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텔레비전을 보다가 우연히 <물괴>(2018)란 영화를 봤습니다. 괴수 영화에 사극을 버무린 흥미로운 작품이었죠. 영화 자체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못 받았던 것 같더군요. 흥행에도 실패했고요. 그런데 영화가 끝나갈 즈음 아주 흥미로운 장면 하나가 보였습니다. 주인공들이 괴수와 최후의 대결을 벌인 장소가 경복궁인데요. 밤을 새운 처절한 사투가 끝이 난 뒤 동이 터올 무렵, 궁궐 밖에 있던 이들이 하나 둘 광화문으로 향합니다. 여기서 제 눈을 확 뜨이게 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광화문 현판이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광화문 현판(왼쪽)의 색깔은 지금의 현판(오른쪽)과 정반대입니다.
이 장면은 실제로 광화문에서 촬영했을 겁니다. 자세히 보면 현재의 광화문과 그 모습이 똑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게 있죠. 현판입니다. 지금 광화문에 걸린 현판과 비교해볼까요. 현판 크기는 물론 글씨까지 똑같죠. 하지만 색깔이 다릅니다. 영화 속 현판은 짙은 바탕에 흰 글씨로 돼 있습니다. 지금의 광화문 현판과 정반대인 거죠. 제작진이 현판 색깔만 일부러 바꾼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영화의 배경은 조선시대입니다. 당시 광화문 현판 색깔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짙은 바탕에 흰 글씨’였습니다. 실제 현판이 틀리고, 영화 속 현판이 맞는 겁니다.
광화문 현판에 얽힌 ‘흑역사’를 되짚어보기 위해선 2010년 8월 15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날, 광화문 광장에서 요란하게 치러진 광복절 기념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새롭게 복원된 광화문을 공개한 일이었습니다. 일제가 고의로 틀어버린 광화문의 위치를 경복궁 중심축에 맞춰 원래 자리로 옮기고, 덕지덕지 붙어 있던 콘크리트를 모두 뜯어낸 뒤 석축과 문루를 옛 모습에 가깝게 되살렸죠. 해방된 지 65년이 지나서야 광화문이 어엿하게 제자리를 찾은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광화문은 공개되자마자 구설수에 휘말렸습니다. 문제는 현판이었죠. 현판 글씨를 본 사람들이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생동감이 하나도 없는 죽은 글씨라는 것이었죠. 이 글씨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1916년 유리원판에 있는 것을 그대로 살린 겁니다. 유리원판이란 오늘날 사진 필름에 해당하는 감광판을 뜻합니다. 다른 말로 유리건판(琉璃乾板, glass dry-plate)이라고도 하죠. 플라스틱으로 만든 필름이 보편화하기 전에 주로 사용된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유리원판은 문화재 복원에 결정적인 근거 자료가 됩니다.
1916년 광화문 유리원판 사진(왼쪽)과 디지털로 복원된 광화문 현판 글씨(오른쪽)
광화문 현판 복원도 마찬가지였죠. 2005년에 문화재청은 바로 이 유리원판을 디지털로 정밀 분석해서 당시 현판을 70%가량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며 복원된 광화문 현판 글씨를 공개했습니다. 위 사진이 바로 그겁니다. 경복궁 복원의 기준 시점은 임진왜란 이후 폐허로 방치됐던 경복궁을 대대적으로 중건한 1888년입니다. 1867년에 시작된 공사가 1888년에 마무리되기 때문에 이 해를 기준점으로 봅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 광화문 현판 글씨는 중건 당시 훈련대장이었던 임태영(任泰瑛. 1791∼1868)이 쓴 겁니다.
설왕설래하는 와중에 또 하나의 변고가 일어나게 됩니다. 복원된 광화문을 공개한지 불과 며칠도 안 돼 현판에서 균열이 발견된 겁니다. ‘부실 졸속 복원’이라는 비난이 빗발치듯 쏟아졌죠. 논란이 커지자 결국 현판을 다시 제작해서 거는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현판 글씨를 한글로 바꾸자, 한자로 하되 한석봉 글씨로 하자, 아니다 원래대로 가자, 아예 현대 서예가에게 맡기자… 온갖 요구와 주장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옵니다. 말 그대로 광화문의 수난이자, 광화문 현판의 수난이었습니다.
