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아니다 소비자다. 노브랜드의 모토가 전통시장을 바꾸고 있다. 그 변화의 시작은 2016년 충남 당진 어시장에 오픈한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1호점. 한 지붕 아래 살기는 어려워 보이던 전통시장과 대형마트가 동고동락을 감행한 첫 시도였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19년 10월,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는 강원도 삼척중앙시장에 10호점을 오픈했다. 1호부터 10호까지 기존의 패러다임을 뒤집고 있는 이 낯선 조합을 들여다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이마트 노브랜드는 왜 전통시장에 들어갔나?
대형마트, 재래시장과의 공존을 꿈꾸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는’는 이마트가 전통시장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서포트하기 위해 시작한 상생프로젝트다. 자체 브랜드인 노브랜드 전문점을 전통시장 내에 오픈하되, 판매 품목은 시장 상인회와 협의해 조정한다. 상인들의 주력 상품은 제외하는 것이 원칙이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들어서는 전통시장에는 이마트 표 사회공헌 시설까지 함께 조성된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키즈 라이브러리 등의 아동시설로 2-30대 젊은 층의 유입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전통시장에 조성된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와 사회공헌시설인 이마트 키즈 라이브러리 두 매장의 시너지가 전통시장의 젊은층 집객 효과를 더한다
이제는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는 듯한 전통시장과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지만, 시작점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과거부터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은 가깝지만 먼 사이로 여겨졌다. 유통과 소비 트렌드의 변화가 두 업태를 멀어지게 한 것이다. 전통시장 인근 1km 이내에 대형 유통업체의 출점을 제한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은 이 관계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등을 지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에는 팀이 될 수 있다는 것, 즉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이마트의 숙명이자 하나의 과제였다.
고민의 해답은 그리 머지않은 곳에 있었다. 이마트 노브랜드 상생 TF팀 김원기 과장은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전통시장을 활성화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유통기업인 신세계그룹의 강점을 살려 전통시장을 활성화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매장을 구성해보자는 것이었다.
2014년 전통시장 상생모델 점포로 지정된 광진구 중곡시장 내 이마트에브리데이 매장 담당 파트너가 신선식품을 철수하고 있다
2014년 9월, 서울 광진구 중곡시장 내의 이마트에브리데이 매장은 이 실험의 첫 번째 모델이 되었다. 기존 상인들이 많이 팔고 있는 과일, 채소, 생선 등의 신선식품은 철수하고 와인, 가전, 반려동물용품 등 시장 내 구하기 어려운 상품들로 매장을 새롭게 꾸렸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동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후, 본격적으로 상생스토어 사업 개발이 시작되었고 노브랜드 전문점이 최종 모델로 낙점되었다. 주력상품이 가공식품이나 생활용품으로 전통시장의 주력상품과 겹치지 않으며, 상품생산업체의 70%가 중소기업으로 상생스토어가 지닌 의의와도 통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불가능하다 했던 ‘상생’의 시작이었다.
1호부터 10호까지,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많은 고민과 의미를 가지고 출발한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지만 처음의 벽은 녹록지 않았다. 첫 매장 오픈이 가장 큰 위기라 꼽았던 김원기 과장은 “상생스토어 아이디어를 가지고 많은 재래시장과 접촉했지만, 이마트가 대형마트라는 이유로 사업의 순수성부터 오해받는 일이 허다했다”고 밝혔다.
2016년 8월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1호점이 오픈한 충남 당진어시장
2016년 8월, 오랜 진통 끝에 충남 당진어시장에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1호점이 오픈했다. 결과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2013년부터 꾸준히 감소해오던 시장 매출은 상생스토어 오픈 이후 2018년까지 131% 상승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당진어시장을 찾아 “전통시장이 새로운 활력을 찾아가는 데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며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를 치켜세운 바 있다.
