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를 사고판다고? 그게 말이 돼?”
이것도 어느새 약 15년 전 해묵은 이야기가 됐지만 그땐 그랬다.
당시 온실가스를 주식처럼 사고파는 ‘배출권거래제(당시 시범사업)’가 국내에서도 시작되려 하자, 많은 이들이 기대 반 걱정 반 우려를 쏟아냈다. 누군가는 한국도 드디어 기후변화대응에 나선다며 응원했지만, 누군가는 아직은 시기상조라 했다. 지구온난화 음모론을 얘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감축을 못하면 구매해서 메꿔야 하는 비용도 상당한데, 그러지 못할 경우 부과되는 부족분의 3배에 달하는 과징금 부담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냐는 하소연도 있었다. 재계의 반대로 결국 시행되지 못할 거라며, 아닐 시 당신의 손에 장을 지지겠다 호언장담한 이도 있었다. 또 누군가는 연기 뿜는 굴뚝과 공장도 없는데, 우리 리테일 산업이 온실가스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도 했다. 지금 들으면 참 무지성 발언처럼도 들리지만, 그래 그땐 그랬다.
배출권 거래제 도입,
정말 우리는 시기상조였을까?
그러나, 결국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지난 2015년부터 예정대로 정식 시행됐다.
2010년 환경부의 시범사업 기간을 거쳐 1기(2015~2017), 2기(2018~2020)를 지나 내년이면 어느새 3기(2021~2025)를 마치고 새로운 4기(2026~2030)를 맞게 된다. 말이 안 된다던 탄소배출권은 한국거래소 및 장외거래를 통해서도 꾸준히 거래되고 있다.
물론, 이마트도 그간 배출권을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하며 거래에 참여해 왔다. 그 사이 배출권 가격은 코로나19를 거치며 반등을 거듭하다 현재는 톤당 1만 원 이하로 뚝 떨어진 상태지만, 2019년 12월경엔 4만 원을 훌쩍 넘기도 했다. 참고로 유럽은 이미 톤당 10만 원~15만 원을 오가고, 2030년이면 22만 원대가 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국내 배출권 가격도 점차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어느덧 내년이면 배출권 4기(2026~2030)를 위한 5년 치의 새로운 배출권 사전할당이 업체별로 진행될 예정이다.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목전에 둔 마지막 차수인 상황이라, 할당 기준과 양을 두고 정부와 업계 간 팽팽한 줄다리기 신경전이 예상된다. 따라서 이에 대응해야 하는 2025년 내년은 많은 기업들의 넷제로 중장기 전략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해가 될 것이다.
다가오는 ESG 의무공시,
또 새로운 진통의 시작
그런데, 최근엔 ESG 의무공시를 앞두고도 15년 전의 진통이 똑같이 반복되는 모양새다.
여기서 잠깐, ESG 의무공시가 뭔지 알아보자. ESG 의무공시는 쉽게 말하면 그간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을 통해 자발적으로 공개해 온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정보를 이제는 재무제표, 사업보고서처럼 의무적으로 정기 공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우선 ESG 중에서도 E(환경), 특히 기후변화대응 중심의 정보들로 요구되고 있다. 즉, ESG 의무공시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전 세계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기업이 올바른 역할을 하도록 하고, 투자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돈의 흐름을 잡기 위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
지난 4월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ESG 공시 기준 초안을 공개하고 8월까지 기업들의 의견을 받고 있다. 당초 내년부터 순차 도입이 예정되었던 국내 ESG 의무공시는 현재 2026년 이후로 시기가 늦춰진 상태다.
하지만 재계는 이마저도 시기상조, 아직 이르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상장사협의회,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자산 2조 원 이상 125개 상장사의 의견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 기업의 58.4%가 최소한 2028년 이후가 적정하다고 답했다 한다.
여전히 불투명한 공시 시점,
이러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이 되나
다만, 이럴 경우 주요 수출 상대 국가들 대비 진도가 뒤처진 우리 기업들이 과연 국제사회에서 적시에 제대로 대응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지적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EU(유럽연합), 미국, 싱가포르, 캐나다 등 주요 국가들은 이러한 ESG 공시 (기후공시) 의무화 시기를 2025~2027년으로 확정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걸 무기로 그들의 무역전쟁에도 활용할 참이다.
