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즈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어릴 적 음악 시간에 배운 웨일즈 민요가 간혹 있었고 프로축구 선수 라이언 긱스가 이곳 출신이란 것 외에 달리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이 지역에 대한 정보가 우리나라에선 전혀 없다시피 한 낯선 지역이다. 국내 대형서점조차도 웨일즈를 단일 주제로 한 책도 거의 없다.
웨일즈는 일찍이 북해에서 진출한 켈트인의 땅이었다. 1~5세기 로마 지배당했고 그 후 작은 왕국들로 나뉘다가 1282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가 정복한다. 이때부터 장남을 ‘프린스 오브 웨일즈 (Prince of Wales)’라 칭했는데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1536년엔 헨리 8세에 의해 완전히 합병된다. 한마디로 북방 켈트인들이 살던 곳이 앵글로 색슨이 주류인 잉글랜드에 정복된 나라다.
오늘날 인구는 3백만 명이 조금 넘는다. 총면적은 20,798km²로 딱 전라도 크기다. 주민들도 인정이 많다. 찰스 다윈만큼 업적이 컸지만, 덜 알려진 진화론의 선구자 러셀 월리스, 인도와 히말라야 전역을 답사해 지도로 만든 에베레스트 경, 영화배우 안소니 홉킨스와 케서린 제타존스의 고향이 이곳이다. 양의 숫자가 사람 수보다 4배 많은 1,200만 마리다.
해안의 요새,
카나번 성
서북쪽에 위치한 고성마을을 찾았다. 북부에서 가장 유명한 카나번 성이다. 이곳 역시 콘위성처럼 잉글랜드가 13세기 이 지역을 점령한 후 바닷가 바로 옆에 세워진 성채다. 웨일즈는 다른 유럽 나라처럼 특히 고성이 많다. 크고 작은 성이 이 작은 땅덩어리에 무려 641개나 된다.
1969년 찰스 왕자의 황태자 서임식도 이곳에서 거행됐다. 많은 나라로 생중계해 더더욱 유명해졌다. 물론 영국 유네스코 문화유산 중 하나다.
숙소인 블랙보이인(Black Boy Inn)을 찾았다. 성채의 옆문을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에 바로 붙어있는 유서 깊은 숙소다. 옛 해적들이 묵었을 만한 중세풍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실제로 이 호텔은 16세기 만들어졌다. 조명도 희미하고, 벽 장식이며 테이블도 중세시대로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묵었던 유럽 숙소 중 가장 몽환적인 곳이다.
아더왕의 전설이 깃든
‘스노든 산’
다음날 카나번 성 주변을 산책했다. 해자 역할을 하는 호수 건너 언덕이 있어 성 전체를 조망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수많은 요트와 고깃배들이 즐비하다. 가장 아름답고 견고한 성채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는 주변 마을 사람들은 행복할 것 같다.
카나번 성에서 벗어나 산 쪽으로 한 시간 정도 이동했다. 위용 있는 산들이 산맥으로 이어져 통상적인 잉글랜드와 확연히 다른 거친 지형이다. 가장 높은 산은 북쪽에 자리한 스노든 산(1,085m).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 경도 이곳에서 등반 훈련을 했다고 한다.
우리 설악산이나 지리산에 비하면 산세가 한참 떨어지지만, 이곳엔 유명한 전설이 숨어있다. 바로 아더왕의 이야기! 원탁의 기사 랜슬롯 경과 왕비 기네비아, 마법사 멀린과 ‘보검’ 엑스칼리버 전설의 주인공인 아더왕이 바로 저 산에서 활동했다는 것. 어릴 적, 동화와 영화 등에서 수없이 듣고 보아 온 전설의 지역이 바로 이곳이다. 하지만 실제 아더왕의 존재 여부는 확인된 바 없다. 오늘날 잉글랜드 주류인 색슨인들을 물리쳤다는 영웅담이 윤색돼 웨일즈의 영웅으로 변신한 거다.
입구에서 자전거를 타고 숲길로 이동했다. 이곳을 즐기는 데 최고는 산악자전거와 카약 타기다. 수천 년 원시림 사이로 피어난 꽃들을 감상하며 바람을 맞부딪혀 본다. 호수 위엔 가족 단위 관광객들과 청년들이 이미 여기저기 노 젓기에 분주하다.
저 멀리 스노든 산 정상이 대장처럼 우뚝 서 있다. 호수 가장자리엔 나무들이 물속에 잠긴 채 생생히 살아있다. 나무숲 사이를 가로질러 여기저기 움직여본다. 탐험가가 따로 있으랴. 노젓기에 집중하고 자연에 취하다 보니 잠시 현실감을 잊었다. 웨일즈의 자연 속 한가운데다. 몽유도원이 따로 있으랴! 그저 마음 내려놓는 바로 이 자리가 천국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