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1일, COVID-19 사태로 인해 묵은 먼지가 쌓여가던 야구 경기장에 불이 켜졌다. 그리고 ‘2022 신세계 이마트 배 전국 교교야구대회’ 결승전을 보기 위해 각지에서 올라 온 응원단과 야구팬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 관중석에 자리를 잡았다.
전국 88개의 고교야구 강호 중 진정한 최강자를 가리는 사상 최대 규모의 대회. 그것이 주는 긴장과 설렘. 짧은 머리의 야구 청년들은 쉴 새 없이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며 초대 챔피언의 영예를 차지하고자 뛰고 또 뛰었다. 이들이 대회기간에 선보인 혼(魂)과 신(身)을 다한 플레이는 정상(頂上)을 향한 순수한 열망과 의지 그 자체였다. 그리고 마침내 천안 북일고와 서울 장충고의 선수들이 패권을 다투기 위해 녹색으로 빛나는 SSG랜더스필드의 그라운드 위에서 우뚝 섰다.
프로야구단 창단 이후 ‘야구를 향한 진심’을 꾸준히 대내외에 표방해 온 신세계그룹의 진정성 어린 행보는 이번 대회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이들은 참가팀들의 현실적인 고충에 주목하여 고교야구대회 최초로 팀 운영에 크게 보탬이 되는 총 1억 원 규모의 포상금 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역대급 경쟁을 이겨낸 승자가 화려하게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 프로야구 비즈니스의 모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는 SSG랜더스필드를 결승전의 무대로 삼았다.
이러한 배려 속에 양팀 선수들은 자신들의 롤 모델들인 프로야구 선수들의 자취가 고스란히 베어 있는 국내 최대 및 최고 시설의 SSG랜더스 클럽하우스를 꼼꼼히 견학하였다. 향후 지속적인 성장 및 발전에의 동기를 강렬히 부여하고자 했던 신세계그룹의 센스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선수들을 성장시키는 것이 비단 경기뿐이겠는가. 새로운 풍광을 마주하는 여행이 한 인간의 내면을 성장시키듯 그동안 목표로 삼아 온 현장을 생생히 체험한 선수들은 분명 지난날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을 것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고교야구가 살아야 한국야구가 발전할 수 있다’는 일성이 단순한 구호가 아님을 직접 나서서 행동으로 보여줬다. 평소 SNS를 통해 각계각층의 많은 이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그는 이번 대회의 홍보에도 늘 그러했듯이 진심을 다했다. 결승전 당일엔 직접 마운드에 올라 그동안 갈고 닦은 투구 실력을 선보였고, 경기 후에는 한국시리즈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환상적인 세레모니를 우승팀에 선사함으로써 선수들과 응원단, 그리고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독특한 현장 경험에 누구보다 열광하는 것이 MZ세대이기에 신세계그룹은 대회의 마지막 무대를 다채로운 콘텐츠로 가득 채웠다. 그 덕분에 전체 행사에 소요된 시간은 한나절 남짓이었음에도 SSG랜더스필드를 찾은 양 팀 선수단과 수많은 사람들은 평소 접하기 힘든 매력적인 경험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세계그룹과 SSG랜더스에 대한 따스한 호감을 가슴에 품은 채 경기장을 나섰다.
위 사례는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그 뿌리가 되는 학생 야구의 성장 및 발전을 돕고자 노력하는 신세계그룹의 애정 어린 헌신과 성과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른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고객 가치 구현을 위한 역동적인 고객 접점의 확대, 즉 프로야구 경기가 없는 날의 야구 경기장의 효율적 활용이다.
연중 야구 경기장에 불이 켜지지 않는 일수, 293일.
지역민들의 세금으로 지어져 이들의 삶의 질 향상에 충분히 기여해야 함이 마땅한 이곳은 시즌 마지막 경기가 끝나면 언제나 그래왔듯이 긴 침묵 속에 빠져든다. 프로야구단의 누적 적자와 옅어지고 있는 지역사회와의 연결고리 문제가 연일 회자되고 있음에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 1982년, 프로야구 산업은 한국야구선수권대회라는 명칭을 내걸고 급작스레 시작되었다. 리그에 참여하게 된 여러 대기업들은 가용 재원 조달 및 향후 수익 사업의 원활한 운용을 고려하여 예하 구단의 설립 형태를 ‘주식회사’로 정하였다.
그러나, 공공시설인 야구장을 활용한 수익 사업은 관련 법령의 미비로 인해 원활히 전개되지 못했다. 사실상 입장권 수입이 전부인 구조다. 프로야구 산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어넣겠다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기형적인 산업 구조로는 그 누구도 영속을 장담할 수 없었기에 뜻있는 많은 이들이 분연히 나섰고, 마침내 지난 2007년 스포츠산업진흥법의 제정을 끌어냈다. 이는 주식회사인 프로야구단들이 비로소 공공시설인 야구장을 활용하여 이익 창출 목적의 다양한 비즈니스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확보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에 필자는 프로야구단 마케팅 팀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새롭게 시작될 비즈니스의 본질에 대해 구단 내 구성원들의 주의를 적극 환기시키고자 했다. 그것은 ‘프로야구단은 야구 경기라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다양한 파생 상품을 개발, 운용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자생할 수 있는 이익을 성공적으로 창출해내야만 하는 주식회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으로 아래의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였다.
