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별로 다르지도 않았다. 모두 핀셋을 들고 조그만 이파리 하나를 조심스럽게 정해진 위치에 놓았다. 완벽한 이파리, 시들어서도 안 되고, 너무 커서도 안 된다. 마치 실험실에서 일하는 것 마냥 허리를 굽히고 땀을 흘렸다. 그 뒤로 다른 접시들이 줄 지어 있었다. 내가 맡은 것은 앙트레, 지체할 수 없었다.
“뭐 도와줄까?”
“오케이, 내 뒤로 소스 뿌려.”
셰프 한 명이 도와주겠다고 내 섹션으로 넘어왔다.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하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접시를 캔버스 삼아 예술적 감성을 펼칠 기회는 없다. 플레이팅도 다 정해져 있다. 헤드셰프가 지난 번에 보여준 플레이팅의 사진이 옆에 붙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마음대로 플레이팅을 고쳤다가는 주방에서 가장 흔한 단어, F 어쩌구를 듣게 될 것이다. 물론 원본 보다 예쁘면 상관 없을테지만 그 찰나에 그런 ‘창조’를 하는 것 정말 쉽지가 않다. 필요한 것은 창조가 아니라 완벽이다. 국밥집처럼 밥에 국물을 부어주면 되는 것도 아니다. 접시 하나에 올라가야 하는 것들이 대 여섯 개가 기본. 하나라도 빼 먹지 않기 위해 신경이 곤두선다.
밖으로는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오픈 주방이라 우리가 작업하는 것들이 다 보였다. 손님들은 신기한 표정, 처음에야 손님이 눈에 들어오지 일 하다보면 봬는 게 없다. 밭을 메는 아낙처럼 허리가 아파 온다.
코스 요리를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셰프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와 철두철미함, 손님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도가 넉넉한 카드, 그리고 세 시간을 마주 앉아 있어도 지루하거나 불편하지 않은 상대다. 이성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차림새는 정장이다. 꼭 턱시도를 입을 필요는 없지만 청바지 차림은 곤란하다. 예약도 필수다. 유명한 곳은 아마 몇 주 전에 예약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예치금을 받기도 한다.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으면, 당일 취소인 경우에도 예치금은 환급이 안 된다. 그러니 알박기 하듯 예약을 할 수 없으니 신중해야 한다.
당신이 가는 곳은 레스토랑, 먹으려는 식사는 정찬 코스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지갑을 털고 셰프는 모든 아이디어를 짜낸다. 어딘지 모르게 있어보이는 이 비싸고 긴 코스 요리의 시작은 19세기 러시아였다. 러시아 귀족들이 음식이 차갑게 식는 것을 막기 위해 하나씩, 코스로 내는 문화가 프랑스로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정통 프랑스 정찬은 아뮤즈 부쉬-앙트레-수프-샐러드-생선 요리-고기 요리-프리 디저트-가금류 요리-치즈-디저트-커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것이 법처럼 꼭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돈을 내는 대로, 셰프 마음대로 얼마든지 코스를 늘리고 줄일 수 있다. 역사 상 가장 긴 코스는 21개에 달했다고 한다.
길고 긴 여정의 시작은 입 안의 기쁨이라는 뜻의 아뮤즈 부쉬 (Amuse Bouche)다. 레스토랑의 첫 인상을 좌우하는 음식으로, 작고 예쁘며 재기 발랄해야 한다. 대화의 포문을 여는 작은 농담이요 가벼운 키스. 냉채 류 샐러드나 작은 튀김이 흔히 쓰인다.
님의 입 속으로 아뮤즈 부쉬가 들어가는 동시에 본 게임이 시작된다.
“퍼스트 코스, 테이블 10번!”
웨이터가 주문을 넣으면 주방에 있는 출력기에서 영수증이 나오듯 주문서가 튀어 나온다.
“트득트득”
장거리 달리기, 우아한 코스 레이스의 시작
파블로프의 개처럼 셰프들이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일분 일초가 아쉽다. 코스 사이 간격이 길어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긴 코스가 더 늘어지기 때문이다. 앙트레가 빨리 나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욕하는 요리사로 악명 높은 영국 요리사 고든 램지는 “앙트레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12분 내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스타트가 늦으면 모든 게 늦어진다. 손님도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상태와 일단 뭐라도 먹은 것은 체감 시간이 다르다.
