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도 기업경영 분야 최고의 화두는 역시 ‘ESG’이다.
주지하다시피 ESG는 Environmental(환경), Social(사회), Governance(지배구조)의 약칭이다. 친환경, 사회공헌, 민주적 지배구조 등 비(非)재무적인 요소들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지표를 의미한다. ESG 지수를 정의하는 기준은 제각각이지만, 투자자들은 일반적으로 저탄소, 환경보호, 사회적 책임, 인권 보호, 반부패,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 등을 잣대로 기업을 평가 및 투자한다.
기업의 역할이 이윤 창출에서 사회적 책무성까지 확대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소비자들은 단순히 제품의 질과 가격이 우수하다고 해서 기업을 소비하지 않는다.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부상한 뉴노멀 시대의 수요자들은 기업의 도덕적 윤리와 사회공헌의 여부까지 평가한다. 더군다나 소비자들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만나는 리테일 기업은 ESG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ESG 트렌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외면받을 확률이 높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글로벌 연기금들도 ESG를 향해 흘러가고 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의 큰손인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 SWF)들의 총자산을 합산하면 무려 8조 달러(약 9,000조 원)에 달한다. 운용 자산규모가 1조 달러 이상인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경우 ESG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기업을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아예 제외하고 있을 정도다.
국내의 경우 전체 운용 규모에 대비하여 ESG 관련 펀드, 채권 등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 미흡하지만, 앞으로 세계 3위 규모의 연기금인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ESG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전망이다. 2020년 기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규모는 830조 원이었는데 국민연금은 2023년까지 이 중 50% 비중을 ESG 중심 투자 자금으로 변화한다는 계획이다. 기관투자자들뿐만 아니라 민간기업들 역시 수소 전기차 등 친환경 차를 생산하는 현대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그린본드(환경과 관련한 ESG 채권) 발행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어쨌든 ESG는 이제 기업에서 생존을 위해 사활을 걸고 지향해야 하는 목표가 되었다. 지금부터 우리는 ESG 중에서도 ‘E(Environmental, 환경)’ 키워드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해볼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
인류는 18세기 산업화 이후, 수용 가능한 수준 이상의 탄소를 배출해 왔다. 세계는 석탄과 석유를 동력원으로 사용하며 막대한 부를 이뤘지만, 반대급부로 온실효과로 인한 지구온난화 현상을 가속화했다.
지구온난화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 그로 인해 우리의 생활에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대표적인 기후 부정론자였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구온난화가 일종의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탄소 감축을 위해 각국 정부가 합의한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고 자국 내 제조업 부흥을 위한 각종 반환경적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지구온난화가 의심할 여지 없이 과학적으로 명확한 현상이라는 것을 밝힌 2014년 IPCC(기후 변화 문제 해결을 위한 유엔 산하 국제 협의체)의 5차 보고서 발간 이후부터는 학계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람도 온실가스가 기후변화를 초래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나타난 최악의 문제는 기후변화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자연재해와 그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실로 어마어마할 정도이다.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한 허리케인, 홍수, 가뭄, 폭설, 혹한 등의 피해는 매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중이다. 예를 들어, 미국 캘리포니아는 2020년 기후변화로 여름철이 더욱 고온 건조해지면서 우리나라 면적의 16%에 해당하는 산림이 소실되는 극심한 산불 피해를 겪었다. 중국은 올봄에 들어 고비 사막이 더욱 건조해지면서 역대 최악의 황사를 경험하였고, 일본은 사상 최초의 5월 장마 시작을 기록하였다.
그린 시대의 개막
‘그린’이라는 키워드는 이해관계 일치가 어려운 세계 각국이 모두 동의하는 글로벌 어젠다가 되었다. 환경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한계치에 다다른 환경오염을 더 방치할 수 없다는 전 지구적 차원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각 국가는 탄소중립을 통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구체적인 계획들을 실행하고 있다. 요즘 언론 지상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하는 ‘탄소중립’ 이란 용어는 탄소 배출량만큼 탄소를 흡수하여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진정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고탄소 소비형의 산업구조를 밑바닥부터 뜯어고치는 수밖에 없는데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더이상 미룰 수는 없다. 현재,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유일한 해답은 탄소 중립이다. 이를 위해, 유럽이 그 첫걸음을 시작하였고, 미국과 중국이 동참하며 그린 시대의 막이 올랐다.
