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 기자의 문화이야기] 조선시대부터 #먹스타그램이 있었다!

2016/07/06

옛말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지요.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금강산 여행은 평생의 꿈이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가운데서도 첫 손에 꼽힐 정도였어요. 그래서 수많은 시인과 화가가 금강산을 유람하고 주옥같은 시와 그림들을 남겼습니다. 그런 금강산인데도 허기 앞에선 장사 없나 봅니다. 일단 좋은 구경도 밥 먹고 하자는 속담이 전해져올 정도니까요. 삶이란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일입니다.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먹을거리를 장만하고 음식을 해먹는 모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화가들의 단골 소재였습니다. 얼마 전 <풍미 갤러리>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서양의 명화 중에서 음식과 관련된 그림만을 골라 묶은 미술책입니다. 다 읽고 나니 궁금해졌어요. 우리 조상이 남긴 옛 그림 속에는 어떤 음식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하고 말이지요.

 

#아이스타그램, 아이의 첫 음식 모유를 담은 자모육아        

|신한평 <자모육아>, 종이에 담채, 23.5×31.0cm, 간송미술관 소장

올해 놓쳐서는 안 될 미술 전시회가 있습니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8월 28일까지 이어지는 <간송문화전 6부: 풍속인물화 – 일상, 꿈 그리고 풍류>입니다. 저 유명한 신윤복의 <미인도>를 비롯해 보석처럼 빛나는 우리 옛 그림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지요.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풍속인물화에는 음식과 관련된 그림들이 제법 많은데요. 위의 그림은 신윤복의 아버지인 신한평(申漢枰, 1735~1809)이란 분이 그린 자모육아(慈母育兒)란 작품입니다.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이를 기른다는 뜻이지요. 자녀 셋을 둔 어머니가 막내인 갓난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습니다. 엄마 품에 폭 안겨 젖을 빠는 아기, 그 모습을 한없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을 어쩜 저리도 사랑스럽게 그렸을까요. 모유(母乳)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먹는 음식입니다. 젖을 떼고 나면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귀하디귀한 음식이기도 하고요.

 

#술스타그램, 신윤복이 화폭에 담은 주막의 풍경

|신윤복 <주사거배>, 종이에 담채, 28.2×35.6cm, 국보 제135호, 간송미술관 소장

기왕 말 나온 김에 신윤복의 그림도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국보 제135호로 지정된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에 실린 그림 30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술집 풍경이군요. 신윤복이 즐겨 그린 기생은 보이지 않고 가마솥 뒤 부뚜막에 앉은 주모가 국자로 술을 떠서 잔에 따르고 있습니다. 갓 쓴 손님네들이 다들 서 있는 걸 보면 요즘 말로 딱 선술집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술은 어쩔 수 없이 술인 모양입니다. 오른쪽 위에 한자로 된 글귀 내용이 또 절묘합니다. “술잔 들어 밝은 달 맞아들이고, 술항아리 안은 채 맑은 바람 대하네.” 화가의 풍류가 이랬습니다.

 

#회식스타그램, 강가에서 즐기는 풍류 넘치는 회식

|김득신 <강상회음>, 종이에 담채, 22.4×27.0cm, 간송미술관 소장

이번엔 강가에 조촐한 밥자리가 마련됐군요. 조선 후기에 풍속화가로 이름을 날린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의 작품입니다. 옛날 옛적엔 뜻 맞는 사람끼리 강에 나가 고기도 잡고, 잡은 고기를 요리해서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주로 삼복에 일손 없는 날을 골라 이른바 천렵(川獵)을 즐기는 것도 옛 사람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놀이였다고 합니다. 가운데 생선 요리를 놓고 둘러앉은 네 사람이 밥을 먹고 있는데, 한 명은 그 뒤에서 혼자 술병을 독차지하고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네요. 한 소년이 나무 뒤에서 지켜보며 뭐라도 좀 얻어먹을 수 있을라나, 기회를 엿보는 것만 같아 웃음을 줍니다.

