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떠났습니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로 향했는데요. 와인 업계에 종사하는지라 와인 테이스팅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저것 알아보다 시애틀의 ‘우딘빌’이란 곳을 찾아냈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우딘빌로 향했습니다.
우딘빌이란 곳은 워싱턴주 와이너리들의 테이스팅 룸이 마치 아울렛처럼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샤또 생미셀 와이너리가 그중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전까지는 미국 워싱턴주의 와인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현지 어드밴티지’인 걸까요? 들어가는 테이스팅 룸마다 와인이 너무 맛있었습니다. 신나게 테이스팅을 즐겼지요. 그때 이후로 미국 워싱턴주 와인을 좋아하게 되었고, 시애틀에 갈 때마다 우딘빌은 빠짐없이 들러 벌게진 얼굴로 돌아다닌답니다.
2020년에는 워싱턴주와 오리건주의 와인 교육인 ‘퍼시픽 노스웨스트와인 스페셜리스트(Pacific Northwest Wine Specialist)’ 과정을 밟았습니다. 이 인증 교육은 워싱턴주 와인협회와 오리곤주 와인협회가 주최하고 한국의 와인21닷컴과 함께 한국의 와인 업계 전문가 30여 명을 선발해서 진행한 교육으로 정말 영광스러운 자리였습니다. 이 과정의 교육을 담당하신 분은 미국의 마스터 오브 와인인 ‘브리’라는 분이셨습니다. 그 후 작년 12월, 세계 최초로 국내 와인 전문가 26명과 함께 심화과정 인증 교육을 수료하고, 저는 퍼시픽 노스웨스트 와인 스페셜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워싱턴주와 오리건주의 와인을 알리는 데 일조하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들었죠.
하지만, 실제로 매장에서 손님들을 응대하다 보면 일반적으로 미국 와인은 캘리포니아만 떠올리십니다. “미국에 캘리포니아 말고 다른 곳에서도 와인이 나오나요?”라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시애틀을 한 번이라도 다녀오신 분들은 비가 많이 오는 시애틀을 상상하시고는 워싱턴주에서 와인이 생산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워싱턴주의 주요 와인 생산지는 캐스케이드 산맥 너머 위치합니다. 이 산맥이 비를 막아줘 훌륭한 포도 재배 환경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죠. 오리건주까지도 이 산맥이 뻗어 있지요. 오리건주의 생산지는 워싱턴주와는 다르게 코스트 산맥과 케스케이드 산맥 사이에 주요한 산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기에 일교차, 강, 바다, 기온, 햇빛 등 자연환경의 다양한 요소들이 포도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와인 특성에 반영됩니다. 캘리포니아 와인, 워싱턴 와인, 오리건 와인이 각기 다르면서도 모두 맛있는 이유죠.
워싱턴 지역은 리즐링이라는 화이트 품종을 재배한 것을 시작으로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등의 다양한 품종을 생산합니다. 우리나라에선 많이 찾기는 힘들지만 개인적으로 프랑스 론 지역에서 유명한 그르나슈, 쉬라, 무베드로, 마르산, 루싼 등의 품종으로 만든 워싱턴주 와인이 매우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기회가 될 때마다 고객님들에게 추천해 드리고 있습니다. 특히 워싱턴주의 로제 와인을 꼭 한 번 마셔 보시 길 권해 드립니다. 기가 막힙니다.
반면 오리건 지역은 선택과 집중입니다. 피노누아와 샤르도네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감히 이곳을 미국의 부르고뉴라고 말씀드립니다. 가장 맛있는 피노누아와 샤도네이를 만드는 지역이라고 꼽을 수 있습니다.
미국 와인이라면 캘리포니아만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이토록 훌륭하고 맛있는 퍼시픽 노스웨스트의 와인, 즉 워싱턴주와 오리건주의 와인들을 소개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음은 캘리포니아 와인과 퍼시픽 노스웨스트 와인을 비교하는 시간으로 진행했습니다. 두 차례에 나눠서 업계인 2분 일반인 13분을 모시고 화이트 와인 1종과 레드 와인 4종으로 총 5가지의 품종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과연 퍼시픽 노스웨스트의 와인과 캘리포니아 와인을 차이를 느끼셨을까요?
섹션 1. 샤르도네
캘리포니아 와인으로는 ‘로버트 몬다비 프라이빗 셀렉션 샤르도네’를, 워싱턴은 ‘콜럼비아 크레스트 H3 샤르도네’를 시음했습니다.
로버트 몬다비의 샤르도네는 잘 익은 샤르도네의 화사하고 발랄한 느낌을 잘 드러냈고, 워싱턴 H3 샤르도네는 잘 익은 과실의 밸런스와 풍부한 복합미를 보여줬습니다.
