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은 질문 할 줄 몰라서 문제라고 한다. 질문을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구식 문화 때문이라는 주장과 질문을 할 정도로 심화된 지식이나 논리를 갖추지 못해서라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질문을 꽤 자주 받는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갈만한 식당 좀 추천해주세요.”
장소도 사람도 특정짓지 않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돌에 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해진다. 혹은 이런 질문도 있다.
“추천 식당 리스트 좀 주세요.”
아예 리스트를 통째로 넘기라는 주문이다. 물론 나도 나만의 리스트가 있다. 새롭게 문을 연 식당, 혹은 가봄직 한 곳은 스크랩해놓고 갈 기회를 엿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갈만하고 좋은 식당이 언제나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만약 요즘의 화두인 인공지능을 탑재하여 질문한 이의 상황과 처지를 ‘알아서’ 파악해 그가 가고 싶은 곳을 독심술의 대가처럼 말해주고 싶지만, 매번 내가 처하는 상황은 그렇지 않다. 이 정도는 약과다. 정말 난처한 질문은 이런 것이다.
“음식은 맛있었으면 좋겠고, 분위기도 좋아야지. 룸도 있고 말이야, 그런데 값이 좀 쌌으면 좋겠어. 장소는 강남이어야 하고, 회사에서 가까워야 돼. 집에 가기도 편해야지. 아, 그리고 요즘에 핫한 곳 없나?”
청순하지만 섹시하고 돈이 많지만 검소하며 클래식하지만 모던한 듯한 이 질문은 사람을 미궁에 빠뜨린다. 과연 이 사람이 가고 싶은 식당은 어느 곳일까?
이런 질문을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받았던 모양이다. 근래 신문 지상에서 보이는 문장들은 다음과 같다.
“미식의 기준이 열렸다. 한국의 식당이 국제적인 명성을 날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세계 유수의 레스토랑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외국 관광객들에게 제대로 된 레스토랑 가이드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
미쉐린 가이드 서울(THE MICHELIN GUIDE SEOUL)은 미쉐린 가이드 글로벌 컬렉션의 28번째 가이드 북이다.
화려한 형용사로 장식된 문장들을 보면 과연 나라의 국격이 드높아진 것만 같다. 레스토랑에 별을 붙여주는 프랑스 발(發) 미쉐린 가이드 이야기다. 1900년 창간한 미쉐린 가이드는 타이어 회사에서 판촉물로 만든 것이 그 시작이다. 자동차가 막 보급되던 때, 자동차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레저 활동을 소개하기 위해 갈만한 레스토랑을 추린 것이 좋은 반응을 받았고 그것에 부응해 기준을 세우고 지역을 넓혀 나갔다. 애초에 미식은 돈과 권력을 먹이로 자라는 꽃과 같다. 지중해와 대서양이 위아래로, 내륙에는 드넓은 평지에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를 바탕으로 사시사철 각양각색의 물산이 넘쳐나는 프랑스는 미식이 자라나기에 가장 걸맞는 입지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중앙 집권 왕정을 구축하며 그 물산과 사람, 곧 기술이 한 곳에 모여 사치스럽고 그만큼 고급스러운 음식문화가 탄생하게 된다. 저 반대편의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반면 이탈리아는 제대로 된 중앙 권력이 탄생한 것이 20세기 초였다. 지금 이탈리아의 식문화라는 것이 지방 중심의 토속적이고 단순한 음식이 대다수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식 가이드는 미식이 소수의 왕족과 귀족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대중이 그 향유의 주체가 되면서 나타났다. 미쉐린 가이드가 그랬고 미국의 변호사가 만든 자갓 가이드가 그랬다. 새롭게 등장한 정치, 산업 엘리트들과 그들을 닮고 싶어 하는 대중이 미식 가이드의 주요 독자였다. 웬만한 여유가 있지 않고서는 미쉐린 가이드에서 논하는 3스타, 즉 그 식당에 가기 위해 그 식당이 있는 나라에 여행할 수 없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화제거리를 찾는 신문을 비롯한 대중 매체는 날로 영향력이 커져가는 미식 가이드의 향방에 대해 기사를 썼다. 미식 가이드는 근대가 발현되고 본격적인 자본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매식(買食)이 하나의 문화 활동으로 자리 잡음에 따라 발생한 일종의 사회현상인 것이다. 최소한 최근 90년대까지는 그랬다.
