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현장] 제주에서 차례상까지 : 제주흑한우

2019/09/03

 

 

“고놈들 참 잘 생겼죠?”

한여름의 열기가 가신 8월의 어느 날, 제주 축산진흥원 내 목장에서 푸른 들판 위를 어슬렁거리는 한 무리의 소를 만났다. 한눈에 봐도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한우의 모습과는 달랐다. 검고 윤기 나는 털에 몸은 조금 작지만 날렵하고 단단해 보였다. 바로 제주 토종소 흑(黑)한우다.

한우 선물세트는 실패 없는 명절 선물로 꼽히는 스테디셀러다. 하지만 범람하는 한우 선물세트 가운데서 주목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 Go 현장은 그 독특함을 무기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흑한우를 찾아 직접 산지인 제주도에 다녀왔다.

 

 

제주도에 사는 검은 한우를 아시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한우는 곧 누렁소라는 공식이 통용된다. 때문에 흑한우라는 단어가 조금 낯설게도 느껴진다. 마치 외국 어디 풍경에나 존재할 것 같은 이 검은 한우는 사실 한우의 대표 품종 중 하나다.

오래전부터 우리 땅에서 함께해 온 흑한우는 여러 역사 기록에도 남아있다. 고기 맛이 우수해 고려 시대 때부터 진상품과 제향품으로 공출되었고, 오늘날의 제주도지사 격인 제주 목사는 사육 및 점검 결과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 역사와 궤를 함께한 토종 재래소 흑한우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위기를 맞는다. 일제가한우를 수탈 품목으로 정하고 흑한우 다수 개체를 국외로 반출시켰기 때문이다. 일본 와규의 원조인 ‘미시마소(見島牛)’의 조상이 제주 흑한우라는 설이 거론된 것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일제강점기 후에도 흑한우의 고난은 계속된다. 1970년대 실시한 정부의 한우 품종 개량 및 육종 정책이 황우 위주로 이루어지며, 개체 수가 빠르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한때, 멸종 위기까지 처했던 흑한우는 1990년대 이후 축산진흥원, 농촌진흥청 등이 흑한우 복원과 종 보존에 나서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그리고 2013년 7월 22일, 그 가치와 희귀성을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546호로 지정되었다. 흑한우의 보존과 진흥을 위한 노력은 지금도 다각도로 이어지고 있다.

 

 

천연기념물 흑한우가 식탁에 오를 수 있는 이유

흑한우는 날 때부터 흑모는 아니다. 황모로 태어나 털갈이 후 검은 털로 뒤덮이게 된다. 우족까지는 뼈도 검정 색이다.

 

흑한우는 천연기념물이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대상은 10마리 내외다. 천연기념물 개체는 도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 이를 제외하고 원종에서 별도의 수정을 통해 태어난 흑한우는 상품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희소성을 떠나 흑한우의 상품화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흑한우 사육 자체가 일반 한우 사육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 한우인 황우는 오랜 기간 품종 개량을 거쳐 평균 중량이 7-800kg에 달한다. 이에 비해 흑한우는 평균 중량 5-600kg 정도로 훨씬 체구가 작다. 그리고 황우는 보통 30개월에서 32개월이면 출하하는 데 비해 흑한우는 36개월 이후 출하할 수 있다. 흑한우가 황우보다 몸집은 작은데 사육 기간은 훨씬 더 긴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수익성으로 연결된다. 경제적 문제로 많은 농가에서 흑한우를 식용우로 사육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실정이다. 서귀포 축협 이완희 팀장에 따르면 흑한우 사육 농가의 부담을 덜고자 경영비 지원 및 매입 금액 조정 등 조합 차원에서도 다양한 흑한우 진흥 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귀한 몸인 만큼 생육 환경 또한 특별하다.
서귀포 축협 생축사업장에서는 조합에서 직접 만든 TMF 사료를 포함한 특별 식단으로 비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진은 이마트 염승민 한우 바이어와 서귀포 축협 이완희 팀장.

 

국내 한우 사육두수가 약 300만 두 인데 비해 제주 도내 흑한우 사육두수는 약 1,200두다. 전체 한우 개체에서 0.1%가 채 되지 않는 것이다. 서귀포 축협에서도 생축사업장에서 직접 흑한우를 사육하는데, 매년 출하되는 양의 절반 정도는 이마트에서 상품화된다. 물량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제주 내에서도 흑한우를 맛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현재 대형마트에서 흑한우를 구매할 수 있는 루트 또한 이마트뿐이다.

 

 

귀한 몸 흑한우, 이제는 추석 선물세트로

서귀포 축협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흑한우 명품관. 제주 내에서도 인증된 흑한우를 맛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다.

 

절대 개체 수의 부족, 사육 및 상품화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흑한우를 찾는 사람은 계속 늘고 있다. 그 맛의 우수함 때문이다. 서귀포 축협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흑한우 명품관에서도 찾는 사람은 많지만, 물량이 부족하여 공급이 어려울 때도 있다 할 정도다.

흑한우는 식용 개량이 되지 않은 순수종이라 1등급 출현율이 낮은 편이다. 그 때문에 황우만큼 큼직한 마블링이 많지는 않지만, 잔 마블링이 골고루 퍼져있으며 육색이 진하다. 마치 자연적으로 에이징 된 것 같이 깊고 담백한 맛이다.

흑한우는 뛰어난 맛과 희소성을 바탕으로 개성 있는 명절 선물세트를 찾는 소비자에게도 인기다. 이마트는 2015년 처음 100개 세트 한정으로 제주흑한우 추석 선물세트를 출시한 이후 계속해서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올 추석 선물세트 계약 물량은 역대 최대 물량인 33두로, 총 1,100세트 한정이다.

이마트 염승민 한우 바이어는 “1년 내내 서귀포 축협에서 출하되는 흑한우가 100두가 채 안 된다. 이렇게 한 번에 33두나 되는 물량을 출하하는 것은 전무후무한 경우다.”라며 일반 한우보다 20% 정도 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많은 고객이 흑한우 선물세트를 찾고 있어 작년보다 많은 물량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