2017년 6월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2호점이 오픈한 구미 선산봉황시장
1호점 오픈 후에는 전통시장이 먼저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2017년 6월 오픈한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2호점 구미 선산봉황시장점은 시장 측에서 먼저 상생스토어 입점을 제안한 첫 사례다. 1호점의 성공사례를 본 청년 상인회장 김수연 씨가 직접 구미시와 시장 상인들을 설득한 것이다. 상생스토어 입점과 함께 조성된 청년몰은 24년간 공실이었던 자리가 무색하게 입점 희망 대기자까지 몰렸고, 2018년 최대 800만 원의 권리금이 발생할 정도로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2017년 8월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3호점이 오픈한 경기 안성맞춤시장
노브랜드 안성스토어 3호점은 경기도 안성맞춤시장 지하 1층의 ‘화인마트’ 일부 공간을 임차해 입점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동네 슈퍼마켓과 대형마트의 기묘한 동거였다. 물론, 처음에는 많은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상생스토어 오픈 후 화인마트는 매장 면적이 30%나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10%나 올랐으며 시장 전체 매출도 평균 10% 이상 상승했다.
2018년 4월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5호점이 오픈한 서울 경동시장
시장 전반의 매출 상승효과 외에도 상생스토어는 젊은 사람들을 시장으로 끌어모으는 집객 효과 또한 확실히 증명했다. 서울 경동시장은 상권 내 60세 이상 유동 인구 비중이 50%를 훨씬 웃돌 만큼 주 고객층의 연령대가 높았다. 하지만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5호점이 오픈하며 함께 들어선 어린이 놀이터와 카페, 동대문구 도서관을 이용하려는 젊은 고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또한 인근 대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서포터즈가 결성되며 시장 분위기에 활력이 더했다.
2019년 5월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8호점이 오픈한 충북 제천중앙시장 청년상인 지원을 위해 매장 앞에 조성된 청년마차 시설이 눈에 띈다
상생스토어의 청년상인 지원을 위한 노력도 시장 활성화에 한몫했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8호 제천중앙시장점은 아예 매장 앞에 청년마차 4개소의 집기와 장소를 제공했다. 삼척중앙시장은 상생스토어 10호점 오픈과 인접 구역에 청년몰 25개소 입점을 함께 기획했다. 상생스토어와 청년몰의 시너지효과로 젊은 고객층 유입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상생스토어는 청년 상인들을 대상으로 최신 유통 트렌드와 점포운영 노하우 관련 교육을 실시하며 청년몰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돕고 있다.
2019년 7월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9호점이 오픈한 강원 동해남부재래시장
여러 전통시장을 거치며 시장 상인에게까지 가능성을 인정받은 상생스토어는 9호 동해남부재래시장점에 들어서 새로운 형태로 진화했다. 시장 상인이 직접 상생스토어를 운영하는 FC(Franchise Chain) 형태의 매장이 탄생한 것이다. 이는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앞으로 더 많은 시장에서 상생의 거점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상생스토어 효과’는 이뿐만 아니다. 비식품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시장 특성을 고려해 판매상품을 신선식품에 맞춰 상생의 의미를 실천한 4호 여주한글시장점, 오픈 1개월 만에 시장 점포 평균 매출 30%가 신장되고 장난감 놀이터 방문 어린이 수가 1,000명을 돌파한 6호 대구월배시장점, 시장 상인들도 애용하는 마트로 자리잡은 7호 안동구시장점 등. 현재까지 전국에서 총 10개의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상생의 가능성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전통시장과 함께 열심히 협업 중이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열 번째 매장을 오픈하다
지난 3년간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의 전통시장 활성화 효과는 다방면으로 확인되었다. 처음에는 출점 제안조차 번번이 거절당하던 형편이었지만, 현재는 입점 협의 중인 시장만 25개에 달한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상생 모델로 자리 잡은 것이다.
