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로서 이마트를 커버한 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되어간다. 그동안 대형마트 의무 휴업 규제부터, 새로운 온라인 기반 경쟁사들의 등장까지 많은 고비를 넘겨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마트를 꾸준히 긍정적인 뷰로 바라보았던 이유를, 과거 신세계그룹 관계자의 발표를 인용해 표현해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고, 기억에 남는 구절이다. “이마트가 멋진 이유는 항상 새로운 것을 가장 먼저 시도하고, 가장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기존점의 트래픽이 온라인 쉬프트로 인해 자연스럽게 하락하는 추세지만, 미래형 점포인 월계점 모델 도입 등으로 고객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동시에 노브랜드와 같은 파워풀한 전문점을 통해 추가 출점 동력을 확보했다. 쓱닷컴은 온라인 장보기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상반기 좋은 실적을 거두었다. 이처럼 유통업계 내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해 나가고 있는 업체는 누가 뭐래도 이마트다.
온라인 장보기 대표주자 SSG.com
코로나19로 인해 어쩌다 보니 2020년 한 해가 절반하고도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 안에서 가장 많이 소비된 단어는 아무래도 비대면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대면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오프라인 점포들에 대한 우려가 컸고, 실제로 온라인 쇼핑 및 배달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도 커졌다. 그동안 오프라인 소매판매액이 낮은 한 자릿수의 성장률을 겨우 이어가는 것에 반해 온라인 쇼핑이 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지만, 금번 코로나19로 인해 그 격차가 크게 벌어지게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공포가 극에 달했던 2020년 3월, 온라인 쇼핑 성장률은 YoY +16.9% 성장하며 움츠러든 소비심리에도 잘 방어한 모습이 나타났지만, 오프라인의 경우 YoY -17.6% 감소하며 타격을 크게 받았다.
이러한 트렌드 속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그동안 온라인 구매가 활발하지 않았던 50대 이상의 연령층이 이번 전염병으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입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올해 2월부터 3월 초까지 한 달간 50대 이상의 온라인 구매 증가율은 생필품과 생활용품, 식품에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는데, 이 세대가 온라인 구매에 가장 익숙하지 않은 연령층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또한 품목별로 보았을 때 온라인 침투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장보기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 또한 큰 의미가 있다. 이 분야가 이마트가 가장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부문이고, 향후 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 내에서 식료품 및 신선식품 침투율이 소비재 중 가장 낮다는 점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져 있으므로 부연 설명 하지 않겠다. 모두가 인지하듯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 식료품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블루오션으로 볼 수 있는 분야고, 시장 규모도 크기 때문에 유통업체 뿐만 아니라 인터넷 플랫폼 업체들 또한 군침을 흘리고 있다.
다만 온라인 식료품 분야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데, 이는 1) SKU 종류가 너무 많고, 2) 배송에 있어 신선도를 유지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많은 종류의 품목들을 한 장바구니 안에 담아내는 작업은 비용이 매우 많이 들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수행되어야 하고, 보관부터 소비자의 집까지 배송되는 모든 구간 동안 제품들을 신선하게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돈이 많이 든다는 소리다. 또한 이왕이면 빨리 배송되면 좋다. 아래 그림에 나타나 있듯이 장보기 시장 및 소비 패턴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장바구니 사이즈는 점점 더 작아지고 있고, 배송 시간은 점점 더 단축되고 있다.
이마트는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NE.O 운영을 통해 이러한 시장 특성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해왔고, 이미 요지에 자리를 잡은 점포들을 물류 네트워크로 활용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지난 8월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 하나가 ‘백화점의 굴욕’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우리나라 언론에 소개되었다.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이 미국 내 일부 백화점 점포들을 물류센터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용이었다. 물류센터로 활용될 자리는 미국 최대 쇼핑몰 디벨로퍼 업체인 사이먼 프라퍼티 그룹이 가지고 있는 JC페니와 시어스 백화점의 점포 공간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 쇼핑이 늘어나면서 배송 물량도 증가하고 있어, 아마존은 도심의 백화점을 물류센터로 활용해 Last-mile Delivery 시간을 단축시키려는 움직임이다. 마찬가지로 물류센터 부지를 매우 구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도심 주요 거점에 점포를 가지고 있는 이마트는 경쟁사 대비 높은 온라인몰 매출액을 기반으로 점포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우위를 점하고 있다 판단한다. 온라인 매출액이 충분히 발생하지 않으면 물류 기지로서의 점포 효용성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점: NO Brand? YES Growth!
