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 판교 데이터 센터 화재로 전례 없는 카카오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습니다. 카카오톡을 포함한 수많은 카카오의 서비스부터 카카오 소셜 로그인을 활용하는 타 서비스까지 모두 영향을 받으며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저 또한 카카오T 주차장을 이용 중이었던 터라 출차 시 게이트가 열리지 않거나 비용 처리 등에서 문제가 발생할까 봐 우려했던 기억이 납니다.
카카오 장애로 인한 불편의 아우성을 보면서, 역으로 카카오가 우리 생활과 업무에 얼마나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 피해가 발생했기에 더욱 크게 실감할 수밖에 없었고요. 이처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하 DX)은 미처 인지하기도 전에 우리 삶의 양태를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AI, 그 막연한 두려움
많은 사람들이 AI 기술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것 같습니다. 내 일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는 문제이니 이해는 됩니다. 영상 플랫폼이나 웹툰 서비스의 등장으로 인해 찾기 힘들어진 만화·DVD 대여점, 인터넷 은행의 등장으로 인한 은행 직원 감축, 배달 플랫폼의 확산으로 인한 상권과 마케팅의 변화 등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비교적 담담합니다(당사자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으나 사회 전체적인 이슈로서는). 하지만 유독 AI에 관해서는 ‘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나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으로 과한 두려움을 갖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AI의 경계는 매우 모호하며, 따라서 저마다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이 글에서는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자 합니다. DX가 인터넷 환경을 경유해 데이터를 비즈니스 변혁에 활용하는 것이라 한다면, DX에 활용되는 도구이자 넓은 의미로서의 AI는 ‘그 과정에서 발생한 빅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정보를 추출하는 기술’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면 이를 AI 트랜스포메이션(이하 AX)이라 하고요. DX는 AX를 포괄하는 개념이지만, AX는 AI 기술에 좀 더 초점을 두게 됩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AI란 사람 대신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거나, 완전 자율주행을 실현하는 등의 매우 고도화된 기술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늘상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얼굴 인식, 주차장의 자동차 번호판 인식 기술 등도 포함하고 있죠. 이런 기술들은 단순히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이나 자동차 번호판을 분석해 정보(이미지 패턴 정보)를 추출하는 기술적 도구입니다.
출처: Google Keynote (Google I/O ‘22) / 구글 언어 모델 LaMDA 2 발표 장면 40:15
지난 6월에는 구글의 한 직원이 초거대 언어 모델 기반의 AI가 사람과 같은 감정이 있다고 주장했다가 해고를 당해 화제가 됐습니다. 이런 류의 철학적인 주제는 의견이 분분하겠으나, 엔지니어의 관점에서는 이 기술 또한 사람의 언어에서 필요한 정보를 추출해 지능적인 대답을 제공하는 기계일 뿐입니다. 그 기술의 놀라움에 매몰되거나, 혹은 반대로 매우 어렵게 여겨 방관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현명한 대처입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AI는 우리 삶에 지속적으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니까요.
“문제는 사람이야”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필요한 일은 내가 일하는 분야나 삶의 영역에서 AI의 발전 방향과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현실화된다면 그 기술을 밑거름 삼아 다음 단계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겁니다. 마치 만화 작가가 웹툰 시장에 대비해 미리 디지털화된 작화 방법을 수용했던가, 사진작가가 디지털카메라 기술의 등장을 보고 포토샵 등 편집 도구 사용을 도입한다든가 하는 것처럼요. 이들은 DX 시대를 맞아 새로운 비즈니스 도구와 플랫폼을 등에 업고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로 ‘부가가치’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가가치란 결국 ‘사람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의향을 갖게 만드는 무엇’입니다. 그러나, AI는 그 자체만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지 못합니다. 사람만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정의하고 제공하는 일을 할 수 있죠. 문제는 ‘사람’이니까요. 이런 관점에서 AI는 우리의 일을 지능적, 혁신적으로 대신해줘서 인간이 다양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에 집중하도록 돕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완전한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가 도래하면 택시 기사의 일자리는 사라지는 것일까요, 혹은 새로운 역할로 변화될까요? 드립커피를 내려주는 로봇이 대중적으로 보급 가능한 수준으로 저렴해진다면 바리스타는 사라질까요, 혹은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제공하게 될까요? 영화 장면으로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인공지능 로봇이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세상을 그린 영화 ‘빅버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로봇들이) 유머와 문학을 공부하고 외웠지만, 인간의 눈에 로봇은 학습한 유머를 읊을 뿐”이라고요. 사람을 위한 부가가치는, 사람 외에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AI 시대, 우리 회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제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AI 기술이 우리의 삶과 비즈니스를 지속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겁니다. 즉, 이 명제가 회사와 조직에 어떤 변화를 요구할지 생각하는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뜻입니다.