#일상스타그램, 김홍도가 담은 일상의 풍경들

아주 오래 전부터 정물화를 그려온 서양과 달리 우리 옛 그림에는 정물화의 전통이 없습니다. 먹거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림이 없다는 뜻이지요. 음식을 먹거나 요리를 준비하는 모습, 더 넓게 잡아도 고기 잡고 농사짓는 풍습 정도를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나라 회화사를 대표하는 풍속 화가를 딱 한 사람만 꼽으라면 단연 김홍도가 되겠지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조선시대의 이미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김홍도의 풍속화 25점을 수록한 기념비적인 화첩 <단원풍속도첩>(보물 제527호)에도 어김없이 음식과 관련된 그림들이 있습니다.

|왼쪽부터 김홍도 <점심> <주막>, 종이에 엷은 채색, 28.0×23.9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너무나도 유명한 그림들이지요. <점심>은 말 그대로 점심 식사 장면을 그린 겁니다. 화면 한가운데 숟갈로 밥을 떠먹는 인물을 중심으로 조촐한 서민들의 야외 식사 모습이 정감 있게 묘사돼 있습니다. 하루하루 팍팍하고 고단한 삶을 살았을 백성들의 먹고 사는 일상을 참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어요. 위에서 술집 그림을 잠시 보았지만 사실 백성들이 밥 먹고 술 마시던 곳은 <주막>이지요. 평상도 아닌 댓돌에 걸터앉아 밥그릇을 한쪽으로 기울여 숟갈로 음식을 뜨는 모습을 보세요. 그릇에 음식을 담는 주모의 표정은 또 어떤가요. 이런 백성들의 소박한 건강함이야말로 김홍도의 풍속화가 갖는 진정성의 힘이 아닐까요.

 

#요리스타그램, 세계에서 사랑받는 김준근이 담은 우리의 풍속

|<국수 누르는 모양> 김준근b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화가로 김준근(金俊根, ?~?)이란 분이 있습니다. 원산 지역 토박이 출신의 지방 화가인데, 놀라운 건 김준근의 작품이 해외 미술관과 박물관에 꽤 많이 소장돼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캐나다,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덴마크, 오스트리아, 영국, 일본까지 전 세계 각지에 퍼져 있거든요. 189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에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 가운데는 한국의 풍속을 잘 보여주는 그림을 구하려는 사람이 꽤 많았다고 해요. 김준근의 그림은 그런 외국인 고객들의 취향을 만족시킨 겁니다. 오죽했으면 ‘수출 풍속화’로 불렸을까요.

|왼쪽부터 <떡매질> <두부 짜기>, 김준근

|왼쪽부터 <밥 푸고 상차리기>, <방아찧는 모양>, <엿 만들기>, 김준근

당시의 풍속과 생활상 치고 ‘없는 게 없는’ 김준근의 풍속화는 지금까지 파악된 수량만 자그마치 1600점이 넘는다고 합니다. 게다가 김준근의 작품에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대단히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들이 제법 많습니다. 위의 그림 여섯 점을 차례대로 살펴보면 <국수 누르는 모양>, <두부짜기>, <떡매질>, <밥 푸고 상차리기>, <방아찧는 모양>, <엿 만들기>입니다. 정말 다채롭지 않나요? 조선시대 어떤 풍속화가도 이토록 세세한 것까지 그림으로 남기진 않았습니다. 가히 살아 있는 생활사 교과서라 할 만하지요.

 

#여행스타그램, 외국인의 시선에 비친 우리의 모습

|엘리자베스 키스 <맷돌 돌리는 여인들 Women at Work>, 종이에 구아슈, 1919년

그렇다면 낯선 이방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일제강점기에 한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풍속을 그림으로 남긴 영국의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의 그림 중에도 음식과 관련된 작품이 두 점 있습니다. <맷돌 돌리는 여인들>이란 제목의 수채화는 두 여인이 마당 한가운데서 맷돌로 뭔가를 갈고 있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이런 모습이 외국인 화가의 눈에는 분명 이국적으로 다가왔겠지요.

|엘리자베스 키스 <금강산 절 부엌 A Temple Kitchen, Diamond Mountains>, 채색 목판화, 1920년

이번에는 <금강산 절 부엌>이란 제목이 붙은 채색 목판화인데요. 아주 깔끔하게 정돈된 어느 절 부엌에서 한 남자가 부뚜막에 올라앉아 아궁이 밥을 짓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구수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장면까지 정말 생생하게 그려놓았네요. 그러고 보니 금강산 이야기로 시작한 우리의 그림 여행은 묘하게도 이렇게 다시 금강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 옛 그림에서는 결코 본 적 없었던 ‘밥 짓는 남자’와 함께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