EU에 상품수출을 하는 기업들은 이미 비상이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넷제로 산업법, 메탄 배출 제한 가스 수입법, 에코 디자인 규정, 자연 복원법 등이 입법 문턱을 넘어섰고, 지난 7월 25일엔 기업의 지속가능한 공급망 실사지침(CSDDD)도 발효됐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이어, 최근 미국에서는 미국판 CBAM 제정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가오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양 후보 간 ESG와 친환경에 대한 기조는 상당히 다르지만, 도널드 트럼프와 카멀라 해리스 중 누가 대통령이 되든 ESG를 빌미로 자국 기업 보호와 세수 확보를 위해 활용하고자 하는 방침은 동일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상협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8월 6일 한국경제와 한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실제로 ‘포린 폴루션(Foreign Pollution, 외부 오염)’에 대한 강력 규제는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으며, 공화당에서도 ‘포린 폴루션 프리 액트(Foreign Pollution Free Act)’라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 폴루션에는 바로 ‘탄소’도 포함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과거의 단순 무역장벽 수준을 넘어, 자국에 들어온 외국 기업들에게 ‘ESG 정보, 탄소 데이터’를 요구해 강력한 탄소 무역장벽을 세워 법적 규제를 가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규제와 전쟁을 준비하려면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쯤 되면 ESG 의무공시를 마냥 미룬다고 능사는 아님을 알 수 있다.
못하는 것일까, 하기 싫은 것일까?
물론, ESG 의무공시 논쟁에는 시작 시기의 이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업보고서처럼 연결 기준으로 종속회사들에 대한 정보까지 담아야 하는 대상과 범위에 대한 문제도 만만치 않다. 기후공시가 주를 이루게 될 텐데, 종속회사들의 SCOPE 1, 2 배출량을 추가 산정하고 검증하는 일만도 결코 녹록지 않다. 그런데 여기에 SCOPE 3까지 포함하게 되면 이는 사실상 미지의 세계를 다 뒤져 무한대의 측정범위에 가까운 숫자를 산정 및 검증 후 공시하라는 얘기와 같은 상황이다.
그 방대한 데이터들을 과연 확보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설사 확보하여 산정한들 그 값을 얼마나 신뢰하고 비교 평가할 수 있는지도 미지수다. 그래서 이렇게 산정되어 나온 숫자들에 대해 기업이 져야 할 법적 의무와 책임 리스크 때문에 자발적 공개냐 공시냐에 대한 얘기도 나오게 된다.
이는 거래소 공시냐 법정 공시냐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상기 설문 조사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은 무리한 사업보고서 통합 공시, 즉 법정 공시보단 거래소 공시로 시작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행착오를 감안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법정 공시로 인해 줄줄이 소송이 이어질 수 있고, 과도한 법적 리스크가 예상되는 만큼, 유예 또는 면책규정(Safe Harbor)을 도입해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외에도 기존 환경 및 ESG 정책들과의 기준 충돌이나 과도한 중복 업무 이슈도 논쟁이 분분하고, 공시 시스템 개발과 교육 이슈 등, 풀어야 할 숙제들이 산적한 느낌이다. 더욱이 이러한 안개 속 불확실한 상황들을 어렵게 거치고 나면, 기업 내부에서 감당해야 할 공감과 이해, 준비의 과정도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변화는 누구에게나 낯설고 어렵다
딱 15년 전 배출권거래제를 앞두고 겪었던 진통도 이러했던 것 같다.
비교할 사이즈의 사안은 아니지만, 사실 이마트에서 2009년 비닐쇼핑백 없는 점포를 처음 시작 후, 2011년 경쟁사들과 다 같이 캠페인을 확대해 나갈 때도 이랬다. 2017년 모바일영수증 캠페인을 처음 시작 후, 2019년 13개 유통사와 함께 하기로 하고 확대해 갈 때도 이랬던 것 같다.
선의의 취지로 기획하고 시작했음에도 의도와 다르게 왜곡되어 오해도 사고, 이해관계가 달라 저항에 부딪히기도 하고, 당장의 불편에 불만을 접하기도 한다. 내외부의 크고 작은 어떤 일이든 ‘변화는 누구에게나 낯설고 어렵다’.