미국의 비디오 대여 사업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블록버스터’는 한때 전 세계적으로 9,000여 개의 지점을 운영할 정도였죠. 하지만 이후 비디오, DVD 우편 유통사업에서 OTT 사업으로 빠르게 전환한 넷플릭스에게 시장을 완전히 내어줬습니다. 이는 DX에 대처하지 못한 기업의 사례로 매우 유명합니다. 블록버스터는 결국 2019년 오리건주에 단 한 개의 매장만을 남겨둔 채 폐쇄되었죠. 블록버스터의 이사 칼 아이칸은 훗날 “오프라인 매장은 훌륭하게 운영했으나 디지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AI를 모르는 기업들은 블록버스터의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릅니다.
SK 디스커버리 황재선 부사장은, DX를 ‘조직의 습관이 바뀌는 긴 여정’으로 정의합니다. DX의 성공은 특정 부서에서의 프로젝트 결과물이 아니라, 디지털 관련 조직적 역량이 상향 평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가 조직 프로세스의 효율화와 경쟁력 강화, 즉 기업의 이윤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AX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기업의 지속적 생존과 성장을 위한 문제이므로 AI 전문가의 영역이 아닌 모든 구성원의 숙제입니다. AI 조직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나면 사용을 고려해보겠다는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AI 기술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과 방향성에 대한 치열한 소통이 필요합니다.
기술과 그 활용 가능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도메인 전문가는 그 기술로 어떤 가치를 만드는지 상상하기 어려울뿐더러 변화에 적응하기도 어렵습니다. 반대로 도메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술 전문가는 비즈니스적인 혁신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기술 자체의 완성도에만 집착할 수도 있습니다. 기업의 AX란, 가보지 못한 길을 갈 때 적정 기술을 지팡이 삼는 것에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AI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AI가 산업에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지를 가설로 상정해보고, 적정한 수준의 AI 기술을 개발해 그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실패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을 테지만, 그 과정에서 조직이 성장하고, 마침내 ‘조직의 습관’이 AI 시대에 걸맞게 바뀌게 될 겁니다.
이런 과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인 고민도 매우 중요합니다. AI 추진과 기술 개발을 특정 부서에 맡길 것이 아니라 도메인 전문가와 AI 전문가가 함께 토론할 수 있도록 조직을 구성해야 합니다. 기술 언어를 비즈니스와 경영의 언어로 해석하고 조직이 함께 공감하도록 돕는 리더를 배치하고, 단기간의 가시적 성과보다는 긴 호흡을 갖고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AX 성공의 필수조건입니다.
앞서 문제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 명제를 지금 맥락에 맞게 바꿔본다면 기업의 문제는 ‘고객’이겠죠.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고객을, 그리고 고객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을까요? 이 본질적 가치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AI 기술을 어떻게 슬기롭게 활용할지, 나아가 AI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신세계그룹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콘텐츠는 미디어에서 사용 가능합니다. 콘텐츠 사용 시에는 신세계그룹 뉴스룸으로 출처 표기를 부탁드립니다. |
김선호 지마켓 AI Product팀 팀장
AI기술과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