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레모를 쓴 경찰은 기관총을 메고 있었다. 세계 3대 미항이란 별명이 붙은 나폴리의 첫 모습이었다. 관광객의 들뜬 분위기에 물들어 있던 로마는 옛 꿈 같았다. 한눈에 봐도 낡은 건물과 자동차, 좁고 더러운 길, 그리고 팍팍한 표정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위쪽 지방보다 곱슬머리가 많았고 키도 작았다. 나폴리 중앙 역사는 컸지만 제대로 된 브랜드 매장은 찾을 수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손꼽히게 못사는 동네란 사실이 실감됐다. 으스스한 느낌에 역 밖으로 나오는 것도 망설여졌다. 나폴리에 온 목적은 단 하나였다. 피자를 먹는 것. 이탈리아 여행 전체 일정이 바로 이 ‘나폴리에서 피자 먹기’를 중심으로 짜여졌다. 나폴리를 사이에 두고 도시를 고르고 피자집 휴무일을 피해서 일정을 조정했다.
“저 길로 가야 돼?”
아내는 설마 저 길이 우리가 가야할 길인지 나에게 다시 확인했다. 역 앞에 펼쳐진 좁은 길에는 무표정한 사내들이 잡동사니를 팔고 있었다. 나폴리 중앙역 앞 가리발디 역 인근은 마피아의 본거지로 유명한 곳이다. 으슥해질 무렵이면 권총과 칼을 무장한 강도 사건도 심심치 않게 난다고 했다. 어차피 대낮이었고 길에는 사람들이 빽빽했다. 그럼에도 으스스한 분위기에 긴장이 됐다. 우리 둘은 진땀이 날 정도로 손을 꼭 잡고 길을 걸었다. 그 길을 가야 했던 이유는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피자집으로 알려진 ‘안티카 피제리아 다 미켈레(Antica Pizzeria Da Michele)’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도 나왔던 이 피자집은 관광객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최고로 손꼽힌다. 1870년에 문을 열었으니 조선시대부터 피자를 팔았던 셈이다.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피자집으로 알려진 ‘안티카 피제리아 다 미켈레(Antica Pizzeria Da Michele)’
‘다 미켈레’ 근처에 가자 피자를 포장해 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눈에 띄었다. 피자 굽는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 즈음, 다행히도 듣던 것만큼 줄이 길지는 않았다. 우리와 함께 기차를 탔던 한 남자는 역 앞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함께 피자집 앞에서 진한 키스를 하고 있었다. 전혀 로맨틱하지 않은 전경에서 벌어지는 애정행각에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받은 번호표를 들고 사진도 찍고 남이 키스하는 모습도 구경하다 보니 금세 차례가 됐다. 실내는 생각보다 좁지 않았다. 시선을 사로 잡는 것은 1층 전면의 피자 화덕과 피자를 굽는 노인이었다. 하얀 머리에 굽은 허리의 노인은 계속해서 서 있기가 힘든지 피자를 펴서 화덕에 넣고 나면 작은 의자에 앉아 숨을 골랐다. 노인 옆으로 장작이 한 가득 쌓여 있었고 또 그 옆으로 피자 반죽을 펴고 토핑을 올리는 이가 있었다. 모두 나이가 지긋해 보였다.
우리의 자리는 식당 맨 안쪽, 피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마치 소원을 빌기 위해 별똥별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피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은 오랜 꿈을 이룬 것 마냥 기쁘게 웃고 있었다. 영화 ‘익스펜더블 (The Expendables)’에 나왔던 ‘제이슨 스타뎀(Jason Statham)’을 닮았던 종업원은 하얀 해군모에 반팔 옷을 입고 굵은 팔뚝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종업원은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처럼 무표정했지만 각박한 느낌은 없었다. 그러나 함부로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인상도 인상이고 혼자 홀을 다 보다 보니 너무 바빠보였다. 속으로 ‘미소, 미소’를 중얼거리며 해맑은 관광객 표정을 지었다. 그 덕인지 다른 테이블보다 먼저 받은 맥주와 콜라를 한 모금 마시니 이 식당까지 오느라 쌓인 피로가 한번에 풀렸다.