유럽은 이미 대부분의 EU 국가가 2020년 이전에 온실가스 배출 정점에 도달하였고 이후 꾸준히 탄소 절감을 위해 노력해 왔다. 2005년에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였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의 일부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인 탄소 국경세와 플라스틱세 등 강력한 환경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파리 협정에 재가입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대통령으로서 첫 임무를 탄소중립에 관한 정책에 승인한 것으로 시작했다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 바이든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을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선언하고 앞으로 4년간 2조 달러(약 한화 2,200조)달러를 환경산업에 투자하는 이른바 ‘그린 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참고로 2조 달러는 우리나라 1년 예산의 4배에 달하며 현재 코스피 상장종목 주식 전부를 사고도 남는 막대한 금액이다.
세계 최대 석탄 소비국이자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마저 2020년 9월 UN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2060년까지 40년간 매년 한화 43조 이상을 투자하여 기존의 석탄 위주의 에너지 발전을 풍력, 수력 등의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전면 전환하여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발표하였다. 중국은 에너지원을 석탄에 의존하는 비율이 67%에 달하는 등 탄소중립을 위한 기저가 타국에 비해 너무나도 낮기 때문에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발표한 내용보다도 더욱 적극적인 산업 변화와 막대한 자금이 투자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2020년 7월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19 이후 국내 경기 회복을 위한 한국판 뉴딜 정책을 발표하였다.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두 축으로 진행되는데, 그린 뉴딜의 핵심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이다. 이를 위해 73조 원 규모의 예산이 환경 산업에 투자된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 전 2021년 5월 29일에 서울에서 P4G(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정상회의가 개최된 바 있다. 또한 대통령 직속 기관인 ‘2050 탄소중립위원회’를 설립하여 기후 위기에 대처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유럽(10년간 약 1,350조), 미국(4년간 약 2,200조), 한국(5년간 73조 원) 등의 환경 산업 투자금을 합산하면 매년 700조나 되는 막대한 자금이 환경 산업에 흘러간다는 얘기가 된다. 이 돈은 현재 최고의 호황을 구축하고 있는 세계 반도체 시장보다 1.5배나 많으며 전 세계에서 1년에 판매되는 차량의 4분의 1을 구입할 수 있는 정도의 돈이다. 여기에 중국, 일본 등 다른 나라의 투자까지 더한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 될 것이다. 그린 산업은 기업가 입장에서는 큰 성장이 가능한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것이며 투자자 입장에서는 막대한 수익 창출이 가능한 블루오션 시장이 될 것이다.
기후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기업들
각국 정부뿐만 아니라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저탄소 전략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주범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정유·화학 등의 생산재 기업은 물론이고 시장을 선도하는 이미지가 강한 IT 기업들 역시 그렇다.
일례로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은 태양광발전소 설립 등을 통해 2018년부터 사업장 및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에도 미국 와이오밍주의 폐수처리장에서 나오는 바이오가스를 이용하여 100%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발생시키는 새 데이터센터를 만들었고, 심지어는 스코틀랜드 바다 밑에 풍력과 조력 터빈으로 전력을 공급받는 데이터센터까지 만들었다.
리테일 기업의 친환경 탄소중립 정책은 어떨까? 세계 최대의 운송 기업 아마존은 아마존에서 소비하는 전력을 2025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계획이다. 또, 물류창고에서의 배송 준비부터 포장재 생산 및 포장, 제품 운송까지 배송에 관한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하는 ‘배송 제로 (Shipment Zero)’ 플랜을 발표하였다. 이를 위해 제품에 불필요한 포장재를 제거하고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하며, 제품 배송 시 드론과 전기차, 전기 삼륜차, 오토바이 등을 사용하며 최대한 짧은 배송 거리를 고려한 배송 스테이션을 배치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기를 못 펴고 물러났지만, 여전히 글로벌 1위 리테일 기업인 월마트의 경우 2005년부터 협력사들과 함께 그린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으로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시작해 왔다. 그린 이니셔티브에는 현재 1,000개 이상의 협력사들이 가입했고 매년 약 3,000만 톤의 온실가스를 성공적으로 감축하고 있다. 월마트가 협력사들과 함께 2017년 4월부터 추진한 온실가스 감축 프로젝트 ‘기가톤 (Project Gigaton)’은 협력사들이 6가지 영역(에너지·농업·폐기물· 제품사용 및 디자인·포장·산림) 중에서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온실가스를 감축하게 되어 있다. 폐기물 영역을 예로 들어 보자. 공장과 창고, 유통센터 및 농장에서 배출되는 제품의 폐기물은 썩으면서 메탄가스(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매립하는 폐기물을 최소화하면 폐기물 처리 비용도 낮추고 온실가스도 감축할 수 있는데, 이를 지원하기 위해서 월마트는 협력사의 식량 손실 및 폐기물을 측정할 수 있도록 세계 자원연구소와 함께 식품 폐기물 측정 프로토콜을 만들었다.