이 두 가지 시음에서 개인적인 아쉬움은 H3샤르도네의 빈티지가 2014빈티지로 2021빈티지였던 로버트 몬다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숙성이 많이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해서 전에 느꼈던 산뜻한 면 보다는 복합미 쪽으로 향이 발전되었다고 느껴졌고 테이스팅 하신 분들도 동의하셨습니다.
그날은 봄의 따스함이 느껴지는 날씨라 그런지 발랄함이 느껴지는 캘리포니아의 로버트 몬다비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섹션 2. 피노누아
이어 피노누아를 시음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와인으로는 ‘마틴랜치 JD 헐리 피노누아’를, 오리건 와인으로는 ‘도멘 드루앵 던디 힐 피노누아’를 선택했습니다.
도멘 드루엥 생산자는 부르고뉴를 지향하는 곳인만큼, 마틴랜치의 피노누아에 비해서 프랑스 부르고뉴의 느낌을 잘 드러냈고 개인적으로는 이런 점이 마음에 들어 특히 아끼는 와인입니다.
참가자들은 마틴랜치에 비해서 도멘 드루앵 피노누아가 산미가 느껴진다고 평가했습니다. 마틴랜치 피노누아는 진하고 부드러우며 복합적인 향신료의 풍미가 느껴지는 반면, 도멘 드루앵 피노누아를 더 묽은 느낌이라고 평가한 분도 있었습니다.
섹션 3. 메를로
참가자들은 메를로 테이스팅이 가장 비교하기 어려웠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캘리포니아는 ‘로버트 몬다비 프라이빗 셀렉션 메를로’로, 워싱턴은 ‘콜럼비아 크레스트 H3 메를로’를 테이스팅 하였습니다.
H3의 메를로에서는 복합미와 탄닌이 풍부하게 느껴진다는 참가자 분들이 많았습니다. 한 분은 까베르네 소비뇽과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섹션 4. 시라
캘리포니아 시라는 ‘마틴랜치 테레즈 빈야드 시라’로, 워싱턴은 ‘콜럼비아 크레스트 그랜드 에스테이트 시라’로 테이스팅 하였습니다. 시라는 온도가 조금 높아진 탓에, 두 와인 모두 보통 느끼는 풍미보다 조금 더 진한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두 가지 와인의 키 포인트는 초콜릿입니다. 두 와인 모두 깊은 검은 베리의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콜럼비아 크레스트의 시라는 진한 초콜릿 풍미와 달콤함이 느껴졌는데, 여기서 취향에 따라 선호가 갈렸습니다.
섹션 5. 까베르네 소비뇽
마지막으로 테이스팅한 품종은 까베르네 소비뇽입니다. 캘리포니아는 ‘로버트 몬다비 나파 밸리 까베르네 소비뇽’으로, 워싱턴은 ‘콜럼비아 크레스트 리저브 까베르네 소비뇽’으로 테이스팅 하였습니다.
두 와인 중에서는 캘리포니아 로버트 몬다비의 손을 들어준 참가자들이 더 많았습니다.
참가자들은 로버트몬다비의 와인은 잘 익은 과실 향과 부드러운 텍스쳐가 매력적이라 평한 반면, 콜럼비아 크레스트는 말린 고추와 피망의 피라진 향이 많이 느껴진다고 평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까베르네 소비뇽은 중식하고도 굉장히 잘어울린다는 의견을 드렸더니, 그냥 와인만 마신다면 로버트 몬다비를, 음식과 곁들인다면 콜럼크레스트를 선택하고 싶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테이스팅을 하면서 오히려 워싱턴주와 오리건주 와인에 대해 오히려 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있었지만, 다행히 모두 굉장히 흥미로워하시고 반응도 좋았습니다. 캘리포니아에만 치우친 관심을 조금이나마 돌렸다는 데 만족했죠.
이날 참가자 분들은 때로는 캘리포니아 와인을 더 높게 평가했고, 가끔은 퍼시픽 노스웨스트의 와인을 선택했습니다. 특정 지역의 와인이 더 좋고, 나쁘다기보다는 각자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그 선택이 달라졌습니다. 다른 날씨에 시음했다면, 혹은 음식과 페어링했다면 또 다른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겠죠?
혹시 익숙한 캘리포니아 와인만 고집하셨다면, 오늘은 워싱턴과 오리건 지역의 와인을 맛보는 건 어떨까요. 입맛에 들지 안 들지는 마셔봐야 아는 법이고, 선택지가 늘어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까요. 어쩌면 미국으로 떠났던 그날의 제가 한입에 반했듯 새로운 취향을 찾을지 모릅니다. 당신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며 EN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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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철 와인앤모어 삼성1호 점장
마시는 게 좋아 일하는
와인앤모어 점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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