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계산이 안된다.” 아이작 뉴턴이 주식투자에서 큰 손실을 본 후 남긴 말이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인간의 행동은 예측할 수 있어도, 바이러스의 광기는 예측이 안 된다”며 패닉 속에 있다. 삶은 원래 혼돈이고 예측 불가능하나, 지금처럼 모든 것이 불확실한 때는 없었다. 세계는 지금 보이지 않는 적, 파악되지 않는 적, 코로나바이러스와 힘겨운 전투 중이다. 그리고 유통은 최전선에서 크고 깊은 격변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코로나19는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 이후 가장 충격적인 전염병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 5,00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전 세계 GDP는 7% 이상 감소했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감염자 수는 350만 명, 사망자 수는 25만 명에 육박한다. 워낙 전파력이 세다 보니, 봉쇄조치와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벌어지며 세계 경제도 심대한 타격을 받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금년 전 세계 GDP는 -3.0%, 미국은 -5.9%, 일본은 -5.2%, 한국은 -1.2%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처럼 환경이 크게 바뀌면서 기존에 중시되지 않았던 가치가 새롭게 부각된 측면이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기존에 보여져 왔던 소비트렌드가 가속화된 측면이 있다.
우선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가치로 ‘안전·위생·건강’의 중요성을 들 수 있다. 코로나19가 워낙 전파력이 강하다 보니, 매장의 안전과 위생 등에 대한 고객들의 우려가 크다. 방역을 잘하는 매장, 사회적 거리 유지를 잘 실천하는 매장, 건강한 먹거리를 파는 매장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와 니즈가 커지고 있다. 두 번째는 공급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됐다는 점이다. 갑작스런 코로나19의 발병으로 인해 확산 초기에 마스크, 세정제를 포함한 일부 품목들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다. 폭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일부 상품의 경우에는 공급처가 영향을 받으면서 물품 조달이 어려웠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공급망을 유연하게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마지막으로 ‘비즈니스 지속 계획 (Business Continuity Plan)’의 중요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재난 재해가 많지 않다 보니, 그동안 BCP 수립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았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위기 시에도 핵심 업무를 지속할 수 있는 일종의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수립하는 일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됐다. 전염병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 가능성을 높게 본다. 일시적으로 소강상태에 접어 들더라도, 올 가을 또는 겨울에 재발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 1918~1920년 대유행했던 스페인독감도 발병 4개월 뒤 2차 폭증, 7개월 뒤 3차 폭증으로 이어졌다. 코로나19의 상시화 가능성을 감안한다면, 위의 세 가지 가치의 중요성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기존 소비 트렌드가 가속화되는 측면으로는 언택트(untact) 확산으로 인한 온라인 시프트(online shift) 현상을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몇몇 이커머스 업체들의 시장점유율 확대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현재는 플랫폼 간에 시장점유율 격차가 크지 않아 치열한 치킨게임을 하고 있지만, 시장구조 재편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 누가 먼저 시장점유율 임계치(critical mass, 약 30%)를 달성 하느냐의 문제이다. 일정 수준 이상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게 되면 네트워크 효과와 규모의 경제 등으로 인해 시장점유율 확대에 가속도가 붙게 된다. 또한 방대한 고객데이터나 기존의 물류 인프라 등을 활용해 수익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용이해진다. 이렇게 되면 소수의 지배적 플레이어와 다수의 니치(niche) 플레이어로 양분되는 시장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아마존이 50%를 점유하는 미국 온라인 시장, 알리바바가 63%를 차지하는 중국 온라인 시장을 생각하면 쉽게 감이 올 것이다. 이런 시장구조가 형성되면 온라인 시장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대비해야 한다. 과연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어떠한 포지셔닝 전략으로 돌파해 나갈 것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온라인 시프트 시대에, 오프라인은 온라인이 제공할 수 없는 차별화된 경험과 가치로 승부해야 한다. 기존에 상품 판매 공간이었던 매장을, 체험하고 배우고 공유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바꿔 나가야 할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소셜라이즈 본성이 있다. 언택트 소비가 가속화되면 될수록, 그 반작용으로 소셜기능에 대한 니즈가 증가할 수 있다. 오프라인에 가고 싶은 즐거운 이유를 만들고, 이러한 오프라인 매장을 온라인의 명점(bright spot)과 연결해 지속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오프라인 점포를 온디맨드 배송의 거점으로 활용하거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고객 데이터를 통합해 맞춤형 상품추천이나 온라인 광고 사업을 해서 추가 수익원을 발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19와 함께 도래하는 뉴노멀의 시대에, 변혁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파도타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파동의 방향을 잘 감지할 필요가 있다. 새롭게 바뀌는 세상에서 고객들의 본질적인 필요를 파악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등 유효한 자원들을 연결해 이를 충족시켜야 한다. 뉴노멀의 큰 흐름을 주시하면서 자원과 비즈니스의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해야 할 타이밍이다.
이경희 이마트 유통산업연구소 소장
현재에서 미래를, 미래에서 현재를 부감하며
리테일의 변화 방향을 탐색하는 리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