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꿈의 도시·역사의 도시·신들의 도시
오늘날 지구촌의 거의 모든 나라는 서구의 제도와 문화에서 크게 자유롭지 않다. 그서양정신문화 유산의 원류는 이곳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학교 다닐 적, 모든 사회,세계사 교과서의 초입 부분을 장식한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알았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봐도 철학, 정치, 의학, 문학, 예술 등 인간을 아우르는 거의 모든영역의 원천은 바로 이 곳에서 출발했다.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아테네. 인류 정신사의기나긴 여정의 총집합이지만, 조금이나마 살펴보기로 하자.
—
아테네의 가장 높은 곳
아크로폴리스 Acropolis, 신들의 집
신화(神話,Myth)는 그저 상당수 영어단어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야기 상식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를통해 인류의 기원을 추론하고, 신들의 희로애락 이야기에서 삶의 통찰을 얻고 지혜를 얻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단순한 상식 이상인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신화 속에 등장한 크레타와 미케네 문명, 트로이 등이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실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마냥허구로만 볼 일은 아니다.
내게 어떤 단어든 물어봐.
어떤 말이든 그리스말에서 생겼다는 걸 증명해줄 테니까
–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 중 –
그리스 수도 <아테네>가 이런 이름을 얻은 것은, 바로 이 도시의 수호신이 〈아테나〉 여신이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옛 이름은<아테나이>, 즉 <아테네 여신의 도시>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을 아크로폴리스(Acropolis)라 불렀다. 아크로폴리스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도시국가를막기 위한 군사적 요새였지만, 종교적인 행사장이기도 했다. 각 도시의 아크로폴리스에는 그 도시의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신의 집이 있었다.
아크로폴리스는 일 년 내내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항상 복잡하다. 입구를 통과하자 거대한 근육질의 신전이 파란 하늘을지붕 삼아,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답고 장중하며 위엄있다. 46개의 기둥은 지름만 해도 1.5~1.9m, 한번에 안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13미터 높이의 거대한 아테나 파르테노스(Athena Parthenos) 상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신전 안에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모든 것은 파괴되고 사라져버렸다. 고대 여행가들의 기록에는 목조상에 금박을 입혔고, 얼굴과 손발만이상아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상당수 벽장식 등은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엘긴스 마블(Elgin’s Marble)로 알려진 정교한 부조장식은 1802년헐값에 당시 그리스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반입됐다. 오늘날 그리스 정부는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을 반환해 달라고 요청하지만영국 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파르테논 외에 현재 남아 있는 신전으로는 아크로폴리스 입구 쪽 아테나 니케 신전과 왼쪽에 있는 에레크테이온 신전 그리고아테나 폴리아스 신전 및 포세이돈 신전 등이 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던 신상들은 거의 모두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 신전 아래에는 고대의 시장 및 광장인 〈아고라〉가 있다.
제우스의 딸로 태어난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 그녀는 완전 무장한 채 제우스의 머리에서 튀어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아테나는남성에게 필요한 기술인 농경, 원예, 항해술부터 여성에게 필요한 기술인 길쌈, 베 짜기, 바느질 기술까지 관장했다.
왜 하필 이곳이 아테네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아테나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이 도시의 주인 자리를 두고 겨루었다.이들을 제외한 올림푸스의 신들(제우스,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데메테르, 헤스티아, 아폴론, 헤르메스, 헤파이토스, 아레스,디오니소스)은 인간에게 가장 유용한 선물을 주는 이에게 이 도시를 주겠다고 했다. 포세이돈은 소금호수(일부 기록은 말)를, 아테나는올리브 나무를 솟아나게 해 각각 선물로 내렸다. 신들은 소금과 올리브를 비교해 역시 올리브가 인간에게 유익하다고 판정,이 도시를 아테네에 주었다. 이 도시의 이름을 아테네로 만든 주인공이 바로 올리브나무인 것이다.
아직도 파르테논 옆 에레크테이온 신전 옆에는 몇 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자라고 있다. 많은 관광객이 그리스인들에게 올리브가얼마나 중요한 작물인 걸 아는지 모르는 지… 그 나무들은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신들의 신, 제우스 신전
Temple of Zeus
아테네에는 아크로폴리스를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신전들이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정면 쪽에서 가장자리를 향해 쭉걸어나가면 아테네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다보면 신전 터가 하나 보인다. 얼른 보기에아무것도 없는 평지에 덩그러니 기둥들 몇 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곳이 바로 아테나 여신의 아버지인 제우스 신전이다. 파르테논신전에서 내려다보이는 제우스 신전은 높은 언덕 아래에 있는 평지에 세워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보인다.
막상 아크로폴리스를 내려가 제우스 신전의 성역에 들어서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넓다. 실제로 제우스 신전은파르테논 신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훨씬 크고 넓었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들이 총 46개였다면 제우스 신전의 기둥들은 104개나 된다. 또한, 파르테논의 기둥 높이가 11m인 데 비해제우스 신전의 기둥 높이는 17m나 된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기둥은 고작 16개뿐이다.
—
헤로데이온 Herodeion
예술의 전당에서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푸른 숲으로 싸인 극장이 보인다. 기원후 160년경에 로마의 귀족 헤로데스아티쿠스가 아내 레기나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극장이다. 당시엔 지붕과 벽이 가득하고 무려 6000명이나 수용했다니그 규모가 엄청난 극장이다.
이곳 역시 복원이 매우 잘 돼 매년 여름엔 야외공연이 열린다. 세계적인 지휘자 카라얀이나 루치아노 파바로티, 스팅, 엘튼 존 등세계적인 가수, 연주자들로부터 사랑받는 곳이다. 그리스 국민 여가수 나나 무스쿠리의 고별공연이 이곳에서 이뤄졌고, 조수미씨도2005년 호세 카레라스와 공연했다고 하니 명소임은 틀림없다.
