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은 지금으로부터 약 85년 전,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 자리에 위치해있었습니다. 사람들을 근대문화의 신세계로 안내하던 한국 근대사의 아이콘,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은 그 곳에서 과연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을까요?
미스코시백화점의 매장 구성
1931년도에서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에서 제작한 ‘경성삼월신관안내’를 보면 지하층에서부터 옥상에 이르기까지 층별 매장 구성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미스코시의 매장구성은 15년간(1930∼1945)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층별 구성 안내
상품과 라벨의 구성
(1) 상품
미스코시는 당시 상류층을 상대로 운영하였습니다. 상류층은 일본 현지 상품의 매입과 한국의 고급 토산품 직매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상품의 경우 매일 매입했으며, 한국 특산품의 활발한 매입과 판매는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또한, 미스코시 경성점 물산부에서는 각 도의 도지사나 산업국장에게 편지를 띄워 지역별 특산품이나 희귀품을 추천받아 판매하였습니다. 이 중에서 나전칠기나 도자기 등은 당시 미술관에서 전시한 이후에 주력 판매상품으로 개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당시 백화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양말, 넥타이, 화장품, 오복이었습니다.
(2) 라벨 및 상표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은 다양한 상품구성과 함께 경영면에서도 철저한 정찰제 및 반품제 실시, 근대적인 판매관리 등을 도입하여 기존의 유통체계와 판매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상품을 진열해 놓고 파는 데 생소했던 당시의 한국인들에게 쇼케이스와 상품 진열을 위주로 한 미스코시백화점의 영업 방식은 신기하기만 한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쇼윈도와 진열장에 멋지게 진열된 상품들, 선진문화의 전시장 역할을 담당해 온 미술관, 각층을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상류층의 휴식공간으로 이름이 높았던 옥상정원, 오전이면 ‘모닝커피’ 손님으로 가득한 커피숍 등 미스코시의 모든 공간은 당시 사람들이 ‘근대’를 만나는 현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