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이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 편리한 온라인 채널들이 널려 있는데도 굳이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름 애사심이 작동하기도 하고 오프라인의 분위기도 살피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처럼 ‘특수목적’이 없는 경우라면 장보기의 선택지는 너무나 많다. 굳이 노력과 시간을 들이지 않더라도 장보기를 대행해 주는 서비스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대형마트가 공통적으로 직면한 최대 고민거리는 고객 이탈 현상이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와 1인 가구의 이탈이 두드러진다. 체인스토어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연령대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40대 고객의 비중은 감소하고 50대 이상의 비중은 증가하고 있다. 대형마트 고객의 평균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대형마트 이용객 연력은 높아지고 있으나, 밀레니얼 세대 내 1인 가구와 워킹맘이 대한민국 핵심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문제는 대형마트에서 떠나가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와 1인 가구가 대한민국 핵심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2%, 1인 가구 비중은 30%에 육박한다.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워킹맘도 빠르게 늘고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테이셰이라 교수에 따르면 고객들이 구매결정을 할 때 보통 금전적 비용(가격) 외에도 노력이나 시간적 비용(편리함)을 고려한다. 기존 베이비부머가 상대적으로 ‘가격’에 더 가치를 두는 구매결정을 한다면, 밀레니얼과 1인 가구는 ‘편리함’에 더 중점을 두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다 보니 최근 유통업계 전반에 ‘편리미엄’과 ‘시간테크’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 편리미엄은 편리함과 프리미엄의 합성어로 비용이 좀 더 들더라도 시간이나 노력을 절감할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찾는 트렌드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이런 추세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2030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전체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반면 음식배달을 포함한 외식비 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식료품을 사서 직접 요리를 해 먹는 대신에 음식을 배달해 먹는 빈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유일하게 60대 이상 고연령층에서만 식료품 지출 비중이 지속해서 높게 나타난다. 결국 대형마트가 집토끼인 베이비부머 외에도 산토끼인 밀레니얼 세대와 1인 가구까지 잡기 위해서는 가격전략에 외에도 생활에 편리함을 더해 주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어필해야 한다는 것이다.
‘편리미엄’ 트렌드의 대표 서비스인 새벽배송.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지속해서 커지고 있다
최근 스타트업들은 이러한 트렌드에 편승해서 편의 시스템 도입에 적극적이다. ‘우아한형제들’은 맛집 음식을 집에서 편하게 배달 시켜 먹는 ‘배달의민족’ 서비스를 통해 플랫폼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거래액이 5조 원을 돌파하며 최근 3년간 연평균 63% 이상씩 급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식료품을 즉시 배송해 주는 ‘B마트’ 서비스도 출시했다. 1-2인 가구나 바쁜 맞벌이 가구가 굳이 마트에 갈 필요없이 필요할 때 바로 주문해 먹을 수 있는 소비문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배달 전문 플랫폼 ‘요기요’도 얼마전 대형마트, 슈퍼, 편의점 등과 제휴해서 고객들의 장보기를 대행해 주는 서비스를 오픈했다. 스타트업 마켓컬리가 2015년 처음 도입한 ‘식료품 새벽배송’ 시장은 이젠 1조 원을 넘볼 정도로 커지고 있다. 과거에 오프라인만이 제공하던 ‘즉시성’이 이젠 온라인에서도 구현돼 가고 있는 것이다.
누적 주문 건수가 1억 건을 돌파한 스타벅스의 ‘사이렌오더’에도 ‘편리미엄’ 트렌드가 반영되어 있다
이런 ‘편리미엄’ 트렌드는 유통 외에도 여러 업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 스타벅스가 처음 도입한 커피 원격 주문 시스템인 ‘사이렌오더’는 줄 서는 번거로움을 덜어주면서 누적 주문 건수가 1억 건에 달하고 있다. 투썸플레이스와 커피빈도 최근 이와 유사한 시스템을 잇달아 도입했다. 가전 시장에서는 집안일을 줄여주는 소위 ‘삼신가전’이 잘 팔린다. 3대 신의 가전이라 불리는 의류건조기,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가 잘 나간다. 청소대행앱과 세탁물 수거앱도 증가하고 있다. 편리함이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테이셰이라 교수의 경영전략서 ‘디커플링(decoupling)’
세상을 뒤집은 신흥 기업의 힘은 디지털 신기술이 아니라 변화하는 고객의 욕구를 분리·해체(decoupling)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테이셰이라 교수는 최근 저서 ‘디커플링(decoupling)’에서 스타트업들이 고객 소비 활동 사이의 빈틈을 파고 들어갈 때 기존 기업들도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리테일 방식도 변해야 근본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리테일에서 상품과 가격 경쟁력은 기본이다. 여기에 더해 요즘 소비의 주축으로 떠오르는 밀레니얼 세대와 1인 가구가 원하는 ‘한끗 다른 편리한 서비스’를 고민해야 할 때다. 그래야 충성스러운 집토끼(베이비부머)와 변덕스러운 산토끼(밀레니얼 세대) 모두를 잡을 수 있다.
이경희 이마트 유통산업연구소 소장
현재에서 미래를, 미래에서 현재를 부감하며
리테일의 변화 방향을 탐색하는 리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