라고 한다. 게다가 개체가 어려서 고기가 연하다. 잃는 것도 있다. 뼈의 밀도 낮고 고기의 향이 덜하다. 그래서 육수를 뽑아내면 맛의 밀도가 떨어진다.
베트남을 기억하는 또 다른 이야기, 쌀국수의 맛
“음.”
내 앞에 놓인 쌀국수를 보며 이런 학구적이고 진지한 생각을 할 턱이 없다. 나중에 따져보고 알아보니 그랬다는 것. 모든 면 요리가 그렇듯 나오자마자 빠르게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우선 국물 맛, ‘캬’ 소리가 단번에 나온다. 국물의 밀도 깊은 맛이 내 속을 쓰윽하고 어루만진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이 한 평생을 가듯, 이성을 놓게 만드는 쌀국수 국물의 오묘하고도 낯익은 맛은 이 세상 모든 여행자를 끌어들인다. 사위를 둘러보면 나 같은 여행자가 여럿이다. 내 앞에는 그녀가 앉아 있었다. 어라. 먹는 속도가 만만치 않다. 나야 두 번 먹을 기회가 드물기에 허겁지겁 먹다고야 하지만 그녀는 왜? 아까는 새침떼기 같더니 쌀국수 먹을 때는 딴판이었다. 맛이 있는지 고개를 그릇에 박고 젓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맛있어요?”
“네. 맛있어요.”
생각하지 않고 나오는 말, 맛있다. 괜히 부끄러운지 그녀가 미소지었다. 상그러운 20대다. 탁자 위에 놓은 허브들도 그 푸르름을 뽐냈다. 한국에서 쌀국수에 흔히 곁들이는 고수는 없다. 대신 타이 바질(thai basil)과 대나무 잎사귀 비슷하게 생긴 쿨란트로(culantro)가 있다. 빨간 스리라차 핫소스와 호이신 소스는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같다. 호치민이 아니라 하노이에는 이런 소스가 없다 하지만 내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확신은 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어디에나 있는 스리라차 소스와 호이신 소스처럼 쌀국수는 이제 베트남의 음식이 아니라 세계의 음식이란 것이다. 한국에도 잘 찾아보면 베트남처럼 쿨란트로 허브를 쓰고 베트남식으로 육수를 뽑은 가게들이 있다. 일산 킨텍스 이마트 타운 피코크 키친의 ‘프레시 포’은 베트남에서 셰프를 데리고 와 현지 방법, 현지 허브 그대로 쌀국수를 내놓는다. 한국 사람이 베트남에서 요리법을 배워온 곳도 있고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신부가 직접 차린 가게도 있다. 그곳에서 서툰 한국어를 들으며 쌀국수를 먹으면 지난 베트남에서의 시간이 떠오른다.
베트남에서 만난 그녀는 똑똑했고 통통 거리며 달리는 오토바이처럼 힘이 넘쳤다. 나의 출장은 계획대로 끝이 났고 통역을 해준 그녀와도 예정대로 이별했다. 서로 손을 흔들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을의 중턱인 지금, 반년도 훨씬 지난 지금에, 뜨겁고 시끄러웠으며 향기롭던 그 시간, 열띤 열대의 밤과 치열하고 집요했던 사람들의 낮, 무관심한 눈빛으로 내 앞에 내놓았던 뜨거운 쌀국수, 그 향기와 부드러운 식감을 서울 어딘가에서 나는 그리워하고 있다. 풋내 나는 싱그러움, 자신의 개성을 잊지 않는 그 젊음과 반짝이는 눈빛을, 바쁘게 쌀국수 한 그릇 먹고 일어나는 사람들의 가득찬 하루와 그 하루를 딛고 일어서는 또 다른 내일을. 아마 지금 이 순간의 베트남도, 절묘한 포호아의 쌀국수도, 그리고 그녀도, 여전할 것이다. 또 그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