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거의 모든 양식당에서 파스타를 판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물론, 프렌치 레스토랑도, 경양식 식당도 파스타를 판다. 심지어 분식집에서 파스타를 먹을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파스타를 파스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국수의 일부라고 여긴다. 그래서 양식당에서 파스타가 없으면 장사가 되질 않는다. 이곳저곳 다 파스타를 판다고 모두 수준 높은 것은 절대 아니다. 한국의 파스타는 이탈리아식이라기보다는 미국식에 가깝다. 소스가 흠뻑 젖어 있고 가득 넣은 파스타를 소스에 말듯 먹는 방식이다. 배달 피자에 올라간 토핑처럼 고기며 소시지 같은 부재료가 또 가득 올라간다. 그래야 파스타를 주로 먹는 젊은 층이 만족하고 그래야 장사가 된다.
하지만 정통 이탈리아 파스타는 그렇지 않다. 본래 파스타는 가난한 음식이다. 지금도 대대로 궁핍에 시달리는 이탈리아 남부, 하늘에는 천국처럼 붉은 태양이 밝게 빛나지만, 땅에는 가난과 범죄가 들끓는 이 남부에서, 식량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건조 파스타가 발명되었다. 우리 옛 조상들이 공기 가득 보리밥을 쌓아 올려 먹었듯이 그들도 그랬다. 위장을 채우기 위해 곡물은 많이, 소스는 적게, 토핑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 사실 정통 파스타다. 이탈리아에 가서 파스타를 먹으면, 특히 로마 이남으로 내려가면 질릴 정도로 많이 나오는 파스타에 눈이 놀라고 뻑뻑한 소스에 혀가 놀란다. 맛은? 매우 단순하다. 소스와 파스타, 그 외의 것은 사실 찾기 힘들다. 소스의 양도, 질감도, 맛도 다르다. 국물처럼 퍼먹는 용도가 아니라 파스타에 달라붙어 맛을 내는 용도로 그 역할이 한정되어 있다. 파스타는 또 어떨까? 일단 종류가 다양하다. 각 소스에 맞게 파스타를 골라 놓는 것이 보통이다. 파스타가 두껍고 넓다면 소스도 맛이 진한 치즈나 달걀 소스 쪽으로 맞추고 맛이 담백하다면 그에 맞게 면도 가늘어진다. 삶는 방법도 다르다. 정답이라고 할 수 없지만 역시 이탈리아 본토는 파스타의 심이 살아 이는 알덴테(Al dente)를 지키는 게 역시 기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맛에 있다. 소스의 농도가 짙으니 간은 당연히 강해진다. 절대적 염분 섭취량은 한국이 높지만, 단위 그램 당 염분의 양은 이탈리아가 높다. 그만큼 간이 세다. 한국과 일본처럼 감칠맛, 단맛, 혹은 매운맛으로 간을 조절하지 않고 오로지 소금의 짠맛으로 맛의 농도를 결정하기 때문에 한국 사람의 입맛에는 더더욱 짜게 느껴진다. 그러나 여기에 산미가 강한 이탈리아 와인을 곁들이고 미네랄이 알알이 씹히는 탄산수를 마시면 그 염도가 적당하게 다가온다. 한국의 현실은 이와 다르다. 파스타가 짜면 곧바로 컴플레인이 들어온다.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 개진이 아니라 ‘나의 건강을 네가 해치려 하느냐’는 분노다. 먹거리에 대한 신뢰가 낮고 음식을 맛이나 취향에 대한 문제가 아닌 영양분 섭취 혹은 건강과 연결하는 태도다.
이런 한국의 현실에서 청담동 ‘파스토Pasto’는 아직도 정통에 대한 고집을 버리지 않는 의지의 산물이자 이탈리아보다 더 나은 음식을 내놓고자 하는 꿈의 결실체다.
청담동 구석 언덕에 자리 잡은 파스토 앞에 서면 먼저 넓게 트인 창이 다가온다. 날씨가 좋은 이탈리아서 발전한 오픈형 레스토랑이다. 창가에 앉으면 레스토랑 안쪽으로 파고드는 바깥 풍경에 마음 깊숙이 시원한 기분이 든다.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작은 주방에서 어깨를 부딪혀가며 일하는 요리사들이 보인다. 좌석에 비해 낮게 설치된 주방 구조 탓에 그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떤 음식을 만드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물이 끓고 불이 타오르며 오븐이 뜨겁게 달궈진 주방의 사내들은 허리를 숙이고 손을 쉴 틈 없이 놀리고 있었다.