—
고대 그리스 국가의 중심,
삶의 현장 아고라 Agora
아테네 시민들은 이곳에 모여 정치와 경제 및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 토론과 격론을 벌이기도 하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사기도하였다. 하지만 현대의 아고라는 여기저기 돌무더기만 눈에 띄는 황량한 들판에 불과하다. 그나마 지금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헤파이스토스 신전뿐이다. 옛날에 아고라에 있었다고 말해지는 아폴론 신전 및 아레스 신전은 주춧돌도 찾지 못할 정도로 흔적조차 없다.
아테네 시민들은 이곳에 모여 정치와 경제 및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 토론과 격론을 벌이기도 하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사기도하였다. 하지만 현대의 아고라는 여기저기 돌무더기만 눈에 띄는 황량한 들판에 불과하다. 그나마 지금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헤파이스토스 신전뿐이다. 옛날에 아고라에 있었다고 말해지는 아폴론 신전 및 아레스 신전은 주춧돌도 찾지 못할 정도로 흔적조차 없다.
아크로폴리스는 고대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종교적인 성지고,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꽃핀 곳은 다름 아닌 아고라다. 고대아테네인들에게 정치와 철학은 일상적인 삶의 현장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
완전한 복원,
아탈로스의 스토아 Stoa of Attalos
다른 건물에 비해 멀쩡하고 멋졌다. 복원이 잘되어 그리스식 주랑이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헬레니즘에 의해 번성을 누렸던페르가몬 왕국의 아탈로스 2세가 아테네 유학을 마치고, 감사의 뜻으로 아테네에 헌정했다고 한다. 1950년대에 록펠러 2세에 의해옛 양식과 형태를 그대로 살려 복원되었다. 그리스의 유적 중 유일하게 완전 복원된 건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고대 그리고 현대
수 천년의 시간이 공존하는 아테네 Athens
아테네의 밤이 깊어지면 여행자들은 주로 오모니아(Omonia) 광장 부근으로 모인다. 이곳에 많은 호텔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오모니아 광장은 현대 아테네인들의 경제 중심지다. 도시의 이름은 ‘일치’ 혹은 ‘동의’를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침저녁으로수많은 사람이 출퇴근하기 위해 북적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모니아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타그마(Syntagma) 광장이 있다. 신타그마는 그리스어로 ‘헌법’을 의미한다. 이곳에 국회의사당 건물이 있다. 1843년 그리스 최초의 헌법을 제정한 후에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신타그마 광장은 아테네 시내의 중심이다.1456년부터 오스만제국의 지배에 항거한 독립전쟁의 전사자들과 1, 2차 세계대전 전사자들을 기리는 곳이다. 한국전쟁에서전사한 이들도 모셔져 있다. 무명용사의 무덤 뒤 벽엔 비문이 있는데 페리클레스가 펠로폰네소스 희생장병을 위한 추도연설문 중일부를 발췌한 명문장이다.
만들어졌지만 아직 비어있는 관 하나가 있다.
무명용사의 관. 용감한 자들에게는
어디나 무덤이 될 수 있다.
대통령 근위대인 ‘에브조니(Evzones)는 185cm 이상의 건장한 청년만 선발하는데 빨간 베레모에 화려한 금박자수가 박힌 조끼와주름 잡힌 치마, 검은색 방울이 달린 신발이 눈길을 끈다. 에브조니란 이름도 오스만제국 지배 때 저항했던 산악 게릴라의 이름과복식에서 유래됐다.
수많은 시민들이(이 중에 관광객도 많으리라) 삼삼오오 식당 옆 노변을 가득 채워 식사하랴 이야기하랴 분주하다. 하루의 고단함을다 내려놓고 좋은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항상 이곳에 아름다운 모습만 있는 건 아니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 경제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거의매일같이 신타그마 광장은 각종 시위로 몸살을 앓는다. 20세기 초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토인비는 아테네에 머물면서 깊은 탄식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이 위대한 문명을 이룬 그리스인들은
어디 가고 초라하고 역사의 무게에 찌든
저 농부들만 남았는가?
장기 경제침체로 그리스는 전체적으로 먹고살기 힘들어졌다. 외곽 벽은 곳곳에 그래피티로 가득하다. 백화점 세일 폭은 50~70%로놀랄 정도로 높다.
—
그리스 신의 전설이 숨쉬는
리카베토스 언덕 Lycabettus Hill
숙소에서 가장 높이 보이는 언덕. 아테네 어딜 돌아다니든 눈에 띄는 언덕, 리카베토스 언덕이다. 저녁 무렵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이 언덕에 올라섰다. 해발 277m로 아테네 중심부에서는 가장 높은 언덕이다.
저 멀리 파르테논 신전이 야간조명과 어울려 위용을 자랑한다. 도시 끝자락 피레우스 항구와 에게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척박한 땅에서 그리스인들은 수천 년 동안 오늘날 인류의 기초자산을 일구어왔다. 아테네에서 보았던 수많은 돌은 그저 단순한파편들이 아니다. 말없이 지천으로 깔린 옛 흔적들을 통해, 우리는 먼 옛날의 화려함을 떠올린다. 인류는 그렇게 땀 흘리고고민하며 정신과 물질세계를 서서히 진화시켜왔다. 인류의 무한한 상상력, 가능성과 함께 인간 존재의 왜소함과 겸손함을새삼 느낀다. 그리고 한 여행자는 수많은 생각들이 뒤엉킨 채 이렇게 서 있다.
한바탕 불어오는 바람이 뺨을 스친다.아! 이곳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과 철학을 꽃피운 가장 아름다운 도시 아테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