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IBM Watson*이 미국의 유명 퀴즈쇼 ‘제퍼디’에서 챔피언들을 압도적인 차로 누르며 승리한 사건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마치 2016년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패배하며 안긴 충격과도 유사했달까요? 기계가 수많은 문서를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할 뿐 아니라, 실시간으로 주어지는 질문에 전략적이면서도 빠른 속도로 답을 도출하는 능력까지 갖췄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에 탄력을 받은 IBM은 IBM Watson을 금융, 법률,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것을 예고하며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솔루션 영업에 돌입했습니다. 특히 의료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 IBM Watson: IBM이 만든 인공지능
결과는 어땠을까요? 2018년까지 최소 10억 명이 이용할 것이라 자신하며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으나, 정작 2018년에는 엔지니어 수백 명을 해고하는 등 사업적으로는 실패하고야 말았습니다. 실패의 원인이야 여러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겠으나, 저는 이렇게 요약하고 싶습니다: 기술의 특성에 맞는 활용보다는, ‘신기함’에 매몰된 기술도입 경쟁과 이를 미끼 삼은 IBM의 조급한 마케팅 전략. 즉, 이 기술을 다루거나 대하는 태도의 문제였다고요.
최근 AI 기술의 발전, 그중에서도 생성형(generative) AI*의 활약은 놀랍습니다. 텍스트 입력만으로 1-2분 만에 이미지를 뚝딱 만들어내는 수준은 이미 넘었고요. 급기야 이미지 생성 서비스 미드저니(Midjourney)로 제작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라는 작품은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서 디지털 아트 부문 1위를 차지하기까지 했습니다. 최근 OpenAI가 발표한 ChatGPT*는 이런 정도의 놀라움은 잠재워버릴 듯한 파급력으로 온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입니다.
* 생성형 AI : 텍스트, 오디오, 이미지 등의 기존 콘텐츠를 활용하여 유사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인공지능 기술
* ChatGPT : OpenAI가 만든 생성형 AI. GPT3.5를 기반으로 하는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ChatGPT는 여러 면에서 IBM Watson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기술적으로도 많은 차이가 있기에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적절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간 AI 기술이 발전하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감에 따라 AI 기술을 다루고(기술 공급자 관점) 대하는(기술 수용자 관점) 태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관전 포인트라 생각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런 변화의 물결에서 개인과 기업 입장에서 어떤 전략이 필요할지에 대한 사견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ChatGPT, 마케팅, 성공적
OpenAI는 ChatGPT 발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링크드인 계정에 의미심장한 이미지를 투척했습니다. (현재는 해당 계정을 닫은 것으로 보입니다)
‘AI가 당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사용하는 사람이 당신을 대체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이 포스팅에는 순식간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며 난상토론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시사점은 사람들의 반응이나 토론 내용 자체보다도, OpenAI가 ‘ChatGPT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시키고자 하는지’에 대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술력 자랑이 아닌, 사람들이 ChatGPT를 생산성 도구 또는 사업의 도구로 인식하게 하려는 OpenAI의 시도가 잘 드러난 사건이라 평가하고 싶습니다.
ChatGPT의 첫 페이지에도 재미있는 점이 발견됩니다.
ChatGPT의 활용법과 함께,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때로는 ‘위험하고 편향된 콘텐츠를 생성’할 수도 있으며 ‘2021년 이후 지식은 제공할 수 없다’는 등의 한계점까지 함께 적시했다는 점입니다. 이후 OpenAI의 주요 투자사인 MS의 검색엔진인 빙(Bing)과 엣지(Edge) 브라우저에 ChatGPT가 탑재되었는데, 사람들이 이미 ChatGPT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을 미리 인지해서인지 이 점에 대해서는 크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ChatGPT를 대화형 UI로 먼저 선보이지 않고, 검색엔진에 먼저 그 기능을 탑재했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지 않았을까요? ChatGPT의 활용성에 집중하기보다는,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좀 더 부각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비영리기관으로 출발한 OpenAI가 MS의 천문학적 투자(2019년 이후 수년에 걸쳐 약 12.3조 원 투자)로 사실상 기술을 독점한 것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생겨 지금처럼 조용하게 넘어가기 어려웠을 수도 있고요.