신선한 올리브유와 곁들여 먹는 식전빵과 에피타이저 메뉴인 이탈리아풍 수제 소시지
자리에 앉자마자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인 ‘프로세코’ 한잔과 이탈리아산 탄산수를 시켰다. 슈트를 차려 입은 점원이 공손히 서서 와인을 따랐다. 서서히 더워지는 날씨를 한 번에 식히는 냉기와 산미, 탄산감이 목구멍에 가득 찼다. 위장으로 흘러내려가는 그 물줄기에 더위도 함께 사라졌다. 대신 찾아온 것은 식욕이었다. 나는 갓 작업을 마친 농부처럼 허기진 배로 메뉴판을 훑어보고 호기롭게 주문을 넣었다. 곧 버터와 올리브유와 함께 식전빵이 식탁 가운데 놓였다. 프랑스와 달리 싱거운 이탈리아 빵을 초록빛 도는 올리브유에 찍어 먹었다. 싱싱한 풋내가 나는 올리브유의 맛은 프로세코 와인처럼 경쾌했다. 주방을 바라보니 머리가 쌔까만 요리사는 내가 주문 넣은 소시지를 오븐에 넣고 있었다. 빵 한 접시를 해치울 무렵 소시지가 나왔다. 이탈리아풍으로 회향(fennel)향이 주가 된 이탈리안 소시지는 루꼴라와 고수를 동시에 곁들여 냈고 소시지 아래에는 볶은 양파, 위에는 매콤한 토마토 살사 소스가 올라가 있었다.
“취향에 따라 곁들여 드시면 됩니다. 고수 드실 줄 아시면 꼭 곁들여 보세요.”
안경을 낀 종업원은 손수 소시지를 자르며 말했다. 친절하지만 정중했고 부담스럽지 않은 접객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돼지고기를 갈아 만든 소시지는 마른 들판을 닮은 회향의 향이 강하게 울렸다. 루꼴라의 금속성 맛과 잘 어울렸지만, 종업원의 말대로 고수와 곁들이니 또 그 맛이 색달랐다. 소시지 한 접시를 쉽게 비웠다. 배가 서서히 불러왔다. 느긋한 점심이었다. 하지만 거한 식사는 피하고 싶었다.
파스토의 대표 메뉴, 크림소스를 베이스로 한 우니 스파게티와 전복 크림 리조토
이제 남은 것은 메뉴 두 개였다. 파스토의 대표 메뉴라는 우니 스파게티와 전복 크림 리조토였다. 본래 극동지방에서만 먹던 우니 즉 성게알은 이제 이탈리아 현지에서도 흔히 쓰이는 식자재다. 잠시 뒤 나온 접시에는 크림소스가 자작하게 깔리고 스파게티가 곱게 또아리를 틀고 있는 그 꼭대기에 밝게 윤이 나는 우니가 올라가 있었다. 역시 종업원이 다가와 접시를 보여준뒤 능숙하게 우니를 으깨 소스에 비볐다. 바다의 단맛과 짠맛을 동시에 품은 우니의 향기가 조금씩 새어 나왔다. 스파게티를 포크로 말아 입에 넣으니 더욱 진하게 응축된 향기와 맛이 입안 사방에 녹아내렸다. 전복 리조토도 비슷한 결을 지녔다. 전복의 초록 내장을 으깨 소스를 만들고 리조토 쌀의 형체를 굳건히 해 알알이 씹히는 식감을 살린 리조토의 맛도 강하고 진했다. 밀도를 높인 맛과 식감에 이로 씹고 혀로 녹일 때 맛의 단단한 형체가 즉물적으로 느껴졌다. 그에 비하면 위에 올라간 전복의 몸통은 부록이었다. 접시 밑을 툭툭 쳤을 때 그제서야 조금씩 밑으로 흘러나올 정도의 농도를 가진 리조토는 기본기가 탄탄했고 맛은 두꺼운 허벅지로 찬 강한 중거리 슛처럼 거침없었다. 파스타와 리조토는 금세 바닥을 보였다. 얼마 되지 않는 소스까지 핥듯 닦아 먹었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도산대로로 나왔을 때 위장 깊숙한 곳에서는 여전히 바다의 향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탈리아의 바다, 고대부터 젊은이들의 팔뚝으로 노를 젓고 물고기를 잡던 그 바다였다. 파스토가 지향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늙지 않고 늘 낭만을 노래하는 지중해의 서사가 담긴 음식이었다. 그리고 터보 엔진이 달린 외제차를 발끝으로 작동하며 의미 없는 속도를 자랑하는 허세가 아닌, 단단히 쌓아 올린 근육으로 일궈낸 전통의 맛이었다.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 정동현 셰프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의 핫한 먹거리를 맛보면서 혀를 단련 중!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 <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