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 기자의 문화이야기] 북에서 온 현대 판화를 소개합니다!

2019/04/12

 

 

“판에 새겨서 찍은 그림.” 판화(版?)의 사전적 의미입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판화 얘기냐고요? 제가 이번에 소개해드릴 것이 바로 판화이기 때문이죠. 그것도 흔하게 볼 수 없는 북한 판화입니다. 북한에도 당연히 화가들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최고의 기량을 지닌 화가들을 모아놓은 단체가 바로 ‘만수대창작사’라는 곳인데요. 정기적으로 전람회를 열어 우수한 작품을 가려 시상도 합니다.

2010년 북한 국가미술전람회 도록

공훈예술가 김봉주의 판화 작품

얼마 전에 북한에 출장을 다녀온 한 후배가 북한에서 사왔다며 제법 구색을 갖춘 양장본 도록을 한 권 건네더군요. 2010년 북한의 국가미술전람회 도록이었습니다. 책을 펴낸 주체는 ‘만수대해외개발회사그룹’입니다. 이름만 보면 만수대창작사가 생산한 미술품의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곳이 아닐까 싶더군요. 아무튼 도록을 넘기다 보니 북한 현대미술이 이 정도였나 싶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그중에 판화가 어엿한 한 분야로 포함돼 있는 게 눈에 띄었지요.

 

 

처음 대규모 공개되는 북한 현대 판화

하지만 이런 작품을 직접 볼 기회가 없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었죠. 더군다나 남북이 평화의 큰 길로 나아가는 시대에 말이에요. 그러던 차에 국내에서 북한 현대 판화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간헐적으로 북한 판화 작품이 국내에 소개된 적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100점이 넘는 북한의 현대 판화가 공식적으로 우리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에게 선보이는 건 처음입니다.

홍춘웅 <백두의 봄>(2011)

백두산의 봄을 그린 판화 작품입니다. 화면을 분할해 보면 맨 아래 들판에 진달래가 여기저기 피었고, 그 위로 초록빛을 한껏 머금은 자작나무 숲이 펼쳐집니다. 그 배경에 멀리 산자락은 파란색으로 물들었고, 그보다 더 멀리로 보이는 눈 덮인 봉우리가 푸른 하늘과 이마를 맞대고 있습니다. 이념과 무관하게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이런 작품, 참 좋죠?


1. 김영광 <총석정의 저녁>(2011)
2. 김도선 <해금강의 파도>(2008)

그리운 ‘금강산’을 그린 작품도 눈길을 붙듭니다. 해질녘의 총석정과 해금강을 아련한 색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하늘도 바다도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드는 시간.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와 자유롭게 비상하는 갈매기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저는 한창 남북이 화해 무드였던 2007년 한 해에만 네 차례나 금강산을 다녀오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해금강의 낙조를 본 적은 없었죠. 언젠가 다시 금강산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면 저 멋진 낙조를 꼭 보고 와야겠습니다.

 

판화로 보는 북녘 사람들의 생활상

1. 류상혁 <명절날의 민속거리>(2008)
2. 황보신 <추석날>(2013)

이번에 선보이는 북한 판화를 몇 가지 주제로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위에 소개해드린 것처럼 자연이나 역사 유적을 묘사한 일련의 작품들이 있지요. 하지만 이보다 더욱더 흥미를 자아내는 건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묘사한 그림들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명절을 쇠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그린 <명절날의 민속거리>와 <추석날>입니다. 명절이 되면 야외로 나들이 나가 흥겨운 민속놀이도 즐기고, 온 가족이 모여 떡을 만들어 나눠 먹는 정경입니다. 북한의 요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명절이 주는 풍성함과 행복감은 북한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겠지요.

길은경 <일요일의 하루>(2010)

같은 맥락에서 북한의 휴일 풍경을 묘사한 작품들도 꽤 흥미롭습니다. <일요일의 하루>라는 제목의 판화를 한 번 보세요. 대동강변인지 어딘지는 몰라도 강가에 낚시꾼들이 그득하죠. 우리의 휴일 풍경과 다를 게 없습니다. 북한 사회가 우리의 고정관념과 달리 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 북한에서 공개하는 여러 영상에서 여실히 확인됩니다. 진짜 저럴까 싶을 정도로 휴일이면 놀이공원이나 식당이 온통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은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니까요.

1. 김옥선 <탈곡장에서>(1999)
2. 인성진 <사랑을 싣고>(2016)

북한 사람들의 일상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이런 작품과 달리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는 다분히 선전적 성격의 작품들도 보입니다. 대규모 건설 현장을 묘사한 작품들도 같은 맥락이에요. 힘들고 괴롭고 찌푸리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죠. 이런 점은 대단히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예술이 순수하게 예술로서 존재할 수 없는 북한 사회의 특수한 조건이 반영된 것이죠. 그걸 감안하면서 작품을 해석하고 감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1. 김영호 <북부철길건설장>
2. 황병균 <건설장의 야경>(2014)

 

“남녘의 판화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를”

근래 보기 드물게 북한의 미술 작품, 그것도 엔간해선 접하기 힘든 북한의 현대 판화를 직접 볼 수 있는 이 전시회는 1년여 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끝에 성사됐다고 합니다. 사실 정치와 외교 무대의 담판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는 앞으로 더욱더 활성화돼야 합니다. 앞장서서 전시를 준비한 판화가 김준권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남녘의 판화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판화작품을 통해 서로의 생각도 읽어보고, 그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귀한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를 통해 그동안 단절됐던 남북한 판화문화 환경의 상호이해를 도모하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은 KBS기자.

부족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틈틈히 책을 읽으면서

미술관과 박물관, 전국의 문화 유산을 찾아다니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화 예술 분야 전문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