미쉐린 가이드가 유럽을 벗어나 미국과 일본에 상륙한 사건은 그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반면 쇠퇴를 알리는 징조이기도 했다. 프랑스에 본진을 둔 미쉐린 가이드가 타 국가로 상륙할 때마다 해당 국가의 매체는 언제나 ‘우리나라의 음식이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이자 ‘세계에 널리 알려질 수 있는 전기’라는 미사여구를 늘어놓았다. 미쉐린 가이드의 인지도와 영향력에 힘입어 그런 효과가 없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관광객들은 허접한 가이드북과 접근하기 어려운 현지 맛집들을 미쉐린 가이드를 통해 소개받았다. 그렇게 세계만방에 미쉐린 가이드가 퍼져 나갈수록 미쉐린 가이드의 진정성과 신뢰도는 하락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아무리 미쉐린 가이드라도 타지의 맛집을 모두 알 수 없고, 또 프랑스 음식이 아닌 현지 음식에 대한 이해도 완벽히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같은 그 별을 주는 기준이 유럽 바깥으로 나갈수록 관대해지고 그 기준 역시 논란이 되었다. 미쉐린 가이드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부의 홍보비 지원을 받고 한국에 온 미쉐린 가이드는 첫해부터 선정 기준에 논란을 일으켰고 두 번째 해가 되었을 때는 소수의 관심만을 받았다.
미쉐린 가이드는 이제 앱으로도 여행과 미식정보를 소개한다.
이제 사람들은 맛집에 대한 절대적 기준을 논하거나 가이드북을 탐독하지 않는다. 대신 손쉽게 인터넷 검색을 하고 텔레비전 방송 맛집 리스트를 훑어본다. 허위 정보와 별점이 난무하고 그 틈에서 제대로 된 집을 찾기 위해 시간과 돈을 써버리며 ‘맛집이란 집치고 맛있는 집을 못 봤다’라고 불평을 한다. 신문과 방송, 가이드북을 불신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리스트를 만들어 SNS를 통해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맛집의 민주화’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리스트는 넘쳐난다. 하지만 그 리스트를 맥락에 따라 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식사라는 행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자신이 가지려고 하는 그 식사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자리인지 알고 그 식당에 들어서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식사하는 상대방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식당과의 관계도 이 변수 속에 들어간다. 오랫동안 왕래하며 식당 주인과 안면을 트고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만의 장소를 만들 때, 그 장소를 사람들과 나눌 때, 그리고 그 사람들과 장소에서 시간 속에 더 깊은 의미를 만들 때, 우리는 유행에 휩쓸려 채집하듯 맛집을 다닐 때 느껴지는 정체 모를 허무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맛이란 미뢰에서 느껴지는 맛 분자의 총합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하는 양상이며 이야기이고 또 때로는 사람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그 사람이 다니는 식당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준다.
주관 없이 남이 좋다는 곳에 철새처럼 부유하며 취향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 오로지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식당들을 소모해버리는 매체. 그 사이에서 얻어맞은 듯 피로해지면 나는 늘 가던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사람들, 와인이 익듯 조금씩 변해가는 분위기, 그 사이에서 나는 평화롭게 식사를 한다. 그곳은 오글거리는 ‘오빠 맛집’도 아니고 거창한 ‘몇 대 천황’도 아니다. 그저 나의 오래된 단골집일 뿐이다.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 정동현 셰프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의 핫한 먹거리를 맛보면서 혀를 단련 중!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 <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