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가 미치는 산업적 변화와 대응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AI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GPT-3를 활용한 콘텐츠 발행 플랫폼인 재스퍼(Jasper)는 이미 작년 말, 시리즈 A단계임에도 2조 기업 가치를 인정받아 유니콘 기업 대열에 합류했을 뿐 아니라, 고객 수와 매출 또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HyperClova)와 GPT-3 모델을 기반으로 재스퍼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뤼튼(wrtn.ai)이 작년 말까지 45억 원 규모의 누적 투자금을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생성형 AI의 발전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OpenAI는 이미 ChatGPT에 적용된 GPT-3.5 보다도 훨씬 더 큰 규모의 GPT-4 모델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많은 AI 전문가는 향후에는 자연어 생성에서 그치지 않고 멀티모달 기술을 활용하여 이미지나 영상까지도 대화 맥락에 맞춰 생성하는 기술이 접목될 것으로 내다보기도 합니다. 여기에 음성인식/음성합성 기술과 연계된다면 지금보다도 더 놀라운 경험을 제공하게 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좀 더 나아가 메타버스 기술과 접목된다면 지금까지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경험을 제공할 수도 있겠죠.
굳이 여기까지 상상하지 않더라도, 자연어를 개발 소스코드로 작성해주는 능력만으로도 그 파급력이 어디까지일지 가늠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아직은 품질 면에서 개선해야 할 점들이 보이기도 하고 소스코드 저작권 문제도 논란이지만, 앞으로 개발자들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비개발자들의 접근장벽을 낮추는 데는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깃헙(GitHub)에서는 이미 코파일럿(Copilot)이 라는 AI 기반 소스코드 자동 작성 기능을 유료화하기도 했죠.
그만큼 생성형 AI, 그중에서도 초거대 언어모델 기반의 AI는 전방위에 걸쳐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기에 대응책을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그럼에도 감히 몇 가지 제언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초거대 언어모델 기반의 AI 기술은 차츰 인프라 산업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인터넷 인프라 확대, 클라우드 컴퓨팅의 일반화, 스마트폰의 대중화 등과 유사하게, 다른 비즈니스 모델의 기반을 제공하거나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기초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기술의 완성도를 과장해서 평가하지 않더라도,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AI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인식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러한 전망의 충분한 근거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매우 큰 규모의 자본 투입이 불가피하기에 AI는 인프라 사업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인프라와 엔지니어를 확보한 기업이라면 GPT-2 수준까지의 언어모델은 개발하고 활용하는 데 큰 무리가 없으나, ChatGPT 수준의 언어모델이라면 현재로서는 그 정도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은 손에 꼽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 기술을 꼭 필요로 한다면, 이들 기업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플랫폼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를 인프라로 인식하여 기회로 삼는다면, 그 기술 위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능과 비즈니스 모델을 얹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 토대 위에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이 생겨날 것이라 예상해 봅니다. ChatGPT는 초거대 언어모델 기반의 AI 기술의 가능성을 대중에게 인식시킨 첫 출발에 불과할 뿐, 이를 기반 으로 아직까지 생각치 못했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서비스들이 얹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치 애플이 앱스토어라는 생태계를 만들고 난 이후, 모바일 기반의 혁신적 사업들이 생겨난 것과 유사한 원리이지요.
단, 이 기술을 소수기업이 독과점했을 때의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의 관여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이러한 인프라적 속성을 이해하고 관련 정책을 구상하는 것으로 보이고요. 특히 해외기업이 이 독과점을 차지한다면, 국가에서 일종의 ‘기술세금’을 지출해야만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국가적인 대응책이 필요할 수도 있는 거죠.
둘째, ChatGPT 자체의 도입은 쓰임새에 맞게 철저하게 검증해야 합니다.
ChatGPT의 놀라운 성능에 매몰되어 도입 경쟁에 뛰어 들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서두에 언급했던 IBM Watson 때가 그러했듯이, 기술의 이면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외형(ChatGPT 솔루션 자체)만 취하다가는 예산만 낭비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고객 대응 챗봇으로 활용하려는 계획을 검토한다고 했을 때도, 앞서 언급했던 할루시네이션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 고객정보를 어떻게 결합해서 구체적인 답변을 하게 할 것인 것인지 등을 기획적/기술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이 외에도 시나리오 기반 챗봇과 달리 어떤 유형에도 답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고객들이 악용한다면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 것인지, 또 이에 따라 발생하는 트래픽 문제(비용 증가)는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챗봇에 ChatGPT를 도입하자는 식의 접근법보다는, 개별 프로젝트 목적과 요구조건, 제약사항 등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에 적절한 활용 방식을 AI 전문가들과 상의해야 합니다. 또한 언어모델 자체의 활용성도 다양하게 접근해 볼 수 있으므로 ‘대화 능력’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적정 AI 기술의 활용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초거대 언어모델 기반 AI 기술이 활용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나, 당연하게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아닌 것이 존재합니다. 또한 이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 해도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격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이커머스나 유통산업 분야에서는 ChatGPT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굳이 영어로 질문한 이유는, 현재 ChatGPT는 한글보다 영어로 질문했을 때 더 풍성한 답변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ChatGPT의 답변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저 다섯 가지 답변은 이미 인터넷에 올라온 의견들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이 중에서 두 번째 항목을 살펴보면, 고객들의 상품 조회 또는 구매 이력을 활용해 ChatGPT로 개인화된 상품 추천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물론 가능은 할 겁니다. 예컨대, 여행 관련 질문을 하는 사용자에게는 항공 티켓을 추천하는 식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겠죠. 하지만 효율적일까요? 상황에 따라 대화형 인터페이스가 이미 잘 활용되고 있는 경우에는 접목해볼 만한 시도겠으나, 대부분은 개인화 추천을 위해 ChatGPT를 사용하기보다는 일반적인 추천 모델을 활용하는 편이 훨씬 효율이 높을 겁니다.
너무나 당연한 제언임에도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안타깝게도 기술에 현혹된 서비스 기획이나 의사결정이 종종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ChatGPT처럼, 그리고 과거의 IBM Watson처럼 팬시한 기술일수록 그런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AI 기술을 도입할 때는 이러한 검토와 내부적인 협의가 중요합니다: “이 기술을 써야 할 이유가 충분한가? 그렇다면, 어떻게 써야 하는가?” ChatGPT 자체나 그 활용 가능성을 면밀하게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매몰되기보다 는 이후의 산업적 변화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글을 마치며
ChatGPT로 가속화된 AI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산업적 변화 및 대응 방안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아직 인류가 밟아보지 못한 길을 가는 첫걸음이기에,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산업적 변화 시나리오와 대응책을 제언드리긴 했으나, 닷컴버블 당시 우후죽순 생겨나던 인터넷 기업들 중 소수만 살아남아 빅테크 기업이 되었던 역사와 같이 아직은 거품의 시기일지, 혹은 아이폰이 불러온 스마트폰의 대중화 및 앱 생태계 구축 시기와 같은 변혁의 초입일지 아직 섣불리 예단하기엔 이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들 정도로 AI 기술이 급격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죠. 그리고 점차 AI라는 도구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사람(기업)과 그렇지 못한 사람(기업)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심화될 수 밖에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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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 지마켓 AI Product팀 팀장
AI기술과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