헤드셰프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기 전, 앙트레가 손님 테이블에 놓여졌다. 남자와 여자는 조개 껍질을 들고 ‘후르릅’ 소리를 낸다. 앙트레의 기본, 굴이다. 프랑스의 영향이다. 생굴을 최고로 치는 그들의 문화 덕에 제철이 아닌 이상 굴은 앙트레의 주전 선수다. 굴이 아니라도 된다. 곧이어 나올 메인을 기대하게 만드는 은은하고 짜릿한 전희, 입맛을 돋우고 무겁지 않은 것을 내놓는 것이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간이나 고기를 갈아 익히고 식힌 파테(Pâté)와 프랑스 식 육회인 타르타르(TarTar), 조개 관자와 같은 해산물, 메추라기 같은 작은 가금류도 많이 쓰인다. 일식의 영향으로 ‘사시미’도 흔히 보인다.
그런데 두번째 코스가 나가고 나서 세번째 코스가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주방 문제가 아니다. 헤드셰프가 웨이터에게 말한다.
“썅, 정말 늦게 먹네. 확인 좀 해봐.”
코스가 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짠 것 마냥 두 번째 코스에서 막혀 있다. 음식을 앞에 두고 이야기만 나누고 있다. 코스가 밀리면 회전이 늦게 되고 마감 시간도 늦춰지며, 나중에 한 섹션에 과부하가 걸릴 수도 있다.
이렇게 완급이 중요한 이유는 코스요리는 장거리 달리기이기 때문이다.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그리고 지루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코스를 짜는데 원칙이 있다면 식재료나 소스를 겹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편하자고 같은 재료를 연달아 쓰면 제대로 된 코스가 아니다. 튀긴 음식이 계속 나와서도 안 되고 구운 음식이 계속 나와도 안 된다. 한 번은 부드럽게, 한 번은 바삭하게, 한 번은 노릇하게, 식감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 그러다보면 마치 강 약 중 강 약으로 이어지는 5/8 박자처럼 리듬을 타고 식사가 절정으로 향해 간다. 그러나 그전에 거쳐야 할 것이 있다.
프리 디저트 (Pre Dessert), 메인 시작 되기 전 잠깐의 휴식, 식사의 터닝 포인트다. 프리 디저트란 이름처럼 정식 디저트가 아니다. 입맛을 정리 하기 위해 메인 요리 전에 나오거나, 말 그대로 디저트로 전에 나와 달지 않은 메인에서 디저트의 단맛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그래서 달지 않게, 보통은 오이나 셀러리 등으로 만든 소르베가 나온다.
메인도 육해공, 이렇게 세 개는 나와야 테이스팅 코스라고 할 수 있다. 갑각류가 하나 더 나올 수도 있고, 양고기와 쇠고기가 함께 나올 수도 있다. 큼지막한 고깃 덩어리를 기대하지는 말자. 메인이 시작되기 전에 먹은 코스 갯수가 많게는 다섯 개, 메인도 최소 두 개다. 개별 요리의 양이 적다면 익는데 걸리는 시간도 적게 들고 조금 더 섬세하게 조리할 수 있다.
이윽고 핏기가 감도는 고기가 손님의 입속에 들어간다. 첫 번 째 절정, 앙트레와는 다른 크고 강한 맛이다. 메인에서 비프 스테이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스테디 셀러요 베스트 셀러다. 그러나 비프 스테이크는 특별한 날의 정찬으로는 너무 평범하다. 나온다 하더라도 최고급 와규(Wagyu) 정도가 아닐까? 나머지 자리는 어린 양고기와 섬세한 생선 요리,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날이라면 어김없이 달달한 살점의 랍스터가 차지할 것이다.
메인이 자리를 비워주고 나면 이제 치즈 차례다. 정찬이라는 개념 자체가 프랑스에서 비롯된 것이다보니 치즈는 필수다. 원산지와 종류 별로 나눠진 십 여 종의 치즈 중 몇 가지를 고르면 웨이터는 그 자리에서 작은 덩이로 잘라 준다. 사람의 체취를 닮은 치즈 향이 레스토랑에 가득하다. 그 향은 밝기보다는 어둡고, 낮이기보다는 밤의 향이며, 정신이 아니라 육체의 것이다.