‘Why’와 ‘When’을 넘어
육하원칙 골고루 살펴야
다만 이러한 진통과 성장의 과정에서 많은 경우, 설득하는 자 입장에서 왜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목적(Why)’과, 피하고 싶은 자의 미루기 위한 ‘시점(When)’ 이슈에 과도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ESG 의무공시 논쟁도 오로지 ‘시점’ 이슈에만 매몰된 느낌이라 늘 아쉽다. 사실 ESG, 환경문제의 대부분은 ‘Why’와 ‘When’을 누가 몰라서 참여나 해결을 안 하는 게 아니다(물론 그런 경우도 있어서 경각심을 줄 필요도 있다). 대부분은 그게 어렵고 번거롭고 불편해서다. 그리고 그걸 해결하는 데 돈과 시간이 들어서다. 그런데 자꾸 한쪽은 ‘Why’만 얘기하니, 다른 쪽은 나중으로 미루며 ‘When’ 얘기만 하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그래서 우리는 ‘목적(Why)과 시점(When)’에 맞는 ‘대상과 범위(Who)’의 설정, 더 잘하기 위한 ‘내용(What)과 방법(How to, Where)’에 대한 고민과 토론을 지금 보다 더 치열하고 활발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기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면, 진통 이후의 실행 과정이 보다 순조롭고 더욱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럼 의외로 진통의 시간도 상당히 단축될지 모르니 말이다. 늘 그랬듯 우리는 방법을 찾을 테니까 말이다.
어쩌면 ESG의 진짜 쓸모는
아직도 ESG는 한때 유행이 아니었냐고 하는 이들이 있다. 2020년~2021년 블랙록이 쏘아 올린 메시지로 돌풍이 불 듯 급격히 부상했던 ESG의 열기와 거품이 이젠 많이 가라앉은 것도 사실이다. 과거 약 50년간 계속됐던 지구온난화 음모론 논쟁이 과학적으로 종지부를 찍은 지도 한참이지만, 여전히 아직도 이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분명한 건 ESG는 이제야 시작이다. 기업 경영의 모든 요소가 학문적으로나 실무에서나 그 가치를 평가받고 인정받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었듯, 눈에 잘 띄지 않고 측정되기 어려운 ESG는 이제 땅속에서 나와 진짜 제 자리, 제 역할과 가치를 찾아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봐야 할 것이다.
어쩌면 ESG 의무공시는 ESG의 진짜 쓸모를 보여줄 또 하나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ESG 의무공시를 대비하는 이마트의 자세,
넷제로 보고서 2024
이마트는 지난 6월 ‘넷제로 보고서 2024’를 발간했다. 지난해 처음 발간한 넷제로 보고서를 통해 ‘2050년 탄소중립 달성,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32.8% 감축 중간목표’를 선언한 이후 두 번째 발간이다.
올해도 목표는 그대로 유지하되, 2023년도의 실적 및 감축 성과와 이마트에브리데이 합병과 같은 대내외 이슈들을 반영해 재산정한 미래 예상배출량(BAU)을 공개했다. 그리고 새로운 감축 아이템들을 추가 발굴하여 적용해 보다 업데이트된 감축경로를 수립했다. 12개 관계사뿐 아니라 해외사업장(베트남, 몽골) 등 SCOPE 3 전 카테고리의 배출량까지 산정하고 검증한 결과도 이번 보고서에 담았다.
또한 올해는 ESG 의무공시에 사전 대비하고 국제적인 기준에 맞춘 공시를 준비하고자, 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보고서도 발간했다. TCFD보고서는 기후변화가 이마트의 기업 운영에 미치는 위험과 기회 영향을 식별하고, 이에 대응하는 지배구조와 경영전략에 따른 재무적 영향, 위험관리 그리고 지표와 목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참고로 이마트는 2023년 탄소 배출량이 490,603톤으로 예상배출량(BAU) 대비 11%, 2022년 대비 9.4%를 감축을 기록해 목표치를 초과한 성과를 거두었다.
ESCO 사업과 같은 고효율 에너지 투자가 꾸준히 선행되어 온 덕분도 있지만, 에너지 비상경영을 통한 운영효율 개선이 주효했다. 이는 상쇄에 의존하지 않고도, 저비용 고감축의 실질적인 배출량 감축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또한 이마트는 작년 글로벌 기후변화대응 이니셔티브 CDP(Carbon Disclosure Project,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에 참여하여 Management B 등급을 획득하고, CDP Korea Awards에서 성적이 우수한 신규참여 기업에게 부여하는 ‘CDP Korea 탄소경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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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혁 이마트 ESG경영추진팀 부장
지구의 내일을 우리가 함께,
리테일 유니버스 어딘가에서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를 꿈꾸는 지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