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 소장의 리테일 프리즘] 코로나 블루 시대, 소비란 무엇인가

2020/07/17

 

요즘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코로나(Corona)와 우울(blue)이 합쳐진 말로, 코로나로 인해 일상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찾아오는 우울감을 의미한다. 코로나가 생각보다 장기화되고 있고 연내 2차 확산 가능성도 높아지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과 우울감도 높아지고 있다.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불황에 일자리를 잃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의 게이지가 높아지고 있다. 소비는 소비자의 심리상태를 강하게 반영한다. 고전 경제학에서는 소비자를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주체로 가정하나, 행동경제학이나 심리학에서는 제한된 합리성과 상당 부분의 감정에 의해 이끌리는 주체로 본다. 코로나 블루 시대의 소비자는 과연 무엇을 위해 소비하는가, 이 시대의 소비란 무엇인가.

          
코로나 블루 시대의 ‘생존소비’

코로나 이후 가장 눈에 띄는 소비 유형은 바이러스와 불황으로부터의 ‘생존’을 위한 소비다. 바이러스 공포로 인해 밖에 나가는 횟수를 줄이는 한편, 건강을 챙기면서 ‘집밥’이 재조명 받고 있다. 감염의 두려움 때문에 건강과 면역력에 좋다고 하는 식품들이 잘 나간다. 금년 1-5월 전체 소매시장이 -2.7% 역성장할 때, 식료품 시장은 8.4%나 성장했다. 건강기능식품 소비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농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건강기능식품 상위 5개 업체의 금년 1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약 20%나 증가했다. 또한 재택근무나 온라인 수업 등으로 집안 체류 시간이 길어지면서 책상 등 집안 가구나 PC 등 가전제품을 새로 들이는 소비도 증가하고 있다. 금년 1-5월 가구 시장은 17.9%, 가전 시장은 6.3% 신장했다. 반면 외출을 자제하면서 의류 매출은 20.7%, 신발과 가방은 22.5%, 화장품은 16% 감소했다.

‘생존 소비’가 부각되면서 선호하는 쇼핑 채널의 변화도 눈에 띈다. 가급적 대면 접촉을 피하면서 소위 언택트(Untact) 채널이 뜨고 있다. 금년 1분기 온라인 채널의 식품 매출 증가율은 50%를 넘어섰다. 눈에 띄는 점은 온라인 신규 이용자 중에 오프라인 세대로 알려진 50대 이상이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또한 불황으로 지갑이 얇아지면서 가성비가 높은 채널의 선호 현상도 두드러진다. 한 푼이라도 절약하고자 하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리라. 대용량으로 저렴하게 파는 트레이더스(창고형매장)나, 가성비가 높은 노브랜드 매장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 금년 상반기에 노브랜드 전문점은 두 자릿수 성장했다.

          
코로나 블루 시대의 ‘감정소비’

한편, 이러한 ‘생존 소비’의 대척점에 있는 ‘감정 소비’ 현상도 부각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우울과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위안’을 얻기 위한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EBS 다큐프라임 ‘소비는 감정이다’ 편에서, 펀햄 런던대 교수는 인간은 ‘불안할 때’, ‘우울할 때’, ‘화날 때’ 소비를 한다고 진단한다. 또한 제니퍼 러너 하버드대 교수는 “슬픈 감정을 느낄 때 평소보다 더 많이 지출한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소비가 의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바이러스와 불황의 공포가 밀려드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소비를 통해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위안을 얻고자 한다. 코로나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수백만 원대 명품을 사기 위해 명품매장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도 이로써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증하던 지난 3월에도 백화점 명품 매출은 19% 이상 증가했다. 

이뿐인가. 소비자들은 집안에서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홈가드닝이나 홈트레이닝 상품에 지출을 늘리고 있다. 집에서 식물을 키우는 ‘홈가드닝’이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의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배양토, 씨앗류 등 관련 상품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소위 ‘홈짐’을 꾸리는 사람들도 늘면서 아령, 스탭퍼, 러닝머신 등 홈트레이닝 관련 매출도 두 자릿수 신장하고 있다. 집 안에 ‘홈시네마’를 만들어 놓고 영화와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탈출구를 찾기도 한다. 지난 4월 OTT 업체 넷플릭스의 결제액은 전년 동월 대비 137%나 증가했다.

코로나 블루 시대의 소비는 한마디로 ‘생존’이자 ‘위안’이다. ‘물리적 생존’에 도움이 되거나, 아니면 ‘정신적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소비가 증가할 것이다. 금년 상반기에 전체 소매시장이 역 성장한 상황에서도 이 두 가지 소비 유형에 해당하는 상품이나 채널들은 고공 행진을 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환경이 크게 바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있다는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새롭게 분출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잘 읽으면, 코로나 블루 시대에도 새로운 블루오션을 만날 수 있다.

이경희 이마트 유통산업연구소 소장

현재에서 미래를, 미래에서 현재를 부감하며
리테일의 변화 방향을 탐색하는 리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