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셰프가 알려주는 캠핑 레시피

2016/06/20

“너희들이 떠들어서 고기가 도망 가잖아.”

아버지는 낚시대를 거두며 투덜거렸다. 앞으로는 샤갈이 쓰던 파란 물감을 푼 것 같은 바다가 멀리 펼쳐졌고, 그 위로는 한 여름의 태양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빛을 발했다. 한낮 온도는 30도를 넘었고 햇빛 피할 길 없는 갯바위 위는 불판 위에 올라간 것처럼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20년도 전, 우리 가족은 부산 영도의 동삼중리에 피서를 갔다. 더위를 피해야 피서인 것인데 바다에 왔으니 물고기를 잡아야 한다는 일념에 불타던 아버지는 부득불 갯바위 위에 홀로 섰다. 붕어 낚시도 아니고, 저 멀리 줄을 던지는 릴낚시 이거늘, 시끄럽다고 물고기가 도망간다는 논리에 10살 갓 넘은 우리 형제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물고기는 잡히지 않고 우리가 입을 삐죽거릴 무렵이 되면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밥 먹자!”

갯바위 멀리, 한적한 공터 차양막 아래에서 우아하게 쉬던 어머니의 기다리고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려오면 아버지는 “이제 좀 잡히려는데”라고 중얼거리며 못이긴 척 낚시대를 거두었다. 그쯤 우리는 이미 차양막 아래 들어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윽고 펼쳐질 만찬의 면면을 보면 굳이 왜 바닷가까지 와야 했는지 의심이 들었다. 고기 또 고기. 고기가 없으면 밥 먹은 것 같지 않다는 동생과 아무래도 물고기 보다는 육고기가 좋다던 서울 출신 아버지(그런데 왜 낚시를?) 덕분에 반찬의 태반은 고기였다. 그 양상을 보며 나는 이런 합리적인 질문을 했다.

“이럴 거면 그냥 집에서 고기 먹으면 안 돼요?”

굳이 왜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물고기는 아니 잡는 것인지 못 잡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수고를 해야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준비한 화로에 번개탄을 올리고 불을 당기면 그 말은 쏙 들어갔다. 그 불길을 보노라면 어린 나의 머릿 속에는 이미 구워진 고기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준비한 삼겹살, 제육, 불고기를 순서대로 올리고 ‘치치직’하는 불길 닿는 소리와 야생의 본능을 자극하는 고기 익는 냄새가 요염하게 공기를 가르면 나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하고 모든 욕망이 식욕으로 변했다.

20세기가 아닌 21세기 한국의 초여름, 시대가 바뀌어 그때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었지만 여전히 날이 좋을 때 산과 들로 나가는 풍습은 건재하다. 먹는 것 또한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다. 그 밥에 그 나물이란 말이 딱 드러맞는다. 언제까지 삽겹살에 쇠고기 등심만 먹을 것인가? 하긴 그것이 마치 아버지의 노래방 18번처럼 자주 먹어도 쉽게 질리지 않고 남녀노소 좋아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좋은 말이라도 자주 들으면 질리듯, 이왕 시간을 내어 산과 들로 나간다면, 매번 집에서, 혹은 길거리 식당에서 뭔가가 달라야 조금 더 그 맛이 살 것이다.

쇠고기 대신 양갈비

양갈비는 양꼬치 집에서만 먹는 것이 아니다. 근래 이마트나 SSG 마켓 같은 대형 마트에 가면 양갈비 파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아직 호주나 영국처럼 본격적으로 파는 것은 아닐지라도 매대 한 켠에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만으로도 세월이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여전히 양고기는 냄새가 나서 싫다는 사람들이 많다. “진짜 맛있다”고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입에도 대지 않으려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제대로 겪어보지 못해서 그럴 뿐이다. 주방에 있을 때 소고기는 ‘질렸다’며 거들떠도 보지 않던 요리사들이 한 점이라도 더 먹겠다고 달려들던 것은 바로 양갈비였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비록 사이코패스에 살인마 이지만 감미안이 뛰어났던 미식가 살인마 랙터 박사가 선택한 식사 역시 양갈비였다. 양갈비도 뜨겁게 달군 불판에서 겉만 살짝 지져 피가 뚝뚝 떨어지는 레어로 먹어야 제 맛이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양고기의 대부분은 ‘램(lamb)’으로 한 살 이하의 어린 양이다. 어린 것 특유의 연한 식감이 입 안에서 녹아들고 희미하게 풀냄새가 나는 육향을 즐기면, 베토벤의 6번 교향곡 ‘전원’이 흘러나오는 듯 목가적이고, 식욕이 돋을라치면 어린 양을 잡아 놓고 축제를 지내던 저 옛날로 돌아간 듯 야성이 끓어온다. 양고기에 곁들이는 소스도 돼지고기나 소고기와는 다르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민트젤리다. 양고기 매대 한 켠에 같이 팔고 있을 확률이 높은 민트젤리의 달달한 박하향은 양고기는 궁합이 좋다. 요구르트에 민트잎을 다져서 넣고 올리브유, 소금 등으로 간을 하면 그것 역시 훌륭한 양고기 소스가 된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고기가 있으면 술이 빠질 수 없는 법이다. 양고기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보다 와인이 훨씬 잘 어울린다.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방목을 하기 때문일까? 양고기에서는 프랑스 요리에 흔히 쓰이는 허브 향이 나는데 이 향은 와인에서도 똑같이 발견할 수 있는 종류다. 덕분에 프랑스 론 지방에서 나는 ‘샤토네프뒤파프’ 같은 와인을 양고기와 함께 먹으면 왜 본토 프랑스 사람들이 이리도 양고기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도 꼭 삼겹살과 소고기 등심을 먹어야 한다면

