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로만 킴(Roman Kim). 올해 나이 스물여섯.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고 국적은 러시아. 국내에서 몇 차례 공연. 2015년 10월 KBS 열린음악회 출연. 별명은 ‘21세기의 파가니니.’ 인물검색에도 안 나오는 무명의 바이올리니스트. 이게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전부입니다. 그런데 왜 주목하느냐고요? 놀랍도록 비범한 연주 실력 때문이지요. 보고도 믿지 않는 신들린 연주 때문입니다. 많은 이를 충격에 빠뜨린 바로 그 연주, 함께 감상해 보실까요.
[Roman Kim] 파가니니의 ‘God Save the King’
입이 딱 벌어지지 않나요? 바이올린 대가들조차 어려워한다는 최고난도의 기교를 저리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다니요. 게다가 바이올린 현을 이빨로 뜯기까지 합니다. 한 번 보고 나면 반할 수밖에 없지요. 이 무명의 연주자를 유명하게 만든 건 유튜브에 자기가 직접 올린 동영상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유튜브 채널 이름도 미친 바이올린(insaneviolin)이에요. 아직 놀라기는 이릅니다. 아래 영상은 더 충격적이니까요.
[Roman Kim]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 ‘Air’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 ‘Air’
한 클래식 음악가에게 물어보니 악기가 최소 5대는 있어야 낼 수 있는 소리라고 하더군요. 바이올린 한 대로 협주곡을 연주하다니요. 로만 킴이 직접 편곡한 이 연주곡의 악보는 독일의 베렌라이트 출판사에서 찍어낸 초판이 매진되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연주 실력은 물론 뛰어난 편곡 능력까지 지닌 연주자이건만 왜 그토록 알려지지 않았을까. 로만 킴의 연주를 접한 이들이 몹시도 안타까워하는 부분입니다.
로만 킴은 음악가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머니가 바이올린, 아버지가 트럼펫 연주자였다고 해요. 그 영향으로 5살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서 불과 2년 만인 7살에 모스크바 콩쿠르에서 우승합니다. 이듬해 모스크바로 건너가 모스크바 중앙 음악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음악 교육을 받게 되지요. 로스트로포비치 재단의 후원을 받았고 막심 벤게로프, 미도리 고토, 기돈 크레머, 미리암 프리드 등 대가들의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실력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더 관심이 가는 대목은 바로 로만 킴이 김 씨 성을 쓰는 고려인이란 점일 거예요. 로만 킴의 증조할아버지는 1905년 을사늑약 때 고국을 떠나 시베리아로 건너갔다가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한 고려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정착한 곳이 카자흐스탄이었고, 그 할아버지의 후손으로 태어난 로만 킴은 고려인 4세입니다. 예술적 대물림이었던지 어릴 때부터 타고난 재능을 숨길 수 없었지요.
[Roman Kim] 로만 킴이 13살 때 연주한 차이콥스키의 ‘멜로디’와 바치니의 ‘론도’
저 감수성, 저 격정. 13살 소년에게서 나오는 연주라고는 정말 믿기 힘듭니다. 가난했던 가정형편을 무릅쓰고 로만 킴을 더 큰 무대로 데려간 건 할아버지였다고 해요. 로만 킴은 16살에 독일로 건너가 쾰른 음대에 진학합니다. 타고난 자질에 뼈를 깎는 노력이 더해져 독일을 중심으로 서서히 유럽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지요. 2011년 쾰른 국제 음악 콩쿠르, 이듬해인 2012년 발세시아 무지카 국제 콩쿠르에서 잇달아 우승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립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어요. 음악가의 길은 험난했습니다. 제2의 조국 러시아에서도, 유학생활을 한 독일에서도 로만 킴은 주류 음악계에 편입될 수 없는 무적자(無籍者)였지요.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에 이방인을 향한 냉대까지…. 게다가 로만 킴의 연주는 이른바 클래식의 주류에서 상당히 비껴난 파격으로 가득합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활짝 피어보지 못한 채 안타깝게도 조용히 잊히고 사라지는 연주자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로만 킴이 할아버지의 나라를 처음 찾은 건 14살 때인 2006년입니다. 한•러 수교를 기념해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특별 공연 무대였다고 해요. 물론 그때는 아무도 이 소년을 주목하지 않았지요. 몇 년 뒤 이 천재를 ‘발견’한 건 바이올리니스트 배은환 선생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4년 10월 국내 모 대형 교회 두 곳에서 로만 킴의 독주회가 열립니다. 머나먼 고국 땅에서 로만 킴이라는 이름을 알리는 출발점이었어요.
