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환 작가의 DSLR 여행기] 히말라야에서 만난 사람들, 네팔 2편

2016/08/21

 

위치
아시아의 산맥으로 인도아대륙과 티베트 고원 사이, 파키스탄, 인도, 중화인민공화국 시짱 자치구, 부탄, 네팔에 걸쳐 위치

최고봉
높이8,848m (29,029ft)의 에베레스트 산

기후
산의 높이에 따라 기후차가 심하고, 우기(6-9월)와 건기(10월-5월)가 있음

 

셰르파는 티베트말로 ‘동쪽 사람들’이란 뜻이다. 산에서 만나는 많은 포터와 고산 안내자의 이름엔 ‘셰르파’가 꼭 들어간다.

렌조 패스 고갯마루에서 바라본 쿰부히말. 먼 옛날 이곳은 바다였다. 물 아래에서 커다란 땅덩어리들이 부딪혀 하늘 위로 치솟은 땅, 이곳이 히말라야다.

가파르고 험한 고개인 렌조 패스 Renjo Pass, 5417m를 만났다. 기암괴석의 바윗돌 수천 개를 밟은 끝에 겨우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히말라야의 모든 고개에는 티베트 불경이 인쇄된 오색 깃발이 나부낀다. 에베레스트와 주변 고봉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숨통이 트인다. 이곳은 쿰부히말의 상당 부분을 가장 넓게 조망할수 있는 뷰포인트다.

 

렌조 패스를 넘어 고쿄 피크 중턱에서 바라본 마을과 호수. 고쿄 피크에서 바라보는 조망도 훌륭하다.

 

앙상한 가지에 맺힌 은빛 얼음꽃이 피었다.

 

호주에서 온 용감한 대학생 토라와 세라 자매다. 부모님께 겨우 허락을 받고 한 달 동안 트레킹을 한다고 했다. 이 험한 길을 여자 두 명이서 도전하다니, 얼마나 용감한가!

 

촐라 패스라는 관문을 넘어서면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진다. 아름다운 봉우리로 이름난 아마다블람의 야경을 담았다. 칠흑같은 어두운 밤하늘에서 뻗어 나오는 수많은 별빛!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더욱 밝게 빛난다. 아마다블람은 히말라야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 중 하나다. 쿰부히말을 트레킹하다 보면 어디에서든 아마다블람의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다. 바로 옆에 촐라체가 하늘 위로 치솟아 있다. 자세히 보면 소름 끼칠정도로 거친 바위산이다. 골 사이사이 쌓인 흰 눈덩이 때문에 산이 더 시커먼 느낌이다.

 

촐라 패스를 넘어 눈밭을 걷고 나면 가느다란 등산로가 바위산을 끼고 시작된다. 저 너머에는 수만 년에 걸쳐 형성된 커다란 빙하가 절벽을 이루고 있다.

히말라야의 뜻과 에베레스트 산의 진짜 높이 히말라야 Himalaya는 산스크리트어로 히말 Himal(Snow)+알라야alaya(House), 즉 ‘눈의 거처’란 뜻이다. 에베레스트는 영국인들이 1865년 영국왕립지리학회 초대 측량부 장관 조지 에베레스트 George Everest 경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네팔 지도에는 에베레스트란 이름의 산이 없다. ‘사가르마타 Sagarmatha’가 있을 뿐이다. 네팔의 모든 정부 공식문서나 행정구역명엔 사가르마타가 표준이다. 산스크리트어로 ‘하늘의 머리 Head of the Sky’라는 뜻이다. 하지만 셰르파들은 초모룽마 Chomo rungma라고 부른다. ‘세상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중국도 초모룽마를 차음해 주무랑마 珠穆朗瑪라고 한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칸첸중가가 히말라야의 최고봉인 줄 알았다.하지만 영국 측량대가 실제 측량을 하다 보니 더 높은 산이 칸첸중가 너머에 있었다. 보통 에베레스트의 높이는 8848m로 알려졌다. 하지만 8880m나 8863m로 표시되기도 한다. 미국 탐험대는 GPS 장비를 이용해 8850m라고 발표했다. 2005년 중국의 한 기관은 8844.4m라고 주장했다. 기준이 되는 해수면의 높이가 날마다 들쭉날쭉 달라질뿐더러, 측정 방법에 따라 또 다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산꼭대기 위의 빙설이 3.5m나 된다. 어찌됐든 네팔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높이는 8848m다. 혹자는 지구온난화에 의해 3.5m나 되는 빙설이 녹아 내려 높이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지질 학자들은 지각운동에 의해 해마다 6mm씩 동북쪽으로 움직이면서 높아진다고 말한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산악인 중에는 휴대전화 번호 뒷자리가 ‘8848’인 경우가 많다. 고 박영석 대장이 그랬고, 엄홍길 대장도 그렇다.