그러나 누구 한명은 양고기를 거부하기 마련이다. 몽골 유목민도 아닌 마당에 양고기 몇 킬로그램을 먹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삼겹살과 소고기 등심 굽지 않으면 먹는 것 같지 않다는 전통주의자도 있기 마련이다. 고추장 쌈장도 훌륭한 소스이지만 이 두 개를 곁들이는 순간 결국 상추쌈이 필요하고 소주가 뒤따르게 된다. 조금만 준비를 한다면 캠핑을 나가서도 이국적인 소스를 맛 볼 수 있다.

그중 추천하고 싶은 것은 침미추리 (chimichurri)소스다. 브라질 원산의 이 소스는 한국인의 입맛에도 크게 엇갈리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다진 고수, 오레가노, 샬롯, 파슬리, 올리브유, 레드와인식초, 마늘, 레몬즙을 적당량 넣고(레시피에 이런 말을 쓰면 반칙 같지만 정말 그렇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면 된다. 산미가 있어 깔끔한 이 소스는 한 여름 소나기처럼 청량하고 소고기와 돼지고기 둘다 잘 어울린다. 만약 요리에 자신이 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소스가 있다. 바로 홀렌데이즈 소스다. 버터를 녹여 위로 뜬 유분을 제거한 클래어파이드 버터(clarified butter)와 후추와 샬롯을 넣고 졸인 식초로 만드는 이 프랑스 소스는 마요네즈의 따뜻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만드는 방법은 조금 까다롭다. 먼저 화이트 와인 식초(업장에서는 샴페인 식초를 쓴다)에 으깬 통후추와 샬롯(shallot)을 넣고 절반 정도로 졸인다. 여기에 동량 정도의 몰을 섞고 중탕기에 올린 뒤 녹인 버터를 조금씩 부어가며 거품기로 채를 치면 되는데 이 작업이 까다롭다. 많은 양을 만드는 것이 실패할 확률이 적으니 이왕이면 많이 만드는 것이 좋다. 만약 제대로 만든다면 별 달린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은 식사를 할 수 있다. 녹여 거른 버터의 풍부한 맛과 식초의 산미가 맛의 중심을 잡고 후추의 매콤함이 뒤를 받친다. 여기에 구운 고기를 찍어 먹으면 버터로 만든 소소가 이리 맛있는지, 왜 프랑스 미식이 위대한지 실감할 수 있다.

샐러드 드레싱, 부디 직접 만들자

마트 매대에 가면 차고 넘치는 것이 샐러드 드레싱이다. 건강에 좋다며 지방과 당이 들지 않았다고 붙여놓은 것도 많다. 그런 것들이 맛이 있을리가 없다. 특히 발사믹 드레싱이라고 하여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를 섞어 놓은 것을 볼 때면 지긋지긋한 기분까지 든다. 오히려 심플하게 올리브유 3에 레몬즙 1, 마늘, 디종 머스타드, 1/4의 설탕과 약간의 소금을 섞으면 보다 산뜻하고 맛있는 드레싱을 만들 수 있다. 흔히 프렌치 드레싱이라고 부르는 이 소스와 구운 닭가슴살, 로메인 상추, 파마산 치즈 등을 섞으면 그 자체로 훌륭한 샐러드가 된다.

한낮에 즐기는 칵테일

뜨거운 태양이 쬐는 낮이라면, 혹은 열기가 가시지 않은 밤이라면 간단히 만든 칵테일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 클래식 칵테일, 진토닉이 가장 만만하다. 소나무 과의 주피터 열매로 만드는 진(gin)은 영국인들이 가장 즐겨하는 리쿼다. 진 때문에 벌어진 알콜 중독에 큰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던 전력이 있을 정도다. 이 진은 무엇보다 여름에 마시면 좋다. 진 5에 라임주스 1, 그리고 시럽 1을 넣고 쉐이킹한 김렛(gimlet)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칵테일로 레시피가 매우 간단하지만 그만큼 맛을 제대로 내기 어렵다 하여 바텐더의 실력을 알아보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놀러 나와서 어깨에 각 잡을 필요는 없다. 맛있는 진토닉 만으로도 피크닉의 격은 몇 순위 올라간다. 취향에 맞는 진 브랜드를 고르고 달지 않은 헨리스 같은 좋은 토닉 워터를 고르는 것만으로도 맛있는 진토닉에 다다를 수 있다. 오이를 얇고 길게 썰어 넣고 민트잎 몇 개를 올리면 더 좋다.

이렇게 준비가 끝나면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현재에 충실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이 없는 태양 아래 선선한 바람이 불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그들에게 온전히 마음을 쓰는 것, 다가오지 않은 미래와 지나간 과거 아닌,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지는 것만이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