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향, 맛을 즐기는 와인은 ‘눈으로 보고, 코로 맡은 후, 혀끝으로 마시는 술’입니다. 투명한 잔 안에 담긴 와인의 색깔로 위생상태, 숙성 정도를 확인하고 잔을 살살 돌려가며 충분히 공기와 접촉시킨 후 향을 맡아보고 한 모금씩 천천히 음미하며 마십니다. 다소 까다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와인 고유의 맛과 향, 여운을 즐기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이는 와인 애호가들이 와인 잔을 살 때 까다롭게 고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냥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라면 와인 고유의 향과 맛을 잘 표현하는 잔을 고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와인뿐 아니라 커피나 코냑 등 고유의 향을 지닌 음료나 술은 적절히 맞는 용기에 담아 마셨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됩니다.
맛과 향이 깊은 레드 와인
일반적으로 레드 와인 잔은 볼이 넓을수록 좋습니다. 크기가 넉넉하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형태가 많습니다. 넓은 볼은 레드 와인이 가진 아로마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며, 입에 닿는 오목한 부분은 와인이 혀 안쪽으로 떨어지며 특유의 떫은 맛을 부드럽게 즐길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레드 와인 중에서도 과일 향을 극대화해서 마시면 더 좋은 피노 누아 와인을 위해 고안된 잔도 있습니다. 섬세하고 우아한 와인의 대명사와도 같은 포도품종 피노 누아가 주로 재배되는 프랑스 버건디 지방의 이름을 따 ‘버건디 잔’이라고 부릅니다. 아랫부분이 넓은 버건디 잔은 피노 누아 품종이 가진 섬세한 부케 향을 깨워 코 끝으로 전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신맛을 산뜻하게, 화이트 와인
일반적으로 레드 와인을 살짝 서늘한 정도의 상온에서 마신다면, 화이트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은 차갑게 보관 해 산뜻하게 즐기는 것이 좋습니다. 화이트 포도품종은 기본적으로 신맛이 강해 온도가 올라갈수록 지나치게 신맛이 강조되어 즐겁게 와인을 음미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몸통이 둥글면서 위로 쭉 뻗은 화이트 와인 잔은 신선한 과일 향을 모아주고 특유의 신맛을 맛있게 느껴지도록 해줍니다. 표면적이 넓은 레드 와인 잔에 화이트 와인을 담으면 차가운 온도가 쉽게 미지근해질 뿐 아니라 기분 좋은 긴장감을 주는 신맛과 과일 향의 균형이 깨져 맛있게 즐기기 어렵게 됩니다.
화이트 와인 잔 중에서도 볼이 좀더 넓은 것도 있는데, 레드 와인의 버건디 잔과 마찬가지로 향을 최대한 뽑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주로 버건디 지방의 특급 화이트 와인이나 샤블리 등 샤르도네 품종으로 만든 고급 와인을 마실 때 사용합니다. 마치 밀푀유 케이크처럼 겹겹이 쌓여 있는 다채로운 향을 하나하나 깨워주어 최상의 상태로 향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청량감을 즐기는 스파클링 와인
시원하고 산뜻한 맛과 청량감 있는 기포를 즐기는 스파클링 와인은 샴페인 잔에 담아냅니다. 스파클링 와인은 레드나 화이트 와인에 탄산이 들어간 것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샴페인이 바로 대표적인 고급 스파클링 와인입니다. 샴페인 잔은 몸통이 가늘고 길어 섬세한 기포가 멈추지 않고 서서히 올라오는 것을 즐길 수 있습니다. 기포가 없어지는 것을 최대한 늦춰 청량감 있게 마실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샴페인 잔은 대부분 길고 가느다란 형태의 튤립, 플룻 잔이 일반적이지만 프랑스 왕정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넓은 빈티지 잔도 멋스럽게 느껴집니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의 젖가슴 모양을 본 따 만들었다는 19금 스토리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와인 글라스 실전 구매 TIP!
이렇게 와인의 다양한 스타일에 따라 잔의 역할이 달라지기 때문에 와인 마니아라면 기본적으로 서너 가지 정도의 와인 잔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와인 바나 레스토랑처럼 가정집에 와인 잔들을 여러 종류 들여 놓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가장 추천 드리는 것은 화이트와 레드 두루 사용할 수 있는 중간 크기의 저렴한 유리 잔과 스파클링 와인 잔 정도로 갖춰놓는 것입니다. 조금 더 여력이 된다면 아주 특별한 날 기념할 만한 와인을 마실 경우를 대비한 볼이 넓은 버건디 잔 두세 개를 구비하셔도 좋습니다.
와인 글라스 세척 Tip!
와인 글라스의 표면에는 보이지 않는 구멍들이 숨어 있습니다. 세제는 되도록 향이 없는 것을 사용해야 글라스에 세제냄새가 배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귀찮더라도 와인을 마신 후 바로 닦는 것이 좋습니다. 말라붙은 와인 자국을 박박 문질러 닦다가 글라스가 깨지는 것은 물론 이로 인해 부상을 입을 수 있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