2019년 10월 24일,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10호점이 오픈한 강원 삼척중앙시장
그리고 2019년 10월 24일,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는 강원도 삼척중앙시장에 대망의 10호점 오픈을 알렸다. 삼척중앙시장 상생스토어는 강원도 지자체와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탄생했다. 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강원도가 직접 활성화가 필요한 전통시장과 이마트를 연결했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10호 삼척중앙시장 매장 풍경 집객효과 극대화를 위해 사회공헌시설인 ‘&라운지’와 ‘키즈라이브러리’도 함께 조성되었다
삼척중앙시장 C동 2층에 위치한 상생스토어는 시장 상인과의 협의를 통해 신선식품을 판매품목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매장 옆에는 젊은 고객 유치를 위해 휴게공간인 ‘&라운지’와 장난감도서관·키즈라이브러리·어린이놀이터를 한데 모은 어린이문화시설 ‘SOS통통센터’도 함께 조성했다. 뿐만 아니라 매장 인접 구역에 오픈할 청년몰과 다양한 협업을 진행해 시장 활성화에 시너지 효과를 더할 계획이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상생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을 종주해온 이마트 노브랜드 사업부 상생TF 김원기 과장.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1호점에서 10호점까지의 여정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Q. 이제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10호점이 오픈했습니다. 열개의 매장이 모두 전국구인데요. 매장 오픈을 위해 전국에 안 가보신 곳이 없으실 것 같아요.
2015년에 새로 산 SUV가 벌써 28만km를 찍었으니 말 다했죠, 하하. 상생 스토어 오픈을 위해 방문한 시장만 전국에 500개 정도예요. 그러다 보니 정말 매주가 국토대장정이었죠. 8호점 제천 오픈 준비를 할 때는 제천만 50번 이상 왔다 갔다 했어요. 지난 3년간 거의 일주일 중 4일은 전통시장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벌써 10호점이라니, 감개무량합니다.
Q. 3년 동안 1호부터 10호까지, 정말 긴 여정이었어요. 상생스토어 오픈을 10호까지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사실 가장 힘들었던 때를 꼽으라면 1호점 오픈 때에요. 아무래도 상생스토어가 기존에 없던 모델이다 보니, 먼저 입점을 제안해도 시장 쪽으로부터 번번히 퇴짜를 맞았거든요. 순수하게 상생이라는 의도 자체를 믿지 않으셨죠. 하지만 1호점을 오픈한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어요. 상생스토어가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는 모델이라는 것이 증명되니 시장 쪽에서 먼저 알아봐 주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매장을 꼽으라면 2호점인 구미 선산봉황시장점이에요. 시장 상인 쪽에서 먼저 요청해서 상생스토어를 오픈한 첫 사례거든요. 청년상인회장님께서 1호점 성공사례를 보고 이마트를 찾아왔어요. 직접 상생스토어 유치를 위해 상인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도 열고 동의서도 받고 구미시도 설득하셨죠. 항상 시장 관계자들을 설득해야 하는 위치였는데, 반대로 시장 쪽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니 감동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동안의 노력이 이렇게 인정받는구나 싶었죠.
Q.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겠지만, 10개 매장 중 가장 의미 있는 매장을 꼽으라면 어디인가요?
맞아요. 모든 점포 하나하나가 다 기억에 남죠. 하지만 그중 하나만 꼽아보라면 9호 동해 남부재래시장점이에요. 9호점이 상생스토어 최초로 전통시장 상인이 직접 운영하는 FC(프랜차이즈) 매장이거든요. FC모델은 상인이 직접 상생스토어를 운영하기 때문에, 침체된 전통시장을 활성화하는 주체도 상인이라는데 의의가 있다고 봐요. 앞으로 더 많은 시장에서 상생스토어 모델을 도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기도 하고요.
Q.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공존은 어쩌면 유통업계가 계속 풀어가야 하는 과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생스토어는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생각하는데요. 앞으로 이마트는 전통시장과의 지속적인 협업을 위해 어떤 노력을 계획 중이신가요?
지금까지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보여준 성과는 상생스토어 모델이 전통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수치로 증명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마트는 상생스토어 모델을 지속적해서 보완하고 발전 시켜 더 많은 전통시장에 도입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금도 출점을 협의중인 전통시장이 25곳에 달하는데요, 다음 주에는 대전 산성 뿌리시장에 11호 오픈이 예정되어 있답니다. 앞으로도 12호, 13호 그 이상까지 계속해서 출점하며 전국의 전통시장과 상생해가야죠!
골목상권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하지만 개념의 역발상을 통해 상생의 해법을 제시한 이마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모델은 날 선 반목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사례다. 3년 그리고 10호점. 앞으로 더 많은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전통시장과 함께 윈윈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