이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는 최근 사건이 있습니다. OpenAI에게 선공을 내어 준 구글은 부랴부랴 바드(Bard)라는 기술을 발표했지만, 시연 중 태양계 밖 행성을 처음 촬영한 것이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이라는 틀린 답을 내놓는 바람에 주가가 이틀간 10% 이상 내려앉았습니다. AI가 그럴듯하고 뻔뻔하게 잘못된 정보를 답변하는 오류를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이라고 하는데요. 이건 바드 뿐 아니라 ChatGPT에도 나타나는 문제임에도 구글만 뭇매를 맞은 것이죠.
ChatGPT에 대한 마케팅 전략과 타이밍은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여러 면에서 종합예술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사람들이 기술 활용성에 집중하도록 만들면서, 구글의 미래를 의심하게 만드는 여론을 조성했으며(검색엔진을 대체하며 구글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등), MS는 검색엔진 및 브라우저 사업의 회생을 노렸고, API 기반의 플랫폼 사업을 확보함과 동시에 ChatGPT를 유료화하면서 대고객 수익화까지 일궈냈습니다. 게다가 MS의 Azure 클라우드가 이를 뒷받침하므로, 그 효과까지 고려하면 1석 4조 이상의 가치를 창출해낸 셈입니다. 물론 그만큼 기술 수준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ChatGPT, 생산성 도구로 인식되다
ChatGPT 이전까지만 해도 AI 기술들은 AI 분야 종사자들의 잔치 또는 보여주기식 이벤트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대중 입장에서는 이해하거나 직접 다루기 어려운 기술 장벽이 있어서인지, 막연한 미래에 내 일자리를 위협할 것 같은 불안감이 팽배한 분위기였죠. IBM Watson 때도 그러했고, 가깝게는 알파고 때도 이러한 분위기를 대변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IBM Watson 때는 ‘의사의 직업을 대체할 것인지’에 대한 화두가 던져지기도 했으며, 알파고 때는 그러한 위기감이 대중적으로 가중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반면, ChatGPT가 발표되고 난 이후에는 이런 불안감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ChatGPT를 활용해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ChatGPT 발표가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은 지금, 이미 활용 팁을 담은 글과 유튜브 영상 등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ChatGPT 사용법은 물론, 어떤 명령을 입력하면 좀 더 적절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ChatGPT 또는 GPT-3를 활용하는 서비스나 크롬 브라우저 확장프로그램 등을 소개하는 자료도 넘쳐납니다. 블로깅이나 대본 작성, 영문 이메일 작성 및 교정, 마케팅 문구 작성을 위한 아이디어 구상 등 저마다 실용적인 활용법을 개발하여 공유하는 커뮤니티까지 여기저기 생겨날 정도입니다.
즉, 이전과 다르게 사람들은 ChatGPT를 활용한 생산성 제고, 실질적인 수익화 및 사업 기회에 주목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AI 비전문가나 비개발자까지도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이전과 크게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 결정적인 요소는 초거대 언어모델에 InstructGPT를 적용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기술적인 내용에 대해선 이미 인터넷 상에 훌륭한 설명 문서나 영상들이 쏟아지고 있기에 이 글에서는 굳이 자세하게 다루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만, 아주 간단하게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이미 놀라운 성능을 확보하고 있던 초거대 언어모델(GPT-3.5)을,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답변’을 생성하도록 강화학습으로 한 번 더 훈련시킨 것이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구체적인 과정은 OpenAI 가 공개한 아래 그림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기술은 그 자체로도 훌륭했지만, 그보다도 채팅 또는 질의응답 시스템 형식의 UI로부터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를 잘 만족시킨 기술전략의 승리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전략과 기술 도입이 마케팅의 성공을 든든하게 뒷받침했음은 물론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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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 지마켓 AI Product팀 팀장
AI기술과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