또한 제품 소비자들에게 재활용 지침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표준화된 라벨링 시스템인 ‘하우투 리사이클 (How2Recycle)’을 도입하여 월마트의 800개 이상의 협력사들이 1만 6,000개 이상의 제품에 라벨링 인증을 받았다. 협력사들이 기가톤 프로젝트에 가입하고 실제적인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월마트의 구매부서와 협력사 관리 부서 등이 업데이트되었고 평가에도 반영되었다. 이에 따라 해를 거듭할수록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협력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활동으로 월마트는 2030년까지 10억 톤의 온실가스를 절감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자. 롯데의 경우 그룹 차원에서 2021년을 친환경 사업 강화 원년으로 선언하고, 그 일환으로 ‘자원 선순환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에 따라 친환경 패키징 확대, 플라스틱 선순환 체계 구축, 식품 폐기물 최소화 등을 실천과제로 선정했다.
단순히 포장재와 배송 과정에서 탄소 절감을 달성하는 것에 더 나아가 기업이 재활용업체를 직접 인수하거나 친환경 스타트업에 투자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친환경 ESG 경영에 매진하는 경우도 있다. SK, 보광, 동서 등 대기업 계열사들이 폐기물 처리·재활용 시장에 속속 뛰어들었고 폐기물 사업장 인수를 타진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롯데와 GS의 경우는 친환경 ‘푸드테크’ 시장에 뛰어들어 관련 스타트업에 멘토링을 제공하고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푸드테크’는 식품 생산 과정에서 로봇 등을 투입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세포배양기술 등을 통해 쇠고기와 계란 등의 친환경 대체 식품을 생산해내는 새로운 식품생산기술 시장이다. 사육 및 도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를 감소하여 환경오염을 줄이고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선진국에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이다.
환경 투자, 나아가 ESG 투자는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요소이다. 초기 비용은 들겠지만 글로벌 금융이 ESG 전략을 요구하고 있고, 이에 따르지 않을 시 막대한 금융 비용을 치르게 될 수 있다. 기업 간 밸류체인, 소비자 인식도 ESG 전략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에 반할 시에는 사업 활동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환경과 ESG 투자는 일시적 유행이거나 비용 비효율적인 투자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 된 것이다.
최근 신세계그룹은 특히 친환경에 집중하여 ESG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이마트는 업계에서 눈에 띄게 발빠른 행보를 보여왔다. 2013년부터 매년 지구의 날 소등 행사에 참여하여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소에 동참했으며, 유통업계 최초로 리필 스테이션을 오픈하여 순환경제의 표본을 보이기도 했다. 2017년, 그룹 차원으로 선언했던 모바일 영수증 도입은 종이 영수증 발행량을 약 1억 장 감축하는 효과를 냈다. 이는 20년산 소나무 약 6만 4천 그루의 연간 탄소 흡수량, 2천cc 승용차 약 488대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에 해당하며, 쓰레기 약 72톤을 줄인 것과 같다. 이마트 뿐만 아니라 스타벅스의 친환경 활동과 SSG닷컴의 알비백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러한 노력은 지속가능발전소에서 발표한 ESG 성과점수 2위라는 결과를 낳았다. 리테일 기업의 ESG 캠페인은 소비자에게 동참과 인식 변화의 기회를 제공한다. 소비자와의 접점이 많은 리테일기업만이 취할 수 있는 ESG영역상의 유리한 지점이다.
기업간 밸류체인, 소비자 인식이 요구하는 ESG 전략은 올해도 변함없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반할 시에는 사업 활동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환경과 ESG 투자는 일시적 유행이거나 비용 비효율적인 투자가 아니라 기업의 존속을 위한 필수 전략이다. 영원한 승자도 없고 플레이어의 전환도 빠르게 이뤄지는 시장 상황, ‘ESG’란 키워드는 2021년 기업과 시장을 읽어낼 수 있는 주요한 시각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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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투자증권 황유식 애널리스트
Environment / Chem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