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의 시대에서 찾은 마이너스 트렌드 ‘삼시세끼’

2015/08/02

우리네 삶이 어느새 지나친 과잉으로 피곤해지고 있다는 건 모든 현대인이 느끼는 바 그대로일 것입니다. 걸어서 가면 하루 반나절이 걸릴 거리를 자동차로 단 몇 십 분 만에 도달하는 시대, 이것을 혹자는 풍요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것은 과잉의 시대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잉의 시대에서 마이너스의 시대로

무언가를 쌓고, 축적하는 것이 삶의 모토였던 20세기까지 우리는 ‘플러스 트렌드’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생존의 삶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과잉으로 치닫는 걸 20세기가 끝나가던 시점에서 깨달았습니다.

나영석 PD의 <삼시세끼>를 보면서 문득 이 ‘과잉의 삶’ 끄트머리에서 그 반작용으로 생겨나는 ‘마이너스 트렌드’를 읽게 됩니다. 예능이 언젠가부터 우리네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예능 프로그램은 이제 우리의 일상 곳곳으로 들어와 그 세세한 삶의 면면들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대중들에게 공감의 손짓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박 2일> 초창기에 그토록 미션과 복불복을 반복했던 나영석 PD가 유일한 미션으로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 예능을 선보인 <삼시세끼>입니다.

이렇게 과잉을 줄이고 무언가를 넣기보다는 오히려 무언가를 빼내는 방식으로 그들의 농촌 라이프를 관찰하자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간 우리가 과잉 속에서 잊고, 잃고 있던 것들이 하나하나 발견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아무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 그 <삼시세끼>의 공간은 바로 그래서 텃밭에 자라나는 상추나 함께 지내는 귀여운 강아지 밍키, 도도한 이서진 바라기 염소 잭슨의 행동 하나까지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비 오는 날 <삼시세끼>가 들려준 빗소리는 이 프로그램의 ‘마이너스’가 가져온 새로운 발견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먼저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 닭장에 떨어지는 빗소리, 마당에 떨어지는 빗소리 등이 다 다르다는 것을 들려줍니다. 이어서 풍경과 함께 이 모든 빗소리를 분할화면으로 모아 보여주면서 빗소리의 오케스트라를 들려줍니다. 아마도 그것은 도시의 그 혼잡한 소리의 과잉 속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었던 빗소리가 주는 감흥이었을 것입니다.

 

마이너스는 결핍이 아니라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최근 <인간의 조건>은 시즌2를 선언하며 “인간이 살아가는 조건은 무엇인가”를 화두로 던졌습니다. 누군가를 의식주를 얘기하고 누군가는 사랑을 얘기하며 누군가는 사람을 얘기합니다. 즉 삶의 조건을 묻는 이 프로그램의 지향점은 <삼시세끼>와 다르지 않습니다. 자동차, 인터넷, 돈, 쓰레기 등이 ‘없이 지내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조건>이 찾으려는 건 삶의 본질입니다. <삼시세끼>가 미션을 빼버리고 삼시세끼로만 한정 지어 오히려 우리가 잊고 잃고 살아가던 삶의 진정한 본질들을 찾아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이너스 트렌드가 말해주는 건 과잉된 삶이 잊고 있는 본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배고픔을 모르는 식사가 음식의 진정한 맛을 느끼게 해줄 수 없고, 즉석에서 연결되는 관계가 만남의 설렘을 잊게 합니다. 낮처럼 밝은 밤이 밤하늘의 별을 가리고 낮의 소중함을 느낄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러니 이 과잉된 삶을 벗어던지는 마이너스 트렌드는 우리의 본질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느끼려는 욕망의 발현입니다.

과거 과잉을 추구하는 삶이 바람직한 삶의 양태였던 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과잉이 누군가의 결핍을 낳고 그 결핍은 또한 우리를 공존하게 만들 수 없다는 걸 이미 20세기 내내 깨달은 결과입니다. 플러스적 사고방식은 그래서 마이너스적인 사고방식으로 바뀌고 있고 나아가 ‘나누는’ 사고방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삶이 피곤하다면 이제 부족한 것을 찾을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과잉된 것이 무언가를 찾아내 비워내는 작업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는 이제 마이너스 트렌드가 삶의 생존이 되고 있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