그렇게 또 5년여가 흐른 2016년 2월. 저는 한 시민단체로부터 뜻밖의 사진 한 장을 받았습니다. 광화문을 찍은 오래된 흑백사진이었죠. 무슨 영문인지 몰라 왜 사진을 보낸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현판을 자세히 보라고 하더군요. 흐릿하긴 해도 광화문이란 세 글자가 보였습니다. 그것도 짙은 바탕에 밝은 글씨로 말이죠. 만약 사진에 담긴 모습이 사실이라면 새로 제작하는 현판을 어쩌면 다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를 결정적인 자료가 될 것이었죠. 따라서 가정 먼저 확인해야 했던 건 사진의 출처가 믿을 만한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사진을 보내온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의 혜문 대표와 머리를 맞대고 사진의 출처를 찾아 국내외 검색 사이트란 사이트는 샅샅이 훑어 나갔습니다. 과연 출처를 확인할 수 있을까. 자꾸만 조바심은 나는데 단서가 잡히질 않더군요. 그렇게 한참을 헤매고 헤매다가 어느 외국 사이트에 다다랐습니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홈페이지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스미스소니언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그토록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문제의 광화문 사진을 찾아냈습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의 ‘국가 인류학 자료보관소’ 홈페이지에 등록된 광화문 사진(위)과 현판 확대 이미지(아래)
또렷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광화문 세 글자 가운데 ‘광’ 자와 ‘화’ 자는 얼른 알아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짙은 바탕에 밝은 글씨죠. 광화문 세 글자가 이렇게 육안으로 보이고 게다가 현판 색깔까지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 발견된 건 당시로서는 처음이었습니다. 게다가 공신력 있는 박물관 소장품이니 믿을 만한 출처까지 확인됐습니다. 이 사진이 촬영된 시기는 적어도 1895년 이전입니다. 다시 정리합니다. 경복궁 복원 기준 시점은 1888년. 광화문 복원의 근거가 된 유리원판이 촬영된 시기는 1916년. 이제 어느 사진이 경복궁 복원 기준 시점에 가까운지는 분명해졌습니다.
《경복궁 영건일기》는 일본 와세다대학 도서관에 9책 9권이 소장돼 있습니다.
이 사진 한 장으로 광화문 현판의 고증이 잘못됐다는 사실이 입증됩니다. 문화재청도 이를 인정하고 면밀한 조사를 거쳐 2018년 1월 결국 현판 색상을 바꾸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또 하나의 결정적인 근거가 확인됩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발간하는 학술지 《고궁문화》 11호에 실린 논문 <경복궁 영건일기와 경복궁의 여러 상징 연구>에서 광화문 현판의 색상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문헌 자료의 존재를 밝힌 겁니다.
동국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연구자 김민규 씨가 일본 와세다대학에 소장된 《경복궁 영건일기》를 확인해보니, 광화문 현판의 색상은 흑질금자(黑質金字), 즉 검은 바탕에 금색 글자였습니다. 광화문 현판 색상의 오류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문헌 자료입니다. 사진에 이어 문서까지 나온 겁니다. 이로써 광화문 현판 색상에 대한 오랜 논란에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안중식 <백악춘효도>, 1915년 여름, 가을, 비단에 엷은 색, 197.5×63.6cm, 202.0×65.3cm,
등록문화재 485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근대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일부러 이 전시회를 찾아간 이유는 조선왕실의 마지막 화원(畵員), 즉 왕실 화가였던 심전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백악춘효>(1915)를 보기 위해서였답니다. 경복궁의 전경을 그린 <백악춘효>는 ‘여름본’과 ‘가을본’ 두 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 있습니다. 세부 묘사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같은 구도로 그린 그림이죠. 두 점이 전시장에 나란히 걸린 건 극히 드문 일이라 더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두 그림에서 광화문 현판 부분을 확대해 보면 바탕색이 짙다는 걸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광화문 현판 색상에 관한 단서가 들어 있습니다. 현판 색깔을 자세히 볼까요. 광화문이라는 세 글자는 없습니다만 바탕은 분명 검정입니다. 기와 색깔과 비교하면 짙은 색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죠. 위에서 정리했듯이 지금 광화문에 걸려 있는 현판의 색이 잘못됐다는 사실은 사진과 문헌 자료를 통해 거듭 입증된 바 있습니다. 화가가 현판 색깔을 일부러 잘못 칠했을 가능성이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그림이야말로 현판의 원래 색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일 겁니다. 그래서 더 흥미롭기도 하고요.
얼마 전 시민단체가 국무총리실에 청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광화문 현판을 교체한다면 3․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년이 되는 올해가 가장 좋은 시기라는 겁니다. 따라서 기왕이면 올해 광복절 기념식에서 새로운 현판을 공개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정부도 분명 적절한 시점을 조율하고 있겠죠. 경복궁의 얼굴이자 조선 왕실 문화의 상징으로 오늘도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광화문에 제대로 된 현판이 걸리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은 KBS기자.
부족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틈틈히 책을 읽으면서
미술관과 박물관, 전국의 문화 유산을 찾아다니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화 예술 분야 전문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