왼쪽에서부터 나폴리 피자의 대명사 마리나라(marinara), 마르게리타(margherita)
이 집의 메뉴는 토마토 소스에 말린 오레가노가 올라가는 마리나라(marinara)와 모짜렐라 치즈와 바질 잎이 올라가는 마르게리타(margherita), 단 두 가지뿐이다. 여기에 맥주, 콜라를 곁들이면 나폴리식 피자 한 끼가 완성된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물처럼 먹는 와인는 아예 팔지도 않는다. 피자가 원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음식이었다는 방증이다. 피자에 들어가는 재료 자체가 워낙에 간단한 것도 그 이유다. 재료가 간단한 만큼 피자의 맛을 좌우하는 것도 재료다. 이탈리아산 듀럼 밀*은 강력분과 마찬가지로 단백질 함량이 11~12%로 높지만 질기지 않고 딱딱 끊어지는 성질이 있다. 역시나 이 맛을 실감하려면 직접 먹어보는 수밖에 없다.
* 듀럼(Durum) 밀 : 밀의 종류 중 가장 딱딱한 종으로 주로 파스타의 원료로 활용된다.
한 십여 분 기다렸을까? 맥주와 탄산수를 거진 다 마셨을 때 거의 핸들 크기만한 피자가 내 앞에 놓였다. 이탈리아, 특히 나폴리는 일인 일판이 기본이다. 피자를 각자 하나씩 앞에 두고 심호흡을 쉬었다. 보기에도 피자는 먹음직스러웠다. 어릴 적 먹던 토핑 가득한 피자, 햄, 소시지, 할라피뇨, 오징어, 도우에는 치즈에 고구마까지 집어넣은 잡스러운 종합선물세트가 아니라 한 명의 고수와 소리꾼만 있는 판소리를 보는 것처럼 단촐하기 그지 없었다. 표범 무늬가 박힌 도우를 잡아당겼다. 토마토 소스로만 맛을 낸 마리나라 피자를 입에 넣었다. 토마토의 신맛과 단맛이 파도가 치듯 밀려 들었다. 무엇보다 거뭇거뭇 그을린 도우의 쓴 탄 맛이 단단한 배경이 되었다. 우리는 입을 웅얼거리며 서로를 마주봤다. 피자가 이런 맛이었구나! 깔끔하고 정갈한 맛이 마치 수묵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 다음은 대망의 마르게리타, 흔히 보는 ‘천연 치즈’라는 미사여구가 전혀 필요없다. 맛이 있으면 된다. 나폴리를 비롯한 남부 지역은 버펄로가 아닌 젖소의 우유로 모짜렐라 치즈를 만드는데 그 맛은 버펄로의 것보다 조금 더 진하고 고소하다. 그 모짜렐라 치즈가 녹아내린 마르게리타 피자를 먹었을 때 그 고소한 풍미와 달콤하고 신 토마토의 풍미가 온 몸이 스며들었다. 올린 듯 만 듯 한 바질 잎의 시큼한 맛은 용의 눈동자를 그려넣 듯 기름진 맛에 방점을 찍었다. 그 이후로는 배가 부르다는 말을 연신 하면서도 결국 피자 두 판을 해치우고 말았다. 이 맛의 비결이 무엇인가 따져보면 여러 요소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것과 당도가 아예 다른 토마토, 좋은 모짜렐라 치즈, 그리고 메뉴판에 나오듯 나폴리의 물, 좋은 밀가루, 장작을 쓴 화덕, 확실한 염도 등등. 요리를 하다보면 유혹에 빠질 때가 많다. 이것저것 많이 넣으면 맛있어지리란 믿음 혹은 희망으로 여러 재료를 쓰지만 그럴수록 맛은 맥락을 잃고 불투명해진다. 오히려 몇 가지 재료에 집중해 재료 자체의 질을 높이고 투입량을 정확히 산정하는 것이 나은 방법일 때가 많다. 그러나 실천하기는 어렵다. 마치 방을 정리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그 상태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단정한 피자를 먹고 일어나니 역시 뒤로 줄이 길게 섰고 화덕은 여전히 불탔다. 그리고 허리 굽은 노인은 똑같이 피자를 굽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인사를 하고 말았다.
“고맙습니다, 아버지(Grazie, papa.)”
이에 노인은 나에게 손을 흔들며 맑게 웃었다. 그 노인의 눈동자는 지중해를 닮은 푸른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