*비즈니스의 출발점이자 핵심은 입장권 판매이며, B2C 분야의 활성화를 통해 B2B 분야의 활성화를 이끈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연중 72일의 경기일에 우선 집중하였고 독자 생존을 최종 목표로 삼았으며 이를 위해 비계열사 및 경쟁사와의 파트너십에도 적극 나섰다. 이후 2년 연속 경상 수지 흑자를 달성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패러다임을 변모시키고자 했던 일각의 지난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리그 전반에 공고히 뿌리내리고 있던 모기업 지원금에 의존한 상황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그 결과 프로야구 산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얼마 전 한국 갤럽에서 발표한 프로야구 산업 관련 리포트는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가까운 미래의 소비 주체이기도 한 20대 이하의 80%가 프로야구에 관심이 없다는 놀라운 조사 결과.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정평이 나 있는 프로야구인데 설마… 라는 의심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이는 필자가 현장에서 늘 목격하고 있는 실체적 진실이다. 이들 MZ세대의 주요 선택지에서 프로야구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젊은이들에게 낭만을, 국민들에게 여가 선용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 걸고 시작된 리그임을 감안하면 참으로 입맛이 씁쓸하고 또 헛헛하다.
보고 즐길 것이 넘쳐나는 오늘날의 시장 환경. 고객들의 필요와 요구는 매 순간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다. 그럼에도 1980년대부터 큰 변화 없이 이어져 온 기존의 패러다임의 틀에 안주하며 그저 관행을 쫓아 이를 충족시키려 드는 것은 그야말로 난센스이다.
편리하고 편안한 관람환경 조성, 경기진행 룰의 개선, 그리고 일부 선수들의 비행에 대한 법적, 도덕적 책임 추궁 등은 프로야구 콘텐츠를 기꺼이 선택한 이들의 가치 제고를 위해 마땅히 취해야 할 조치들이다. 하지만 이것이 오늘날의 문제 해결을 위한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리그에 활력을 더할 수 있는 새로운 마중물, 비(非)고객의 고객화가 절실한 프로야구 산업의 사정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지금까지의 야구 경기장은 오로지 프로야구 경기만을 위해 존재해왔다. 모기업 지원금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있는 산업 내 종사자들은 72일간의 홈 경기가 막을 내린 뒤 찾아오는 긴 적막을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구단의 재무제표가 점점 붉은색 글씨로 물들어 가고 있음에도 이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치부해왔다. 오늘날 프로야구 산업을 휘감고 있는 위기와 긴장은 바로 이러한 행태들의 축적이 낳은 결과물이다.
Change or Die, Change to Live.
구태를 타파하고자 하는 열망이 더해갈수록 많은 이들의 시선은 프로야구 산업의 새로운 총아(寵兒)인 SSG랜더스와 신세계그룹을 향하게 된다.
리테일 산업의 명실상부한 선도자이자 패러다임을 이끄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인 신세계그룹은 갓 뛰어든 프로야구 산업에서도 그들만의 자신감 넘치는 행보를 성공적으로 이어 나가고 있다. (참조: ‘신세계 유니버스’ 개척한 SSG랜더스의 100일, SSG랜더스의 1년과 한국 프로야구 산업의 미래 )
그리고 최근 SSG랜더스필드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을 성황리에 치러 냄으로써 야구 경기장의 72일 이외의 ‘+1일’이 갖는 가능성과 파괴력이 무엇인지를 세상에 확실히 선보였다.
새로운 시대의 프로야구 산업은 기존의 패러다임인 스포츠 흥행업의 범주를 뛰어넘음으로써 비로소 생명력을 더할 수 있다. 스포츠산업진흥법의 제정 및 개정으로 다양한 비즈니스의 전개가 가능해진 야구 경기장은 더 이상 여가 선용의 장이라는 한정적인 역할에 머물러선 안된다. 보다 폭넓은 역할의 수행, 이를테면 지역사회의 현안을 담아내는 그릇이자 지역민, 학교, 기업, 지방자치단체 등 다양한 구성원의 중지(衆志)를 모을 수 있는 ‘오프라인 플랫폼’으로의 변신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프로야구단은 이러한 담대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리드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전문가 집단으로 거듭나야 한다. 필자는 이것을 프로야구 산업의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 칭한다.
고객에 대한 광적인 집중으로 이들의 시간과 공간을 성공적으로 점유해 나가고 있는 신세계그룹과 SSG랜더스. 만약 이들이 앞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던 72일 이외의 ‘+1일’을 넘어 ‘+293일’에까지 주목하게 된다면, 그리하여 꺼져 있는 조명을 다시금 환히 밝히고 전례 없는 역동적인 고객 접점으로서 야구 경기장의 활용에 나서게 된다면, 과연 어떤 흥미로운 일들이 펼쳐지게 될까? 우리는 어쩌면 ‘신세계 유니버스’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심장의 탄생을 지켜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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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