치즈를 떼어 먹는 손님들의 얼굴도 상기 되어 있다. 남녀의 속삭임은 은밀하지만 열기가 느껴진다. 그들의 열기는 차오르지만 반대로 주방은 마감을 할 시간, 메인을 내던 그 열기가 사그라든다. 셰프들은 남은 식재료를 정리하고 청소를 시작한다. 주방 밖으로 나가 담배 한 대를 피고 오는 이들도 있다.
긴 정찬 레이스를 마무리하다
“어땠어?”
“괜찮아.”
다들 말수가 별로 없다. 얼굴은 벌겋고 몸은 땀에 절어 있다. 몰래 담배 피는 고등학생처럼 빠르게, 그리고 끝까지 꽁초를 빨고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간다. 그 사이 바톤 터치를 하듯 디저트를 내는 페이스트리 주방이 한참 바빠진다. 코스의 후반부, 아직 강렬한 한 방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두 번 째 절정, 디저트다. 디저트만 담당하는 헤드셰프를 따로 둘 만큼 그 비중은 절대적이다. 머리 끝까지, 지금까지 나온 모든 요리가 잊혀질만큼 달고 화려하다. 메인요리처럼 두 세 번에 걸쳐 나오는 디저트, 그 중 초코렛으로 만든 요리는 무조건 나온다. 장담한다. 그것이 케이크든 수플레든 확실하다. 수플레도 마찬가지로 빠지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먹은 코스에서는 안 나왔다’며 항의는 하지 말길 바란다. 가끔은 주전이라도 쉬는 경기가 있는 법이다.
디저트 다음에도 나올 코스가 있다. 프티 뽀(Petit Four), 작은 오븐이란 뜻으로 마카롱, 초코렛과 같이 한 입에 들어갈만한 단 과자가 나온다.
“아아.”
작은 보석 같이 예쁜 것들을 입에 넣으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아쉬움 때문인지, 아니면 그토록 황홀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프티 뽀까지 마치면 차나 커피로 식사를 마무리한다. 기본은 에스프레소, 지금까지 나온 모든 음식의 잔해를 없애는, 저 어두운 밤 하늘처럼 까맣고 독한 것이다. 커피를 마실 쯤이면 디저트 쪽을 제외한 셰프들은 이미 정리가 끝내고 퇴근할 준비를 마쳤을 것이다. 모두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이제 일어날까?”
웨이터는 정중하게 계산서를 테이블에 놓아둔다. 카드로 계산을 하고 문을 나서면, 레스토랑에서는 따로 준비한 선물을 손님에게 건내기도 한다. 레스토랑의 로고가 찍힌 간단한 소스나 주전부리가 보통이다. 먹는 것도 쉽지가 않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긴 시간이 흐른 뒤다. 밖으로 총총히 나서면 거리는 취한 사람들이 돌아다니거나, 혹은 저 찬란한 기억과는 다른 완전한 적막이다.
“내일 보자.”
그리고 마침내 셰프들도 주방을 나선다.
“휴우.”
모두 고생이다. 손님은 먹느라 힘들고 셰프들은 그 많은 코스를 내느라 힘들다. 배를 채우자면야 김밥 한 줄에 컵라면 한그릇으로 충분하다. 코스 요리에 내는 값이면 김밥 몇 십 미터는 살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고급 레스토랑의 이익률은 5%도 안 되는 곳이 허다하다. 돈보다는 ‘최고’라는 명예를 얻기 위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셰프와 웨이터들은 최저임금에 가까운 돈을 받으며 노예처럼 일하고, 그렇게 아낀 돈은 모두 최고급 재료와 최신 주방 기기를 사는데 쓰인다. 사치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치가 하룻밤 몇 차까지 술을 마시며 쓴 돈과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매일 먹는 그렇고 그런 식사를 가볍게 압도하는 스케일, 수 십 명의 스테프가 힘을 모아 만들어낸 식문화의 정점, 3, 5, 8 과 같은 코스 숫자로는 다 드러나지 않는 우아한 드라마다.
어쨌든 우아한 음식을 만들었던 나는 배가 고프다. 밑준비에 바빠,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자정에도 여는 식당에 들른다. 코스는 아니다. 한 접시에 푸짐하게 나오는 셰프들의 소울푸드다. 크게 외친다.
“빅맥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