[Roman Kim]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한 대목을 변주한 ‘브린디시’
로만 킴의 국내 활동을 뒷바라지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배예자 선생은 바로 이 연주에 흠뻑 매료됐다고 합니다. 저 유명한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에서 ‘Libiamo ne’ lieti calici’를 자기식으로 바꿔 연주한 건데요. 실로 가공할 만한 기교가 유감없이 드러나지요. 이쯤 되면 진짜 궁금해집니다. 왜 이토록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연주자가 못 뜨는 걸까. 세계라는 더 큰 무대에서 화려하게 비상하지 못하고 머나먼 고국에서 자신의 길을 찾으려는 걸까.
‘벽’입니다.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주치게 되는 넘어서기 힘든 벽 말이에요. 계통을 착실하게 밟아나가 주류 음악계에 편입되는 행운을 얻지 못한 아웃사이더의 불운이라고 할까요. 한국말은 단 한 마디도 못한다는 고려인 4세는 어디에도 깃들 곳을 찾지 못한 채 방황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할아버지의 고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지요. 2016년 수원국제음악회 폐막 무대에서 보여준 로만 킴의 연주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Roman Kim] 2016 수원국제음악제 폐막공연에서 연주하는 로만 킴 (영상제공: 수원문화재단)
로만 킴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음악가는 전설적인 바이올린 연주자 니콜로 파가니니입니다. 그 화려하고 능수능란한 기교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뛰어난 연주력에 호소력 짙은 음악성까지 겸비했으니 ‘21세기의 파가니니’로 불리는 것이겠지요. 로만 킴은 2015년 독일 아헨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했습니다. 당시 아헤너 자이퉁에 실린 공연 리뷰 기사의 한 대목입니다.
위 연주 영상에서 또 하나 특이한 게 있어요. 그 정체가 뭔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두꺼운 안경입니다. ‘프리즘 안경’이라 불리는 이 희한한 물건은 로만 킴의 발명품이에요. 연주할 때 가까운 활 닿는 부분이 눈에 자꾸 아른거려서 눈이 쉽게 피로하더랍니다. 그래서 집중력을 높여보자고 만든 특수 안경이지요. 간혹 무대에 이 안경을 쓰고 나타나면 저게 뭐야 하고 놀라는 분들이 제법 많아서 더 화제가 되곤 합니다.
로만 킴은 굉장히 다재다능합니다. 음악가로서 연주뿐 아니라 편곡에 작곡 능력까지 출중하지요. 10대 시절부터 직접 곡을 쓰기도 해서 2015년 10월 18일에 방송된 KBS 열린음악회에서 연주한 ‘로망스(Romance)’가 바로 로만 킴의 대표 자작곡입니다. 최근에는 바이올린 현을 만드는 기계까지 직접 고안했을 정도로 발명가적 자질까지 뽐내고 있다니 그 많은 재능이 퍽 아깝게 느껴질 정도예요.
사실 저를 매혹시켰던 건 아래에 소개해드리는 영상입니다. 바이올린 사제나 검투사를 연상시키는 이 영상에서 로만 킴의 당당한 자부심이 느껴졌거든요. 사람들은 로만 킴에게 21세기의 파가니니다, 유튜브 스타다 해서 찬사를 보냈지요. 하지만 로만 킴은 아직 보여줄 것이 더 많은 가능성의 연주자입니다. 그 재능과 열정이 화려하게 꽃필지 어떨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어요. 유튜브로 하루아침에 유명세를 탔다가 속절없이 잊히고 마는 반짝스타가 한둘이 아니니까요.
2017년 새해에는 그래서 더더욱 이 전도유망한 연주자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보고 싶습니다. 보통의 음악대학 학생들이 쓰는 평범한 악기와 몸뚱어리 말고는 가진 게 별로 없지만, 음악을 향한 불타오르는 열정은 그 누구에게도 비할 수 없는 타고난 바이올리니스트. 멀게만 느껴졌던 고국에서 더 늦기 전에 날개를 활짝 펴고 훨훨 날아오르고 싶다는 부푼 꿈을 간직한 스물여섯의 고려인 4세 로만 킴. 그의 아름다운 도전은 이제 시작입니다.
[Roman Kim] 베르디의 <레퀴엠> 중 ‘진노의 날(Dies Ir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