 

촐라체에서 딩보체 마을로 내려가는 길.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사이에 드넓은 초지가 펼쳐져 트레킹의 진수를 맛볼수 있다.

 

부처님의 자비, 힌두 신들의 보호, 어느 신이든 절대자의 살핌 없이는 저 고봉을 오를 수 없다. 거대한 자연의 품에 마음과 몸을 맡기고 겸허하게 한발 한발 나아갈 뿐이다.

 

우리가 묵은 로지 주인장의 네 살 꼬마 공주 리마 Lima가 깜찍한 재롱을 피운다. 어눌한 토막 영어로 거리낌 없이 말을 붙여 왔다. 동네 영어교실에서 익힌 솜씨란다. 짐짓 어른인 우리에게 큰 소리로 야단도 친다. 귀엽다.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외국인들의 왕래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네 살이지만 결코 응석받이가 아니다. 혼자서 차가운 수돗물에 자기양말과 신발 빨래를 거뜬히 해낸다. 한국의 네살배기와는 천지 차이다.

 

남체 Namche, 3420m로 내려오는 내내 구름이 발갛게 불이 붙어 있었다. 활활 산불이라도 난 것처럼 서쪽 하늘이 붉디붉게 물들었다. 고산의 공기층이 아래 지역과 달라 아침저녁 노을빛이 다르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만날 수 있는 신기한 볼거리 중 하나다.

히말라야의 겨울 구름은 오묘하다. 무지갯빛을 발한다. 신비하다. 어찌 보면 악마가 입을 벌려 삼킬 듯 기괴하기도 하다. 금세 광풍이 몇 차례 일더니, 양털 구름이 푸른 하늘에 일자 모양으로 획을 긋는다. 한참을 히말라야의 하늘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었다. 고단한일정 속에서 잠시 잠깐 느껴 보는 여유다.

 

남체는 산 발치다. 루클라 쪽에서 올라온 많은 트레커들은 이곳에서 하루 이틀 묵는데 본격적인 고산 적응을 위해서다.

 

남체에는 엄홍길대장의 이름이 새겨진 방이 따로 있다. 한국인 최초로 14좌를 완등한 그를 기리는 방이다.

 

소년들이 당구대 같은 나무판 위에서 ‘카롬 Carom’이라는 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시야 속에 들어왔다. 카롬은 원반 돌을 손가락으로 밀쳐 구멍에 넣는 것인데 네팔의 국민 게임이다.

 

네팔에 사는 부족들 바깥세계엔 셰르파족이 가장 많이 알려졌다. 산악인들이 주로 이들과 탐험에 나서기 때문이다. 쿰부히말 주변에만 3만5000여명이 살고 있다. 예전엔 산 너머 티베트와의 교역으로 먹고살았지만, 요즘은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셰르파는 종족의 이름이면서 성 姓이다. 포터들의 이름을 물으면 성과 이름이 같은 사람이 많아 처음엔 헷갈린다. 우리 팀에도 파상 셰르파가 두 사람이었다. 그래서 ‘키 큰 파상’, ‘술 잘 먹는 파상’이라고 구별해 불렀다. 셰르파족은 아이 이름을 태어난 요일에 따라 짓는다. 자연히 같은 이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월요일에 태어나면 다와 Dawa, 화요일에 태어나면 밍마르 Mingmar라고 부른다. 라크파(Lhakpa, 수요일), 푸르바(Phurba, 목요일),파상(Pasang, 금요일), 펨바(Pemba, 토요일), 니마(Nyima, 일요일) 이런 식이다. 남자 여자 똑같이 짓는다.