이마트의 전문점 부문은 매력적인 콘텐츠를 통해 집객을 유도하고 향후 추가 출점 여력을 상승시킬 계획으로 시작되었으나, 한국 유통업 내 전체적으로 오프라인 점포들의 부진이 이어지는 매크로 환경으로 인해 노브랜드 외에는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부진한 점포들이 폐점함에 따라 전문점 부문의 적자는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는데, 올해 2분기 전문점 부문 영업적자는 YoY 123억 원 개선된 69억 원을 기록해 매우 고무적이었다. 이에 전문점 부문 연간 영업적자는 2019년 866억원에서, 올해 454 억원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이베스트 투자증권 추정치).
한편 전문점 중 노브랜드는 양호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1분기 첫 분기 흑자를 기록한 이후 2분기 흑자는 MoM으로 이익 규모가 확대되었다(2020년 1분기 영업이익 25억 원 → 2분기 55억 원). 노브랜드는 앞으로도 양호한 실적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는데, 이마트의 여러 자체 브랜드 중 노브랜드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최근 경기 부진으로 인해 가성비에 집중한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1990년대 초반 1인당 GDP가 약 30,000달러에 도달하고, 경제 성장률은 1%를 기록하며 주도적인 소비 행태로 양극화와 합리적 소비가 확산되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당시 히트 상품으로는 PB 콜라, 100엔 샵(진열된 상품이 대부분 1,000원가량인 상점), 반값 햄버거 등이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일본 소비자들이 무조건 싼 것이 아닌 일정 수준의 품질을 요구하며 저렴한 것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일본 버블 붕괴 이후에도 주가가 상승한 종목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소비 트렌드가 변화함에 따라 일본 내 전반적으로 저가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와, 해외시장 진출기업, 임대주택 관련 기업의 주가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구를 판매했던 니토리와 저가형 의류업체 시마무라가 대표적이다. 집계된 시기가 1989년에서 2012년으로 여러 가지 기술 혁신이 일어났기 때문에 제품 혁명을 이루어 낸 기업들의 주가 상승 폭도 컸다. 같은 기간 일본의 닛케이 지수가 30,243pt에서 10,395pt까지 65.6% 하락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아래 표의 기업들의 주가 상승 폭은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동안의 대표적인 히트상품들은 ‘저렴하면서도 실용적’이라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유통업체들이 세워야 하는 전략은, 이제 1) 가격 차별화 또는 2) 상품 차별화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격 차별화가 되지 않는 유통업체는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은 합리적 소비패턴을 학습했고, 이에 따라 앞으로는 같은 상품에 더 비싼 값을 지불하고 구매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은 대부분 가격 차별화에서는 열위에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상품 차별화에 대한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고, 이와 관련해서 노브랜드는 포지셔닝에 성공했다고 판단한다. 가격과 상품을 모두 차별화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기존점의 집객은 물론, 노브랜드 자체 전문점 출점 여력까지 확보하게 됐다.
과거 선진국의 사례를 살펴보아도 유통업체들이 저성장 위기에 봉착했을 때 강화했던 것이 PB상품을 포함한 차별화 상품이었다. 유통업체들이 자사 제품들을 차별화 해 상품 우위를 확대하는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당 매장에서만 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러한 상품이 집객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이 되면, NB상품의 동반 구매도 늘어나며 전체 매출은 증가할 수 있다. 무작정 마진을 키우는 것 보다, 브랜딩을 강조하는 것이 PB의 핵심이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쇼핑은 원래도 다가오고 있었던 미래를 더욱 앞당기며 성장을 가속화하는 반면, 오프라인 매장들은 쇠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는 국가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미국의 시어스 백화점은 파산보호 신청을 했으며, 중국은 오프라인 매장 방문 감소로 라이브 커머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세안 지역이 주 무대인 이커머스 및 게임 업체 SEA limited의 주가는 연초대비 247% 상승했으며, 동기간 중남미 이커머스 업체 메르카도 리브레의 주가 또한 70% 상승했다.
이처럼 온라인 베이스 업체들이 사세를 확장하는 흐름 속에서도, 오프라인 매장만이 할 수 있는 기능은 분명히 있다고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존이 여태 진행한 M&A 중 가장 큰돈을 주고 홀푸드를 인수하고, 알리바바 또한 RT마트를 인수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측면에서 이마트는 서두에 언급했듯 새로운 것을 항상 가장 먼저 시도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진화해왔다. 점포를 활용해 온라인 장보기 시장 내 승기를 잡아가고 있고, 노브랜드는 PB를 넘어서 어엿한 브랜드로 성장 중이다. 저성장 국면과 더불어 코로나19로 유례없는 소비 부진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이마트는 미래 성장 동력을 마련한 업체라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