이 밖에도 네팔 전역엔 여러 부족이 살고있다. 네와르족 Newars은 100만 명이 넘는다. 카트만두 계곡 쪽에 몰려 있으며, 유명한 예술가가 많다. 네와르 건축과 미술 양식도 이들의 창조성에서 비롯됐다. 포터들 중에는 셰르파족 외에 구룽, 타망, 라이족 등이 있다. 구룽족 Gurungs은 티베트-미얀마계인데 안나푸르나가 있는 포카라 주변에 많이 산다. 구르카 용병으로 많이 활동한다. 라이족과 림부족은 동부 네팔 국경 산악 지역에 많이 산다. 인도 시킴에서 이들을 많이 만났다. 이들도 쿠쿠리라는 칼을들고 다니며, 구르카 용병으로 많이 들어갔다. 타망족 Tamangs은 카트만두 북부에 많이 살며 육체 노동자가 많다. 카트만두 기념품 가게에서 만나는 탱화나 카펫은 대부분 이들의 손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순수 티베트족도 있다. 이들은 중국의 티베트 침공 때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온 12만 명의 망명자 중 일부다. 1만2000여 명이 네팔로 이주해 살고 있다. 카트만두 시내 호텔, 음식점 사장들은 거의 티베트계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이가 많다.

겉보기에는 아름다운 호수가 엄청난 자연 재앙이 될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10년 안에 히말라야 산맥의 50여 군데에서 큰 홍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유엔환경계획 UNEP이 경고했다.

 

물건을 나르는 좁교 행렬. 3000m 위에서는 야크가 힘을 발휘하고, 그 아래에서는 좁교가 짐을 나른다. 좁교는 야크보다 털이 적고 몸집도 작다.

 

루클라 공항은 경비행기 전용으로 커다란 운동장이 활주로다. 커다란 버스터미널 같다. 활주로 아래는 낭떠러지다.이륙할 때는 절벽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두둥실 탄력을 받고, 착륙할 때는 골짜기에서 절벽으로 오르는 동안 자연히 속도가 줄어든다. 비행기표에는 지정 좌석이 없다. 그냥 전망 좋은 곳에 앉으면 된다. 카트만두로 갈 때는 오른쪽 창가에서 에베레스트와 고산들을 볼 수 있다. 루클라에 올 때는 왼쪽이 고산 밀집 지역이다.

 

가난한 산골 마을을 찾은 이방인들을 보기 위해 전교생이 교사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이제 10년 뒤,20년 뒤 이 아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마을은 또 얼마나 변해 있을까?

 

세계 어디에서나 어린이는 어린이다. 한 가정에서 나라에서 이들은 미래요 희망이다.

 

 

나마스테 Namaste! 안녕하세요! ‘내 안의 신이 당신의 신에게 인사합니다.’라는 뜻이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말이 또 있을까?

 

비행기에서 본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은 또 다르다. 날이 맑아 한 달 내내 걸었던 가우리샹카르와 에베레스트 산군도 구별할 수 있었다. 비행기로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를 한 달 동안이나 두 발로 걸었다. 참 우습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이제는 여행을 마무리해야 할 때다. 파키스탄의 카라코람 히말라야에서, 인도의 동북쪽 끝 시킴과 네팔 끝 일람의 차밭까지 180일간의 히말라야 유랑 流浪이 끝났다. 언젠가 이 아름답고 정겨운 시골 마을들을 다시 올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웃음, 눈물, 도전, 실망, 두려움, 좌절로 뒤범벅된 긴 시간이었다.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 자신도 돌아봤다. 견디기 힘든 자갈밭과 눈밭, 추위에 몸과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적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원정 기간 내내 가장 소중했던 건 결국 ‘사람’이었다. ‘사람’은 ‘사랑’이었고 스승이었다. 삶은 기나긴 여행이며 유랑이다. 또 다른 유랑의 시간이 언젠가는 다시 올 것이다. 유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